[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하필 그날이 그날이었다. ‘이것’과 ‘저것’이 너무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를 궁지에 빠트릴 목적으로 누군가 정교한 기획이라도 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처구니없어 하는 내 마음이야 알 바 아니라는 듯 그들은 우리 집 마당으로 각종 연장을 들이밀고 쳐들어왔다.내일이면 내가 병원으로 가서 입원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일주일 전에 이미 그렇게 하기로 돼 있었다. 입원 다음 날로 수술 시간을 잡은 담당 의사의 결정에 따라 간호사는 그날 오후에 수술이 있어 휴진한다는 공고를 붙였다. 수술이 끝나면 육칠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병원에서 일주일 남짓 보내는 동안 내가 확, 개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비교적 명료하게 구체적인 스토리 하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누군가 삼태기를 들고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그는 구멍이 숭숭 뚫린 그 삼태기를 내 머리에 뒤집어 씌웠다.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가만히 소곤거렸다.“이제부터 하늘은 없는 거야. 해도 없고 달도 없는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거야. 알았지?”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소곤거리던 그의 말투는 어느새 공포가 물씬 풍기는 협박조로 변해 있었다. 해도 달도 없는 세상을 살게 됐음을 인정하지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2014년 3월 1일 아침 사상 최고라 할 만한 서릿발이 우리 동네를 강타했다. 내 생애 그렇게도 단단하고 날카롭게 표창처럼 느껴지는 서릿발은 처음이었다. 만지면 금방 손가락을 잘라버릴 듯이 날카로운 서릿발이 하얗게 마치 비밀병기처럼 대나무 숲을 뒤덮고 있는 것이 흡사 무슨 얼굴 없는 침략군이라도 몰려와 있는 것만 같았다.알고 보니 우리 동네만 그날 그렇게 서릿발의 침공을 받은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추워죽겠다는 소리가 들렸다. 인터넷에서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눈물이란 무엇이냐.슬픔이 원한의 감정으로 응집되는 지점은 어디인가.이런 눅눅한 주제를 붙잡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두 남자가 울음을 꾹꾹 눌러 참아가며, 억제하며, 억압해 가면서 나누는 대화를 듣고 난 직후부터였으니 아마 한 달은 넘었고 두 달은 채 안 됐을 것이다.그런 은밀한 대화를 내가 듣고자 해서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 비밀유지가 필요할 수도 있는 수사기록물 중에 하나였다. 수사관 신분인 그들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참을 수가 없어서,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처음 그 녀석을 발견했을 때는 그랬다. 거의 모든 것이 자동화된 디지털 시대에 마당을 뒤뚱뒤뚱 아날로그 식으로 걸어 다니는 실제의 닭을 보게 됐으니 이게 무슨 행복이냐 싶었다. 암탉 특유의 알 젓는 소리를 내며 두 발을 열심히 놀리는 모양새는 너무나도 서정이 풍부해서 내 마음이 그냥 스펀지처럼 푸근푸근해져 갔다. 지나가던 개가 닭을 발견하고 왁, 소리를 내며 달려들 자세라도 취할라치면 펄쩍 뛰는 암탉의 신속대응에서 느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조마조마, 아슬아슬함이 또한 내 가슴을 오지게도 펄떡펄떡 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곰이 사람을 자신의 식량으로 인식해서 공격했던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밤새 실랑이를 벌였다. 꿈속에서였다. 목소리로 미루어 상대가 사람이고, 남자인 건 분명했지만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나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사랑하는 사람이건 미워하는 사람이건 꿈에서 누군가 사람을 만나 구체적인 주제로 토론을 벌인 경험이 내게는 한 번도 없었다.이건 또 무슨 새로운 경험이냐 하는 기분으로 문을 열어보니 거센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렸다. 눈발은 엷은 커튼처럼 희끗희끗하기만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에스패란토어를 공부한다고 나다니던 시절에 얼굴을 익혔던 오랜 친구로부터 장문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인문학이란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장르이니 국제적으로 놀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에스패란토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친구였다. 이 사람과 내가 친구관계로 발전한 동기는 아마도 소설 쓰기의 즐거움이랄까 괴로움이랄까, 하여튼 좋아서 시작했지만 포로가 되고 말았다는 괴로운 자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하지만 그와 나는 곧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창작은 배가 너무 고파서 안 되겠다는 이유로 그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분석하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오랜만에 폭설이 쏟아졌다. 엊그제까지의 우울한 세상이 모두 사라졌다. 여기저기 사방에 옛날식 이불 호청을 하얗게 빨아 널어놓은 느낌이어서 정겹다. 한달음에 달려가서 얼굴을 대고 비비면 새물내가 콧속을 금방 뻥뻥 뚫어줄 것 같다. 홀랑 벗고 뛰어들어 마구 뒹굴어대 보자는 충동이 나를 유혹한다. 내 몸이 청춘이던 시절에는 그런 충동에 제법 빠져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눈은 내린 게 아니라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계속 내렸다. 처음의 정겨운 느낌은 차츰 공포로 전환되어 갔다.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기후위기, 기후위기,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면역이 돼버렸다고나 할까, 뭐 그러려니 싶었던 기후위기가 마침내 바싹 가까워졌다는 느낌이다. 11월이 끝나기도 전에 눈발이 비치는가 싶더니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된서리가 표창처럼 내리 꽂히고 얼음까지 얼어버렸다.그 바람에 우리 집 마당에 나무들은 단풍도 못 들어보고 얼었다고 해야 하나 타버렸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이파리가 나뭇가지에 빽빽이 매달린 채로 비비꼬아져 갔다. 씩씩한 푸름을 자랑하는 화초에 누군가 느닷없이 펄펄 끓는 물이라도 확 끼얹어 버린 것 같았다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성남시 중원구 단대동 출신 그 남자를 또 만났다. 가을 이후 벌써 두 번째다. 이번에는 내가 그를 찾아간 게 아니었다. 그가 나를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하기 좋은 말로 그냥 우연이었다. 차를 몰고 달리다가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했고, 그래서 차를 세운 것일 뿐이었다. 저물어 가는 가을이 만들어준 우연, 아니 필연한 만남이었다고 하면 말이 좀 되려나? 따지고 보면 이것도 습관성 질환이라 할만 했다. 가을이 닫히고 겨울이 열리기 시작할 즈음이면 내 몸에서 가슴 부위가 뭉텅 잘려 나간 것만 같았다. 딱히 무슨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현실이 너무 바보 같다고 여겨질 때, 암담하고 한심해서 가슴이 금방 터질 것 같아질 때, 그런 순간에는 하늘에 별을 보자. 갸름하게 뜬 눈으로 별을 보면서 귀를 기울이자. 귀를 기울인 채로 나직이 말을 붙여보자. 그러면 응답이 있을까? 있을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된다.너 거기 있지?너도 거기 있구나?우리 만날까?네가 내 쪽으로 와.네가 내 쪽으로 오면 안 돼?네가 내 쪽으로 오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거야?너 혹시 내가 싫은 건 아니지?그런 너는 혹시 내가 싫은 거야?맞아. 너는 나를 알고,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올 가을은 칙칙하게 와서 우울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들이닥친 가을 냄새를 몸이 먼저 알고 긴 팔 옷을 꺼내 입고 있을 때 오매 벌써 가을이네?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긴 했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가을 같지가 않아서 어리둥절했다.한참 주황색 물이 들어야 할 감나무는 이파리와 열매를 죄다 잃어버린 탓으로 겨울처럼 앙상했다. 7월과 8월에 비가 너무 많이 거의 매일 쏟아진 탓으로 뿌리가 물에 완전히 잠기다시피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홍시와 곶감을 이백 개도 넘게 얻어내곤 했던 대봉은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한국? 사우스 코레? 으아 나 거기 갔었어. 나빠, 정말 나빠.”여행이 직업인 어떤 사람이 찍은 영상에서 그런 호들갑스런 비명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장소는 유럽 서남부 쪽이었고, 여행 전문가는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걷다가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동의를 구하고 마이크를 들이대는 식의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날 그 영상에서 노출된 주인공은 우리 나이로 치면 열일곱의 소녀였고, 고등학생이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열리는 잼버리에 참가할 자격을 얻기 위해 일 년 이상 그 방면의 공부를 했고, 용돈을 꾸준히 모았고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기각, 두 음절의 이 단어가 광복으로 읽힌다. 만세를 불러야겠지만 입이 안 열린다.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교도소를 나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다가 안 보여버린다.나는 감히 당사자의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374회에 걸친 압수수색을 당한 사람의 가슴에 무슨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는가도 당연히 모른다. 그렇긴 해도 사람과 세상을 보는 내 눈은 많이 달라졌다. 8월 31일 무기한 단식을 선언하면서 개인방송을 시작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내 안에 내가 미처 몰랐던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 석 자 백선엽을 오랜만에 접하고 놀랐다. 그보다 먼저 소환된 이름 석 자 홍범도가 아니었다면 굳이 놀랄 이유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대륙 진출 소망이 이런 식으로 구체화되고 있구나 하는 인식이랄까 자각이랄까 뭐 그런 것들이 내 가슴을 거칠게 흔들어놓은 것일 뿐이었다.죽은 이의 무덤을 파내서 한 번 더 죽이는 것을 역사는 부관참시라고 표현한다. 정치를 보다 큰 틀에서 하고자 하는 사람은 부관참시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호연지기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개인적인 복수심과 시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일본해와 후지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사람 일본사람 두 손 높이 들어 천황폐하 만세 만만세.갑자기 이런 기괴한 노랫말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사흘도 채 안돼서 어디를 가나 보인다. 아아 참, 인터넷은 확실히 빠르고 재기발랄하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 순식간에 하나로 모아져서 이뤄내는 성과 아니 비통한 탄식이다.후쿠시마 핵 폐수 해상투기를 일본이 기어코 결행한 날이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래서 아무도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짓을 일본은 그냥 해치워 버렸다. 믿는 구석이 없다면 감히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핵 물질의 성분은 무엇일까. 그것의 최종 기착지는 어디인가. 인류를, 아니 생명 자체를 멸절시키고자 하는 악마적인 속성을 핵 물질은 원래부터 갖고 있는 것인가? 등등의 물음표를 놓고 눈을 깜빡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술도 같고 환상도 같은, 귀신에 낚인 것도 같고 도깨비에 홀린 것도 같은 기괴한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체험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 혼자만 그런 비정상적인 체험, 이라기보다 상상 또는 공상에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약에 인간 사회가 완전한 평화의 길을 발견해서 행복만을 노래하는 날이 온다면, 종교와 정치 그리고 언론계 종사자들은 화염병을 투척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의 평화반대 시위를 극렬하게 열어나갈 개연성이 매우 높다. 오래 전 문학평론 공부를 한다고 나다닐 때 사회학 전공 강사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그날의 강의 주제가 벌거벗은 야누스였던가, 악마와 천사는 한 몸이다였던가, 아무튼 두 개 이상의 인격체를 내장한 집단에 관한 것이었다. 그 강의를 들을 때만 해도 내가 제법 순진해서 종교와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수족관 물을 손으로 연거푸 떠 마신 국회의원 이야기가 우리 동네 바닷가 마을을 한동안 뒤집어놓았다. 최소한 백 년은 잊히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계속 전해질 것 같다는 전망도 나왔다. 물고기의 배설물과 각종 항생제 찌꺼기로 완전 더럽혀진 물을 사람이 마시기도 한다는 건 진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자기 철학 없는 사람이 정치판을 기웃거리다 보명 일정 부분 환장한 상태로 접어들기도 한다지만, 저렇게까지 인사불성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새삼스런 발견으로 사람들은 한편 놀라고 한편 어이없어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위클리서울=박영신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 한빛 1·2호기 수명연장을 추진 중인 가운데 환경단체가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원전의 수명 연장을 중단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한수원은 지난 달 30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한빛 1·2호기 주기적 안정평가보고서를 제출했다.수명 만료(40년)를 앞둔 한빛 1·2호기의 계속운전 시작 단계를 밟은 것이다.원안위는 원전 사업자가 최신 기술 기준을 적용해 안전성 평가를 했는지 심사하고, 현장 점검 등을 통해 계속 운전 기간의 원전 안전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현재 국내에는 한빛(6기), 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