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최저임금 1만원을 받아야 월급 2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최소한 월급을 받아서 살림이 가능한 수준을 명시해야한다. 그래야 희망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뼈가 빠지게 일하는데 빚만 늘어나고 살 수가 없으면 누가 희망을 갖겠나. 국민의 일자리와 삶에 대해서 자본이 착취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감시하고 책임져야한다. 하지만 현재 국가에서 규정하고 있는 최저임금은 자본이 가장 적게 줄 수 있는 수준을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최저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오는 24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총파업 일정에 맞춰 연가투쟁을 결의했다. 전교조가 연가투쟁에 나서게 된 것은 9년만의 일. 전교조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노동자의 기본권 보호, 공무원 연금 개악 저지, 전교조 법외노조화 반대를 내걸고 있다.전교조 변성호 위원장은 지난 9일 삭발을 하고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단식을 시작한지도 벌써 2주가 넘었다. 언론들은 전교조의 투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상황이다. 변 위원장은 그 사이 조금 수척해졌다. 빡빡 깎은 머리카락은 제법
가히 카오스의 시대다. 정상은 비정상이 됐고 비정상이 정상이 됐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구분조차 힘든 혼돈의 시대다. 아파트 주민들에 시달리던 경비원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극단의 선택을 해야 했다. 2014년 한해 두 달 꼴로 한 번씩 벌어지다시피 한 국가적 재난은 꽃다운 무고한 이 땅의 생명들을 숱하게 앗아갔다. 꽃비 흩날리던 날 봄소풍 떠난 어린 청춘들의 원혼과 함께 가라앉은 세월호는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바다 속에 있다. 해고된 26명의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세상을 떴다. 살아남은 이들은 저
# 세월호참사 범국민대책회의 이태호 공동운영위원장 -민주노총은 24일 총파업에 들어간다. 최저임금 1만원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 스스로도 소득주도 성장을 이야기 한다. 소득주도 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을 제공하고 받아야할 대가의 최저선이 잘 정해져야 한다. 지금까지 그 최저선이 너무 낮은 수준에서 책정됐다. 이것이 저임금의 근거가 돼왔다. 노동의 대가로 현재 수준의 최저임금(시간당 5580원)을 받아서는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이다.이로 인해 오히려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없어지고 가계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5월부터 그 옆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책회의다. 범국민대책회의는 지난 1년간 가족들을 위로하고, 가족들의 요구가 정부와 시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해왔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이자 국민대책회의를 이끌어온 이태호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나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1년, 그리고 한국사회와 시민사회 운동의 현실까지 폭넓게 들어봤다. # 세월호참사 범국민대책회의 이태호 공동운영위원장-참여연대를 이끌면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세월
# 전교조 송재혁 대변인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교육은 변화하고 있나.▲세월호 참사 직후 교육계에 커다란 반성이 이어졌다. 서로 경쟁하고 경쟁에서 낙오한 친구를 돌아보지 않게 하는 잔인한 경쟁교육은 근본부터 바뀌어야한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위한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스스로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이다.안타깝게도 참사 이후 나왔던 반성은 잠시 메아리 쳤을 뿐 교육 현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교사나 학교의 노력이 부족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도 1년이 지나고 있다. 1주기가 돌아오는 이번 주에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예정돼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풍찬노숙을 하고, 도보행진을 하고, 삭발을 했다. 유가족들이 왜 아직까지도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은 여전히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엔 단원고 학생 희생자 故 김시연 양의 어머니 윤경희 씨를 만났다. 삭발한 머리가 까슬까슬하게 자라있었다. 시연 엄마는 “우리는 자식 잃은 부모들이다. 그런데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 ‘시연이 엄마’ 윤경희 씨 그 소중했던 추억들 시연이를 낳았을 때 엄마는 불과 스물 한 살이었다. 엄마에겐 첫 딸이었고, 할머니에겐 첫 손녀였다. 그래서 시연이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컸다. 엄마는 시연이 덕분에 많은 첫 경험을 했다. 시연이가 처음 기던 날,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러준 날, 삐뚤빼뚤 서툰 글씨의 편지를 받던 날. 엄마는 그 모든 경험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시연이는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도 집에 들어오면 아기 같은 면이 있었다. 한창 친구들과 놀다 녹초가 된 몸으로 들어오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연가투쟁에 나섰다. 전교조가 연가투쟁에 나선 것은 지난 2006년 이후 9년만이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는 해고자 9명을 조합원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빌미 삼아 전교조에게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현재는 법외노조 처분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이 문제는 현재 고등법원 2심에 계류 중이다. 전교조는 이번 연가투쟁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노동자의 기본권 보호, 공무원 연금 개악 저지,
# 김세균 `국민모임` 대표 -보궐선거가 한창이다. 국민모임에서는 정동영 전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다.▲국민모임은 아직 제대로 갖춰진 정당이 아니다. 창당과정이다 보니 제대로 잡혀있는 게 없다. 창당준비와 함께 정동영 후보의 보궐선거 운동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주가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분수령이라고 판단해 국민모임을 양분해서 동조농성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국민모임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시켜 세월호 문제 해결과 보궐선거 승리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 -신당 창당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 박주민 변호사 -법률적으로 다퉈볼 수 있나.▲문제가 되면 법률적으로도 다퉈볼 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직접 침해하지 않으면 소송을 하기가 어렵다. 다만 국회법에서 법을 침해하는 시행령을 정부가 만든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시정을 명령할 수는 있다. 그런 방법을 써볼 수는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농해수위 관할이다. 이미 농해수위 위원장이 ‘이대로 시행령 통과되면 문제제기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조위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특조위는 현재 업무를 거부하고 있
세월호 참사 1년이 됐다. 아직 참사의 진상규명이 시작도 되지 않은 가운데, 세월호 유가족들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안에 문제가 있다며 즉각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4.16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의 법률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를 만나 정부시행령안의 문제점에 대해 들었다. # 박주민 변호사 -정부시행령안의 폐기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진전된 것이 있나.▲아직 변한 것이 없다. 오늘까지 확인된 바로는 정부는 시행령안을 아주 조금 ‘수정’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령이라 정부가 밀어붙이면 바꾸기가
`국민모임 창당준비위원회`(국민모임)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난 건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였다. 지난 13일 국민모임 창당준비위원회 지도부는 세월호 동조농성에 들어갔고 김 대표는 현재 광화문 농성장에 머물고 있다. 김 대표는 인터뷰에서 “세월호 1주기인데도 시간만 흘렀을 뿐 지난 1년간 바뀐 것이 없다”며 “정부에서는 배·보상금 이야기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 하고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시행령안을 내놓았다”고 했다. 아울러 “부족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특조위가 열심히 조사하면 일정부분 진상이 밝혀질
다윤이의 생일은 10월 1일. 그날도 아빠는 진도 체육관에서 다윤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많은 희생자들이 나온 시점, 그래도 아직 수색작업을 한참 열심히 할 때였다. 부모 생일이나 애들 생일에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단원고 황지현 양도 생일에 돌아왔다. 아빠도 “생일엔 나오겠지” 조그마한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 전날 태풍이 부는 바람에 바지선이 철수했다. 결국 다윤이 생일에는 수색작업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다윤이 생일에 팽목 등대를 찾아갔다. 손에는 조그마한 케이크 하나를
진도 앞바다. 지난해 4월 16일, 국민 전체를 충격 속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그 바다 속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의 실종자들. 그 가족들은 오늘도 외치고 있다.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다’, ‘유가족이 되고 싶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를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다윤이 아빠는 유가족이 되고 싶다. 세상 천지에 유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는,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은 그렇다. 다만 뼛조각 하나라도 찾았으면. 다윤이가 어둡고 추운 물속에 있
작년 12월, 엄동설한의 추위에 지상 70미터의 굴뚝에 올라간 사람이 있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이다. 그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지난달 23일 내려오기까지 101일을 굴뚝에서 버텨냈다. 그는 굴뚝에서 내려온 뒤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들과 아내 손을 잡을 수 있게 돼서 감사하다”는 그는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했다. 은 이창근 실장과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굴뚝에서 내려온 지 20여일 쯤 지났다 건강은 어떤가.▲이제 건강을 많이 회복했
당시 유민아빠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출처 없는 루머들과 그걸 퍼나르는 언론이었다. 유민아빠의 단식이 길어지고, 언론의 관심을 받자 인터넷에는 온갖 루머들이 나돌았다. 아픈 가족사를 들춰냈다. 마치 보상금을 많이 받아내려고 환장한 사람처럼 몰아갔다. 유민아빠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한주먹씩 빠졌다.언론은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루머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 보도로 루머는 확대·재생산 되어갔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유민아빠는 언론을 믿지 않게 됐다. “기자들이 정보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방송을 내보내든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들이 416시간 집중 농성을 선포하고 다시 광화문에서 풍찬노숙을 시작한 지도 일주일이 넘어간다.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쌀쌀한 광장, 노숙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김영오씨의 행색도 초췌해져간다. 하지만 눈빛만은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그렇게 힘은 들지 않다. 몸이 힘든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묻어있다. 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과 만나고 있다. 이번엔 지난해 46일간의 단식농성 끝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지난한 싸움사고가 난 뒤 엄마는 운영하던 가게를 닫았다. 진행하던 건강 관련 강의도 접었다. 도언이의 장례를 치르고,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슬렀다. 지난 해 6월이었다. 엄마는 아빠랑 진도 체육관, 팽목항을 돌아다녔다. 음식 싸들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다녔다. 도언이 친구들이고, 선생님이니까. 수중수색이 종료될 때까지 그렇게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엄마 아빠도 위로를 많이 받았다.엄마는 연약하지 않다.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19박 20일 동안 도보행진을 했다. 물론 힘들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1주기, 추모를 해야 할 기간에 농성을 하게끔 만드는 정부가 유가족들은 이해되지 않는다. 은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엔 단원고 2학년 3반 故 김도언 양의 어머니를 만나봤다. 이지성씨다. 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저 ‘도언이 엄마’로 불리고 싶을 뿐이라고도 했다. 우리 도언이는…엄마가 기억하는 도언이는 구김 없고, 정의감 있는 아이였다. 집에서는 ‘동글동글 도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