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화돼 운영이 중단된 월성원전 1호기가 재가동될 예정이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안전성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수명연장 여부를 투표에 부쳤고 결과는 가결이었다. 월성1호기의 경우 R-7 안전규정을 갖추지 않아 그동안 안전사고와 관련 숱한 지적이 제기됐었다. R-7 안전규정이란 사고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문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만에 하나 후쿠시마원전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최악의 경우 경제피해는 1000조에 달하게 되며 인근 울산 지역까지 초토화 될 수 있다는
장면 하나,봄볕은 아름다운 조각가. 조롱조롱 매달린 종종종. 골짜기에 종소리 한가득. 장면 둘,눈발이 흩날리며 풍경은 흐려지고 마음은 저 멀리 산줄기를 내달린다. 그리움에 쫓기는 사람처럼 허청대며.장면 셋,산양이 쉬었던 자리엔 똥만 뒹굴고 겨울이 가득한 설악은 바람소리 뿐. 장면 넷,아늑한 바위굴과 똥 위에 흩뿌리는 눈.장면 다섯,껑충 뛰어 어디로 갔니?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7일 새벽 1시께 월성1호기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투표로 가결했다. 월성원전 1호기는 울산 북구 신명동과 약 6.5km, 울산 북구청과 17km 떨어져 있다. 원안위가 월성1호기 안전성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원안위원 2명이 퇴장한 가운데 수명연장을 허가해 시민사회와 환경단체, 정치권 등의 발발이 예상된다. 원안위는 26일 오전 10시부터 ‘월성1호기 수명연장 허??심의를 하다 마라톤 회의 끝에 27일 오전 1시께 표결로 수명연장을 결정했다. 원안위 위원은 9명이다. 이 가운데 위원이었던 김익중 동국대 의대
나의 하늘은 언제나 밝음이다. 지금까지 태양은 져본 적이 없다. 때때로 구름에 가리는 것일 뿐, 구름을 거두어들이면 태양은 언제나 저만치 밝음 속에 있다. 하여 나는 날마다 구름을 거두고 하늘의 밝음으로 솟아 올라간다. 비가 내릴 때면 빗속을 뚫고 눈이 내릴 때면 눈 위로 올라가며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안개가 덮이면 안개를 뚫고 올라가 아침마다 새롭게 솟아오르는 나의 태양을 맞이한다. 거기에서 밝음이 시작된다. 명철을 얻고 명료함을 얻으며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사물의 철리를 깨닫게 된다. 이렇게 날마다 나의 세상이 열린다. 나
새벽에 일어나 마음을 씻는다. 마음을 어디에 두었나? 마음을 내어놓는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도 가는 것이니 마음을 지킴이 삶을 지킴이다. 욕망의 시작이 마음이고 행동의 발원이 마음이니 마음을 바라보고 마음을 다스린다. 창조가 마음이고 마침이 마음이니 마음이 움직이면 모든 것이 움직인다.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마음은 빌릴 수 없다. 자기 마음은 자기가 갖는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뛰는 그에게 마음을 드리기 위해 오늘도 나는 마음을 가꾼다. 한 송이 꽃을 마음에 심는다. 날마다 그 이름을 부른다. 희망의 꽃. 사랑의 꽃.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천년의 제국도 사상의 누각이요 일생 쌓은 명성도 물거품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사라져간 수없는 역사를 보아왔다. 정상에 오를 때가 가장 위험한 것. 이루었다 할 그 때에 공허가 찾아오고 마음의 줄을 놓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세상이 모두 그를 따르고 있다. 진리가 땅에 떨어지고 수행자가 조롱을 받는다. 생존이 우선이 되어 천박이 지배하고 거完� 길은 모두가 외면한다. 어떻게 하든 자리에 오르는 것이 능력이 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진실을 외면한다. 듣기 좋은 말을 주의하라. 아부에 눈멀지
키조개는 우리나라 연안에서 나는 조개류 중에서는 가장 크다. 큰 놈의 경우 30센티미터 이상까지도 자란다. 조가비의 빛깔은 회록갈색 또는 암황록색으로. 모양은 꼭지(각정, 殼頂)가 매우 좁고 아래로 점점 넓어진 삼각형이어서 마치 곡식을 까부르는 키를 닮았다. ‘키조개’라는 이름도 키처럼 생겨서 얻어진 이름이다. 부안이나 김제, 고창 지역에서는 ‘치조개’라고 부른다.조가비는 얇고 겉면에 성장맥과 방사륵이 있다. 자웅이체의 난생으로 산란기는 7~8월이며, 발생하여 15~20일 동안은 부유생활을 하다가 곧 족사(足絲)를 내어 부착생활에
해질무렵 잠자리로 돌아오던 새들의 보금자리가 밤사이 꽁꽁 얼었다. 그래도 햇살이 오르자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주남저수지에 그렇게 많던 큰고니들도 어디론가 떠나버렸단다. 2월1일부터 어업이 재개된 탓이리라. 과거 우포도 그랬으니까~~이에대한 대안은 겨울 논에 물을대어 새들이 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농민들에게는 생물다양성보호 차원에서 보상을 지원하고, 필요하다면 산불감시원처럼 철새를 지켜주는 일자리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겨울철새들이 보호되는 지역의 농산물에 대한 가격보전과 생태관광을 통한 지역경제를 생각하는 총체적인
그가 나를 부르셨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땅. 우리는 그곳에서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땅을 보여주셨다. 우리 안에 내재된 신성을 깨우셨다. 거지처럼 구걸하는 것이 아닌 우리 안에 있는 보화를 캐어내게 하셨다. 그때 우리는 눈을 뜨게 되었다. 일생을 바쳐 해내야 하는 그 일을 깨닫게 되었다. 그날은 우리의 눈이 열리는 처음의 날이었다. 우리를 통해 하늘의 계시가 흐르고 우리는 생명의 강이 될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해내야 하는 일을 갖는 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
콩짜개덩굴(Lemmaphyllum microphyllum C. Presl)은 제주도 등지의 따뜻한 남쪽지역 해변의 그늘지고 비교적 습도가 높은 곳에 자라는 고란초과의 난대성 양치식물로 상록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부안의 경우 변산에서는 관찰되지 않고 있으나 위도의 치도 등지에서는 드물게 관찰된다.뿌리줄기는 가늘고 길게 뻗으며 바위나 나무 등에 달라붙어 자라나는데, 줄기는 황갈색이며, 뿌리줄기 부분은 둥글고 불규칙하게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뿌리줄기의 양쪽에 서로 어긋나게 자리한다. 잎의 길이는 1~2㎝, 폭은 0.6~1.5㎝로 콩의 반
‘사람 옆에 사는 개’ ‘봄비’가 죽었습니다. 사인은 명쾌하지 않습니다. 시골 동물병원의 소, 돼지 전문 늙은 수의사 말로는 호흡기, 심장 등의 문제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민간인인 저도 할 수 있는 진단이라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어쨌든 ‘봄비’는 죽었습니다. 지난 7년여 ‘봄비’가 부슬부슬 나리는 날 밀양 산골 농장에서 데려와 진주에서부터 진안을 거쳐 무주까지 따라붙은 귀농촌 생활의 동반자였습니다. 산청 단성장에서 만난 애비 ‘구름이’로부터 따지면 어느덧 10년 이상의 인연입니다. 명실공히 식구였습니다. 뒷마당 복숭아나무 밑에 수
나의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이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너 혼자 모든 짐을 지는 것은 아니다.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모든 십자가를 다 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너희가 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너의 할 일을 남겨두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 나는 나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 거기까지 하는 것이다. 세상의 짐을 다 진 것처럼 슬픈 얼굴을 짓지 말라. 하늘이 거기에 있다. 가장 작은 데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자라 꽃을 피울 것이다. 너의
모두가 절망을 얘기할 때, 그때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가장 캄캄한 그때가 가장 빛이 필요한 때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하늘이 주는 은혜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다시 시작하자. 고기를 잡고 삶을 노래하고 새로운 꿈을 꾸자. 사랑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그들에게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른쪽이 없으면 왼쪽에 던지고 앞쪽에 없으면 뒤에서 하는 것이다. 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열이 붙어 안 되면 백이 달라붙고 백이 붙어 안 되면 천이 달라붙는 것이
다시 시작하자. 다시 일어서자. 먹고 힘을 내자. 세상이 우리에게 달려있다. 포기란 없다. 역사는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자가 승리를 얻는 것이다. 거기까지 하면 되는 것이다. 언제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끝까지 눈을 부릅뜨고 마음을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 마음먹기가 힘든 것이지 한 번 다 잡고 시작하면 언젠가 이룰 때가 있는 것이다. 회한의 입술을 깨물며 후회에 젖어 사는 하루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갈퀴처럼 빈손을 움켜쥐고 하늘을 부끄러워하며 그렇게 죽음을 맞이
나의 숨을 받으라. 태초에 내가 받았던 하늘의 숨결. 자유의 호흡. 그 숨을 잃어버리지 말라. 너의 목숨을 다해 그 숨을 지키고 그 숨을 간직하라. 누구에게도 그 숨결을 빼앗기지 말라. 언제나 아랫배에 고요히 모아두라.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과 같으리니 나의 혼을 받으라. 그날부터 내가 지켜온 불멸의 정신. 생명의 혼불. 나의 살을 먹으라. 내가 너희를 위해 전부를 주었던 사랑의 흔적. 나의 피를 마시라. 너를 위해 버린 나의 삶. 그것이 아니라면 너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거룩한 영을 따라
사랑하는 이여, 슬퍼하며 울지 말라. 내가 이렇게 가야 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더냐? 아직도 거기에 있느냐? 세상의 슬픔에 매여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는가? 죽음의 세계를 거쳐야 영원의 세계에 들어가는 법. 너희도 이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내 육신을 보지 말고 나의 정신을 보라. 내가 걸어간 그 길을 기억하라. 나는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니 거기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눈 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고 닫힌 자들의 귀를 열게 하라. 저들의 말라붙은 가슴을 사랑으로 불타게 하라. 내가 너희에게 전한 하늘의 소리를 찾
무덤은 비어있었다. 그곳은 너무 어두웠다. 그곳은 그가 계실 곳이 아니었다. 거기에선 아무런 역사를 일으킬 수가 없었다. 우리를 막고 있는 돌을 옮겨야 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그 무덤을 나가야 했다. 오랜 정적 후에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그는 그곳을 벗어나야 했다. 제국의 역사를 처음으로 깨트린 날, 그날이 첫날이 되어야 했다. 역사의 기원을 다시 써야 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 어제를 버리고 오늘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나를 향하신 하늘 아버지의 뜻이라면 나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살아나야 한다. 그렇게
오늘이 완성의 날이니 새 무덤에 들어간다. 날마다 거기까지 그만큼 완성한다. 고단한 육신을 누이고 잠 속으로 들어간다. 하늘의 신부 되어 그 날을 기다린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니 새 무덤에 들어간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니 새 하늘에 올라간다. 더 이상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마음을 내려놓고 평안에 들어간다. 나를 찌른 그들은 대대로 가슴을 찌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편안히 무덤에 들어간다. 오늘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날. 새로운 옷을 입고 하늘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영혼을 정갈하게 씻고 절을 올려야 한다. 있을 곳에 있어야 하고
이 날을 기다려 왔다. 이것 때문에 나는 세상에 온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드려 하늘의 뜻을 이루는 날.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어떻게 살아왔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는가도 중요한 것이다. 오늘 여기까지 나에게 맡겨진 모든 것을 다 끝냈다. 나머지는 하늘이 할 것이다. 더 이상 나에게 남겨진 것은 없다. 모든 것을 다 쏟아 최선을 다했다. 한 점 후회함이 없다. 이것을 위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이제 때가 되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 진정 이렇게 마치고 싶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땅. 모두가 고개를 돌린 땅. 이 땅을 나의 피로 적셔야 한다. 하여 나의 사랑으로 이 땅이 다시 살아나고 여기에서 희망이 솟아나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들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을 수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잘 살아갈 것이고 그들의 질긴 목숨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들의 영혼을 가슴에 안고 하늘의 길을 걸어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목이 마르다. 나는 홀로 있다. 모두가 나를 떠났다. 제 갈 길로 가버렸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 어차피 죽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