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얼마 전,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 드라마를 쓴 문지원 작가는 2018년도에 ‘증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평소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배우 정우성과 김향기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대안학교 교사를 하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친구 몇몇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는 뭔가 남다른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하지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관광이냐 휴양이냐형은 여기서 뭘 하고 있어요? 이스탄불 해협이 건너 보이는 고등어 케밥집에서 대학생 B가 물었을 때 나는 생각에 잠겼다. 노을이 지고 있었고, 우리 앞으로 웬 닭 한 마리가 머리를 흔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 닭이 있네? 정말 뜬금없이 닭이 있다. 애완용 닭인지, 어디 양계장에서 도망친 닭인지 닭은 계속 우리 주변을 돌고 있었고, B는 그가 지나온 날들을 이야기했다. 그는 지금 여행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광 중. 그는 휴학을 하고 워터파크에서 안전요원으로 오래 일했다고 말했다. 한번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톰작고 아담한 도시 셀축은 처음 도착한 순간부터 마음을 끄는 곳이었지만 지내면서 친구를 만들지는 못했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는 왜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느 숙소라면 저녁마다 북적북적했을 마당의 테이블에서도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셀축은 유명한 관광지이고, 곳곳을 돌아다닐 때면 항상 사람이 많았는데, 막상 자연스럽게 섞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밝고 쨍한 날씨, 그늘에 앉으면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밝은 얼굴들로 셀축의 분위기는 아늑했는데, 그 아늑한 거리를 혼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변심과 배신 두 단어를 나란히 세워놓고 들여다보면 느낌이 묘해진다. 같은 듯이 다르고, 다른 듯이 같아 보이기도 하는 것이 흡사 인간의 삶을 축약해놓은 것 같다. 슬퍼서 좋다고 말할 때의 느낌 같은 뭐 그런 것. 그래서 재미있다. 흥미롭다.변심은 ‘사랑이 변하여 미움이 되듯이’라는 투의 서정적인 문장으로 해설이 가능하지만 배신은 다르다. 그것은 속임수라든가 전략, 전술, 또는 상술 같은 이미지와 얽히면서 비즈니스화 돼버리기 때문에 서정이 끼어들 틈은 없고, 그냥 살짝 우울해져 버린다.아무리 봐도 그렇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고등학교 재학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혼나는 장면이다.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들을 훈육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차례로 불러내어 우선 학생의 볼따귀를 잡은 뒤 아버지의 직업부터 묻는다.학생의 인권이나 개인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이 전무했고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교사의 폭행이 어느 정도 용인되던 때였다. 다짜고짜 학생의 볼따귀를 잡고 앞뒤로 흔들다가 결국엔 싸대기까지 날리는 장면은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아침에 출근하던 남편이 ‘토리가 아무래도 이상해, 잘 좀 지켜봐’라고 말할 때 까지만 해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열다섯 살이나 먹은 노묘(老猫)였고 골골 거리며 아픈지도 꽤 되었기에 그런 날 중에 하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닥에 노란 물을 잔뜩 게워내고 뒷다리부터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하더니 토리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쿠션 위에 앉혀놓으면 바닥을 박박 기어 소파 다리 밑이나 구석으로 악착같이 파고 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을 직감한 늙은 짐승이 깊디깊은 숲속으로 숨어버리려는 것처럼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셀축의 밤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밤 늦게 셀축에 도착했던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작은 소도시의 아늑한 풍경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이 작은 마을은 처음부터 편안하고 아늑한 구석이 있었다. 보통 한밤 중에 모르는 도시에 도착하게 되면 밤길에 낯선 사람을 마주친 것처럼 두렵고 어색했다. 큰 도시에 밤에 도착할 때마다 나는 길거리가 꼭 어지러운 미로처럼 보여서 자꾸 움츠러들었고 길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린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깨어나 화창하고 활발한 도시의 면면을 보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쿠르도진을 만나기 전에 나는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 앞 광장 앞을 서성이며 그를 만나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했다. 한 달 전에 진을 비롯한 사람들과 몽골을 여행한 이후 나는 한국으로, 진은 기차를 타고 러시아로 떠났다. 그때 함께 여행한 사람들은 모두 몽골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일주일 간 많이 친해져 있었다. 모두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장기 여행자였던 진만 몽골에 남았다. 나는 한국에 들어와 있다가 터키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마침 몽골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고 있던 진과 터키에 머무는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적정한 수면은 몇 시간이면 될까?연구 결과도 많고 그에 따른 의견도 분분 하겠지만 최소 여섯 시간 이상은 수면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의 경우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성장 호르몬을 가장 많이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을 권고한다. 깊은 잠에 들어 있어야 성장 호르몬 분비에 도움이 되니 말이다. 성장기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양질의 수면은 무척 중요하다. 숙면을 취함으로써 피로에 찌든 몸을 회복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이스탄불의 손흥민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는 내게 난처한 스포츠였다. 특별히 운동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내게, 공 하나 던져주고 축구나 하고 있으라는 체육 시간은 언제나 고역이었다. 운동을 잘 하는 남자 애들은 매번 공격수를 하고 싶어했고, 운동에 취미가 없는 애들은 멀뚱히 서있는 수비수 역할을 하다가 욕을 먹기 일쑤였다. 지금은 운동을 즐기는 편이 되었지만 여전히 발로 하는 운동은 못 하는 내게, 어린 시절 경험한 축구는 그야말로 실패만을 경험해야하는 스포츠였다. 오프사이드라는 개념이 없던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시를 쓰는 친구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나리 나리 김나리(도마뱀).이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이 김나리라고 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나리 나리 개나리~~’라고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받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왠지 귀여운 이름이었다.주로 소설을 읽는 편이라, 에세이는 사실 손이 잘 가지 않는 장르다. 하지만 잠 들기 전에 잠시 펼쳐 본 책을 새벽까지 읽고 말았다. 오랜만에 느껴본, 가슴으로 뚫고 들어오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글 쓴 이가 궁금해졌다. 주로 작가들이 자기소개를 적어 놓는 책날개를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첫 번째 터키 방문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향하던 여름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뜬금없이 터키였다. 이왕, 이라는 말이 여행지를 계속 늘렸다. 처음에는 그저 횡단 열차나 한번 타보려던 계획에 덧살이 붙었다. 이왕 모스크바까지 간 김에 근처에 다른 곳도 둘러보면 어떨까 싶었고, 마침 모스크바에는 다른 유럽으로 향하는 값싼 항공편이 많았다. 독일이나 프랑스도 좋았고, 북유럽으로 들어갈 방법도 있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대략의 계획을 세우던 친구와 나는 왠지 여름의 지중해가 보고 싶었다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유목에 가까운 날들몽골의 평원과 사막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일행들은 점차 말이 없어졌다. 차창 바깥으로는 끝없이 이어진 평원이 있었고, 때로는 사막이, 가끔은 지나가는 양떼나 낙타의 모습이 보였다. 창문을 열면 모래바람이 몰려 들었고 운전사가 커다랗게 키워놓은 음악 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마치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을 배운다는 듯, 하루를 건너 잠깐씩 멈추고 다시 이동하는 유목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한국에서 각자의 이유로 몽골에 모여든 우리들이 상상했던 것은 아마도 광막한 풍경 속에서 느끼는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요즘 나는,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에 빠져 산다.워낙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인지라 그녀의 드라마가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빠짐없이 챙겨보게 된다. 내가 결혼을 하던 그 해, 그러니까 1996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드라마를 처음 본 순간부터 팬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도 ‘바보 같은 사랑(2000)’, ‘꽃보다 아름다워(2004)’, ‘굿바이 솔로(2006)’,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괜찮아 사랑이야(2014)’ 등등등. 수많은 ‘노희경 표’ 드라마가 줄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울란바토르에서몽골 사람들은 어딘지 풍채가 좋고 단단해 보였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몸집이 위압적으로 컸던 것은 아니었는데도 강건한 인상을 풍겼다. 단단한 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울란바토르의 시내를 지날 때면 한국인과 닮은 얼굴의 몽골 남자들이 서늘한 눈빛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적의 같은 것 없이 돌처럼 단단한 것 같은 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투박하고 두터운 주먹을 가졌을 것 같은 사람들. 말을 걸면 세상 해맑게 웃기도 할 것 같은 사람들. 소련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콘트리트 건물과 그만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들개’라는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스물을 조금 넘긴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어느 날, 자신을 야간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가 어깨너머로 수 십 권은 되어 보이는 책 보따리를 짊어진 채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 왔다. 사무실 밀집 지역을 돌면서 책을 대여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라며 책을 읽어보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다.요즘으로 치자면 이동식 도서 대여 서비스 같은 개념일 것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남자는 어깨에 걸친 책 보따리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상체가 휘어진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짐짝처럼 실려나는 처음부터 푸르공,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이 귀여운 이름의 뚱뚱한 차는 이름만큼이나 귀엽게 생겨서, 어쩐지 계속 푸르공, 푸르공 입속에서 굴려보며 놀고 싶었다. 푸르공은 소련 시절 만들어진 군용 승합차였는데, 울퉁불퉁한 지형에서 무던하게 잘 굴러가는 차인 모양이라 몽골에서 지금까지도 잘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도 주변을 제외하면 몽골은 대부분 평야나 사막, 숲과 같은 지형이었다. 큰 도로들을 제외하면 아스팔트 깔린 도로들이 거의 없었다. 있는 도로마저도 수도 바깥으로 가면 군데군데 파여 있어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나에게는 아버지가 두 분 계신다.한 분은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고 또 한 분은 나를 가르치신 아버지다.중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에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2022년 봄날, 또 한 분의 아버지를 잃었다. 두 사람 모두... 나에게 주기만 했을 뿐,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하고 떠나버렸다.작가 이외수를 처음 만난 건 2017년도 여름이었다.늘 똑같은 일상에서 해가 뜨고 지듯 내 인생도 꿈 따위와는 멀어져 아무 생각 없이 무한 반복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외수 작가가 문학연수생을 뽑는다는 글을 우연히 보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징기스칸은 악마야?오마르는 조금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는 대학을 다니던 도시에서 고향인 반(van)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어제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여행객에게 고향 명소들을 구경시켜주느라 오후 내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는 버스 옆자리 여행객에게 고향 자랑을 했다. 집에 얼마전에 구입한 폭스바겐이 있다고, 내일 연락을 주면 가볼 만한 곳들을 둘러보게 해주겠다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낯선 여행객을 만나 신이 난 오마르는, 자기 말이 빈말인지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막상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시커먼 커피 한 잔을 타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베트남 산 커피의 진한 향기와 함께 스멀스멀 올라오는 수증기가 마치 분출하기 직전의 화산 꼭대기 연기 같다. 나의 고정석인 이 식탁 의자는 식사를 할 때는 물론이고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지지고 볶고를 반복하다가 지쳤을 때, 모두가 잠든 후에 혼자 조용히 손뜨개를 할 때, 지금처럼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 때도 애용하는 자리이다. 나의 사랑을 독차지 한 이 의자의 바닥면은 내 엉덩이를 박제해 놓은 모양새가 돼버렸다. 언제 어느 때 털썩 앉더라도 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