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정다은 기자] 위안부 기림의 날인 14일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 평화나비 콘서트가 개최됐다. 일제침탈의 잔재인 충주 조선식산은행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열렸다.일제강점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진실된 역사를 외면하는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아름다운 사람들 평화나비' 주최 관아골 상인회 주관으로 충주에서도 울려퍼졌다.이날 행사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하 '기림의 날')을 맞아 열렸다. 8월14일은 지난 1991년 8월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사실을
-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 어떻게 평가하나.▲ 최저임금 실패원인은 속도다. 너무 급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영업자 몰락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지금의 문제는 최저임금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다. 물론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하위 층 노동자 일부가 덕을 본 것도 있다. 여기서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거나 악화되기도 했다. 불완전한 노동문제가 있었다.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이 서서히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일본 아베 총리가 장기집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과감하게 사회복지정책을 폈기
- 정치싸움에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인데.▲ 야당이 국회원내로 들어오지도 않고 협조할 생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개원한다 해도 또 다시 예산문제로 다툼을 벌일게 뻔하다.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따내려 치열한 경쟁에 혈안이 될 것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이 시점에서 유권자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자질이 안 되는 정치인들을 모두 도태시켜야 한다. 국민은 성숙해 있다. 그럴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여기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와 여당도 섣불리 했다가는 고배를 마실
출범한지 2년이 흘렀지만,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반응이다. 경제민주화는 퇴보했고 양극화 현상도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누가 봐도 재벌개혁과 적폐청산은 멈춰 섰다. 이렇듯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담론’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심층, 바로 ‘인권’이다. 일례로 ‘5.18 망언’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망언 등 정치인과 사회 기득권 층의 무분별한 혐오발언이 국민공분을 사고 있다. 불행인지
- 전장연이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을 공개 수배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홍남기 장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기획재정부의 수장으로서 이 문제와 관련해 제대로 장애인 문제를 바라보고 예산을 반영해야 했다. 홍 장관은 올 1월에 예비타당성 면제를 통해 국토부가 추진하는 전국의 토목건설사업비로 24조원을 지원했다. 건설 분야에는 막대한 국민혈세를 들이면서 장애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예산적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각 지방의 인프라사업에 대한 시각이 다를 수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나쁘다는 것
- 제도는 마련되는데 예산은 없다는 얘긴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세계 11위 경제대국이지만, OECD 30개 국가 중에 장애인 복지예산은 최하위다. 경제 등 돈의 규모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음에도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복지예산은 부끄럽게도 꼴찌다. 실질적으로 정부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은 충분히 있다. 지금까지 모든 역대 정권들이 그랬듯이 장애인 같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지역 공동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환경을 조성하는데 투자를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이런 현상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 - 정부가
재미있지 않다면 비극일 것”이라고 말한 고 스티븐 호킹 박사는 21세 때 루게릭 병에 걸렸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절망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생전 “더 열심히 살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장애가 당신이 성취하려는 무엇인가를 막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장애가 돼선 안 된다.” 76세에 세상을 떠난 천체 물리학자 호킹이 남긴 족적은 세계의 모든 장애인에게 위대한 가르침을 남겼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
- 강사가 되기 위해선 석박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강사와 교수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왜 굳이 대학원에 진학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강사들을 향해 스스로 자초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는데.▲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교수와 연구자 수요에 맞춰 대학원에서 박사를 양성해 공급해야 한다. 일본도 1970년대에는 한국처럼 박사가 넘쳤는데 수급을 조절해 지금은 박사가 되면 연구자나 강사, 교수가 될 수 있다. 강사는 당연히 교원이고 5년 강의하면 교수로 승급한다. 한국도 강사를 제대로 대우하고 일생동안
- 개정안과 관련 대학측 관계자들도 참여했었나. 참여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나.▲ 지난해 18차례 회의했고 4년제 대표, 2년제 대표, 강사노조, 한교조, 전공노 등이 참여했었다. 그리고 국회가 추천한 교수, 변호사 등이 참여했다. 대학 측에선 원론적으로 대학에서 연구 제대로 하려면 강사들의 지위회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었다. 이들은 돈 문제로 난색을 표현했지만, 결과적으로 강사법에 합의했다. 돌아서서 다른 소리를 하는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다. - 개정안을 두고 강사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강사들은
“서구는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에만 5세기가 걸렸다. 저는 우리 세대에 당장 무엇인가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조금씩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산다. 투쟁의 존재이지만, 제 존재 자체는 역사의 한 과정일 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기자가 수년 전 김영곤(71) 선생에게 들은 말이다. 스스로 역사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그의 말은 순교론적이다. 고려대 경제학 시간강사에서 ‘잘린’ 그는 12년간 국회 앞과 고려대에서 노숙 투쟁을 벌여왔다. 얼마 전, 완벽은 아니어도 적정선에서 시간강사들의 입장을 충족시키는 ‘대
-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어떻게 보나.▲ 오히려 전 정권과 달라진 게 없다. 정부의 정책실패가 제일 컸다. 오히려 일자리도 줄었다. 복지후퇴와 글로벌 경기침체도 한몫했다. 2200만 노동자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전체적으로 나아지지 못했다. 이들의 소득이 높아져야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만 1100만 명이다. 여전히 비정규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임금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 - 최저임금도 논란이 많다.▲ 이전부터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시대적 요구였고 지난
- 너무 오랜 시간 투쟁이 이어졌다. 결국 사주가 손을 들었는데.▲ 처음부터 사측은 ‘우리는 모른다. 알아서 해라. 배째라’는 식이었다. 400여 일을 모르쇠로 일관했다. 시민사회와 종교계, 정치권, 사회운동단체들이 마지막투쟁을 위해 결사연대를 했다. 정상적인 고용과 운영을 하라고 힘을 모아 압박했다. 시민사회가 끝장투쟁을 위해 청와대 앞에 집결해 목동 파인텍 고공농성장까지 오체투지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와 함께 차광호 지회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소장과 신부, 목사, 극단 대표, 4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노동자에게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주라. 병을 앓거든 간호할 보증을 주며, 늙거든 생계를 보증하라’고 했다. 1881년에 이를 정책으로 단행했으니 138년 전이다. 보수파였음에도 노동자 양로금과 건강, 의료, 보험 등 유럽은 물론 세계 최초로 사회복지의 기반을 완성했다. 2019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노동자가 죽음에 내몰리고, 국민들이 늙고 병들고 생계가 위협받을 정도로 극한의 어려움에 처해도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자본가들은 비정규직 ‘노예장사’로 부를 축적했지만, 1100만 노동자들
- 이외에 다른 자료들은 없는가.▲ 1960년대에 미국의 한 단체가 작성한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조사보고서’를 봤다. 베트남어에 능통한 미국인 퀘이커교도 다이앤과 마이클 존스는 5년간 한국군 작전지역에서 집중조사를 한 결과 미 해병이 개인 병기로 100명에 가까운 민간인을 학살한 밀라이 사건과 비슷한 규모의 학살 사건을 12건 밝혀냈다. 소규모 학살 사건은 이보다 훨씬 많으며, 학살의 희생자는 대부분 여자, 어린이, 노인이었다. 이 보고서엔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학살을 목격한 전쟁난민의
- 1968년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들려달라.▲ 퐁니⋅퐁넛 마을은 1968년 음력으로 1월 14일에 한국군에 의해 학살이 일어나 주민 74명이 희생된 곳이다. 마을근처 도로가에 미군초소가 있었는데, 미군들은 마을이 불타는 연기를 보았고 총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미군이 뒤이어 마을로 들어왔지만 학살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어느 미군병사는 학살 현장 사진을 찍고 있었고, 아비규환이 된 마을에는 총탄을 맞아 부상당한 주민도 있었다. 어떤 미군은 부상자에게 붕대를 감아주었고 나머지
1955년 최초 발발했던 베트남전쟁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이 대립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남베트남 정부와 남베트남 정부에 반대하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의 전쟁이기도 했다. 전쟁무대도 남베트남에 한정돼 있었고, 북베트남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했던 내전이었지만, 1960년 미국이 개입하면서 확산됐다. 1965년 미국이 한국정부에 전투 병력을 공식요청하면서 청룡부대와 맹호부대, 백마부대 등 종전 때까지 32만 명이 파병됐다. 한국군 전사자는 5000여 명에 달했다. 1975년에 종전됐으나,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유가족의 고통
지난 14일 열린 1361차 수요시위는 정의기억연대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주최하고, 아이쿱생협 수도권 복부협의회가 주관했다. 사회는 강화아이쿱생협 고효영 이사장이 맡았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여는 노래 ‘바위처럼’이 이어졌다. 손에 응원도구를 든 학생들이 신나게 흔든다. 딸깍딸깍 소리가 집회 분위기를 고조시킨다.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한금희 부회장의 인사말이 이어진다. 한 부회장은 “다양한 연령대,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모여주셨다”며 “할머니들의 외침이 절대로 헛되지 않게 무슨 일이 있어도 평화의
- 얼마 전 브라질에 다녀왔다.▲ 룰라 대통령을 배출한 브라질노총(CUT) 초청을 받아 그 나라의 노동자 문제와 정치적 상황 등을 살펴보고 돌아왔다. 룰라가 속해있는 브라질노동자당(PT)은 지금 극우 야당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긴 상태다. 룰라 대통령은 두 번 집권을 했고, 이어서 후임인 호세프 대통령이 두 번의 임기 마지막 네 번째 재임 중에 부통령이던 테메르에 의해 탄핵됐다. 탄핵도 합법적 탄핵이 아니라 야당이 불법탄핵의 올가미를 씌웠다. 모든 복지비가 삭감되고 중지되면서 노동자와 서민경제가 매우 어려워졌다
- 이 사회에서 재벌의 힘은 여전하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풀려났지 않은가. 이것은 단적으로 사법부를 비롯한 소위 적폐세력과 다양한 권력기관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기득권의 핵심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와대가 국민 앞에서 단호하게 입장을 표명했어야 했다. 그런데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죄 값을 단죄하지 못했다. 개혁적 인사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여러 가지 경제, 재벌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재벌들이 2차, 3차, 4차 협력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폭도로 몰아 수감됐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2년 5개월 만에 돌아왔고, 또 몇 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이명박 정권 당시 처음 구속됐을 때, 시민들은 그를 보면 피했다. 재소자들도 외면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노동자와 서민들은 그의 노동운동에 호응했다. 약자 편에서 투쟁했던 옥중의 그를 ‘위원장’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예우했다. 그리고 야만의 권력으로 노동자를 짓밟았던 이들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인터뷰는 3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한 전 위원장의 눈빛은 여전히 강렬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