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의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슬픈 짐승이 되었습니다. 눈물은 말라버리고 희망은 끝이 나버렸습니다. 너무 아프면 세상을 끝내고 싶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붙잡을 것이 없으면 손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지금이 바로 당신이 일할 때입니다. 당신이 일하시지 않으면 하늘은 밝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멈추고 하늘에 눈을 감아 버리면 당신의 시간은 사라져 버립니다. 가장 어둡고 가장 추운 역사의 새벽, 그때가 바로 당신이 불을 밝힐 때입니다. 당신이 불태운 그 영혼의
장면 1.설악산케이블카반대 국립공원 순례 1인 시위. 산불예방기간으로 국립공원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12월 15일 뒤로 미루게 됐다. 눈이 쌓인 겨울이나 새싹이 돋는 이른 봄을 기다리며 준비한다. 설악산어머니의 상처가 아물고 아픔이 사라지기를, 산양형제가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기를 빌면서, 마음이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떠올린다.장면 2.나무들이 잘리고 철탑이 세워진 땅에서 불안에 떨며 떠나지 못한 짐승들을 찾는다. 몇 마리 남지 않았다는 사향노루가 찍혔고 달아놓은 모든 무인카메라에 산양이 찍혔다. 살던 땅을 떠난다는 것은 목
하늘의 사람은 하늘의 길을 가고 땅의 사람은 땅의 길을 간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의 말을 하고 땅의 사람은 땅의 말을 한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을 일을 하고 땅의 사람은 땅의 일을 한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을 생각하고 땅의 사람은 땅을 생각한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을 보고 땅의 사람은 땅을 본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의 말을 듣고 땅의 사람은 땅의 말을 듣는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이 희망이고 땅의 사람은 땅이 희망이다. 하여 하늘의 사람은 죽어도 살고 땅의 사람은 살아도 죽는다.
그는 위에서 놀고 나는 아래에서 논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차원의 문제였다. 그는 위에서 왔고 나는 아래에서 왔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초월의 세계를 추구했고 나는 욕망의 세계를 추구했다. 그와 나는 삶의 목적이 달랐다. 하여 우리의 삶은 결과가 달랐다. 나는 땅속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했고 그는 하늘로 돌아갈 것을 생각했다. 우리의 삶을 마치면 무엇이 이루어질까? 우리의 삶이 완성되면 무엇이 남게 될까? 물은 위에서 흐르고 바람은 아래에서 분다. 물과 바람이 만나 하나가 될 때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게 되
그것은 무죄가 아니라 판결을 유보하는 것이다. 우리 중에 아무도 그를 판단할 자격이 없다.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회개할 기회. 다시 시작할 기회. 새롭게 결단할 기회.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는 다 똑같은 죄인인 것을. 무서운 일이다. 인간이 인간을 정죄하는 것.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 그런 일을 행하고도 하늘 아래에서 두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있다는 것.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슴을 치며 책임을 느껴야 한다. 우리를 용서하소
그를 잡으러 온 자들이 오히려 그를 증거했다. 그에게 감동을 받아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이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누가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리이까? 그러나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었다. 세상에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들은 이대로가 좋았다. 너희들도 미혹되었느냐? 높은 자리에 오른 자들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더냐? 자리에 오르고 싶거든 너희도 조심하라. 우리의 법이 바로 하늘인 것이다. 우리의 법을 알지 못한 자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
너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느냐? 한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진리의 강. 한번 깨달음을 얻으면 우주로 들어가는 하늘의 강. 수많은 존재들이 삶의 이유를 찾고 살아갈 터전이 되는 생명의 강.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로 넘나들어 평화에 이르는 구원의 강. 성령으로 난 사람은 이와 같으니 하늘이 그를 막을 수 없고 땅이 그를 누를 수 없도다. 어디든지 가고 싶은 곳을 넘나들며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니 강은 흘러야 하고 비는 내려야 하며 태양은 비쳐야 하고 바람은 불어야 한다. 구름이 모이면 비를 내리게 하며 진리
그렇게 나에게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이냐? 무엇을 얻고자 나에게로 나오느냐? 하늘의 표적이냐? 육신의 양식이냐? 먹고 배를 두드리며 무엇을 하려느냐? 나를 위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일이 필요하지 아니하다. 그것이 너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하라. 악한 세상의 얼어붙은 땅에서 아무도 부르지 않는 생명의 이름을 부르라. 아무도 믿지 않는 생명의 역사를 믿으라. 너희의 믿음으로 역사가 바뀌리라. 먹어도 또 먹어도 계속 먹어야 하는 밑 빠진 항아리에서 너의 손을 거두라. 영원한 양식이 되는 하늘의 일
아직도 거기에 있는가? 정죄하고 판단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 언제까지 거기에 있겠는가? 높은 자리. 낮은 자리. 부정한 자리. 내가 만지면 거룩하게 되고 남이 만지면 더러워지는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나고 비가 내리면 우울해지는가? 해가 뜨면 뜨거워지고 해가 지면 캄캄해지는가? 해는 져본 적이 없고 바람은 머문 적이 없다. 인생은 무상하고 세월은 유상하다. 내가 나 안에 있으면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면 기분에 좌우되지 않을 것. 사람아,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세상에 한
병정놀이를 그만두라. 죽었다가 살아나고 다시 부스스 일어나 또 그곳으로 돌아가는 살인놀이를 그치라. 교활한 웃음을 흘리며 이웃의 고통을 관음하는 사탄의 화인을 맞은 자들.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내가 너희의 광대가 되어 그런 짓거리에 놀아날 줄 알았더냐? 나는 타락한 양심을 알고 있다. 너희들이 지난여름에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벌였던 일이 무엇이냐? 자리다툼을 그만하라. 자리가 높아지면 땅이 낮아지더냐? 하늘이 높아지더냐? 자신을 알고 하늘을 아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로되 그것이 영생의 문이로다. 나는 나의 길이 있으니 나를 막지 말라
조락의 계절에 유독 들국화만이 산과 들을 노랗게 물들인 채 향기를 발하며 가을 끝자락을 붙들고 있다. 이처럼 겨울길목에서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는 국화의 모습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국화를 사군자(사군자) 중의 하나로 꼽았다.국화(菊花)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三月春風) 다 지내고/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퓌였는다/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위는 국화를 사랑한 이정보(李鼎輔, 1693~1766)의 시조이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은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내 아버지께서 걸으시니 나도 걷는다. 그는 지금 역사의 한 가운데를 걷고 계신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그는 지금 민중 속에서 피를 흘리고 계신다. 생명의 고난을 나누기 위해 그는 너무 아프시다. 아버지가 하는 대로 나도 하고 싶었다. 무엇이 무서워 길을 걷지 못하겠는가? 무엇이 못미더워 가던 길을 멈추겠는가? 걸리는 자는 거기에 그대로 있는 것이요 넘어가는 자는 새로운 세계를 사는 것이다. 먹이사슬의 꼭대기나 먹이들의 밑바닥이나 노예로 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배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
살아서 돌아오라. 너의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의 후회가 없어질 때, 영광스럽게 돌아오라. 아무런 변명도 하지 말고 다른 어떤 것에 핑계를 대지 말고 그냥 너 자신에게 모든 것을 돌리라. 죽어도 네가 살고 살아도 네가 사는 것. 장렬하게 너의 삶을 네가 세운 목표에 던지라. 얼마나 멋진가?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은 그렇게 살아야지 않는가? 두 번은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다만 나에게 돌아올 때 이 한 가지만은 가지고 오라. 내가 너에게 맡겼던 하늘의 보검. 갈고 닦아 날이 서린 그 시퍼런 보검으로 죽음을 모두 날려버린 생명의 보
어차피 혼자 해야 한다. 어차피 혼자 살아가야 한다. 누가 내 대신 해줄 수 없다.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혼자 해야 하는 것이 있다. 같이 하늘을 날 수는 있지만 같이 사냥할 수는 없는 것. 도와줄 수는 있지만 같이 죽을 수는 없다. 그는 그의 삶이 있고 나는 나의 삶이 있다. 가장 우아하게 하늘을 날다가 직선으로 내리꽂아 먹이를 잡아채야 한다. 단 한방이다. 거기에 나의 성패가 달려있다. 이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 기회를 잃어버리면 두 번 다시 그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멋지게 하는 것이
들녘이 황금으로 물들어가는 지금 가을 꽃게가 제철이다. 꽃게는 봄과 가을이 각각 제철이다. 봄에는 산란을 위해 살이 오동통하니 알이 꽉 찬 암게가, 가을에는 먼 바다로 나가 겨울을 나기 위해 살을 찌우는 수게가 제 맛이다. 가을 암게는 6∼8월 산란기를 거치면서 속살이 비기 때문이다.봄이 제철인 암게는 주로 밥도둑인 게장을 담가 먹어야 제 맛이지만, 가을이 제철인 수게는 찜이나 탕, 무침이 제 맛이다. 수게는 장(腸)이 없으며, 암게보다 차지고 쫀득거리는 풍성한 게맛살이 일품이다.변산 촌구석에서 꽃게(이곳 부안에서는 ‘뻘떡기’라고
땅거미가 낮게 내려온다. 바람은 불고 날씨는 차가워지고 순례자의 발길은 점점 무거워진다. 오늘 이 피곤한 육신을 뉘일 곳은 어디인가? 아직도 갈 길이 만만치 않다. 세상에 만만한 것은 없다. 쉽게 저절로 되어지는 것은 없다. 그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리에 앉아 긴 밤을 지새우며 하루를 보내면 된다. 그 명상이 이어지면 세월이 되고 그 세월이 모이면 일평생이 되는 것. 어떠한 기도로 일생을 보냈느냐에 얼굴을 붉힘 없이 구멍에 숨음 없이 고개를 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첫 번째 집은 문이 잠겼고 두 번째 집에선 연기가 올라간
제 이름은 써니이고 이쪽 언니 이름은 써니따예요. 저는 포카라에서 학교를 다니고 언니는 마낭에서 학교를 다녀요. 우리는 피상 집에서 여기 두글 포카리 집으로 가는 길예요. 부자 아니예요. 쪼그만 집. 두글 포카리는 비둘기 호수라는 뜻이예요. 두글은 비둘기. 여름엔 이 호수로 비둘기들이 가득 놀러 와요. 얼마나 멋있는지 몰라요. 우리는 비둘기랑 같이 놀면서 노래를 부르곤 해요. 아저씨는 네팔사람이예요. 어떻게 그렇게 네팔 말을 잘 해요. 카트만두 살아요? 카트만두에서 뭐해요? 네팔 말을 배워요? 한국 사람이예요? 나 한국 좋아하는데?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그곳이 아니었다. 자비의 집에 자비가 없었고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이 없었다.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 하나님만 찾고 있었다. 거기에선 오직 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바로 그때 그가 내게 오셨다. 사랑의 음성으로 나를 부르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나는 자리를 들고 일어섰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하늘에서 왔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존재이니 무엇에 미련이 남아 있겠는가? 걷지 않으면 썩어질 것이
오늘도 가슴 뭉클한 가을 햇살로 아침을 맞아 일용할 양식을 받았다. 봄부터 계절의 햇살과 바람을 듬뿍 받은 빵과 과일의 에너지를 내 몸 깊숙이 채우니 내 맘속에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아침햇살과 적당한 바람, 나무와 식물들의 완숙함을 대하는 마음에 한결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우리집 정원에서 가장 먼저 이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단연코 계수나무라고 할 수 있다. 땅거미가 지는 늦은 오후나 퇴근길 오솔길을 돌아 대문에 들어설 때면 사랑의 약속 같은 달콤한 향기가 정원가득 담겨 있음을 느낀다. 하트모양의 이파리는 또 얼마나 예쁜지….
그것이 신성의 현존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면 우리의 예배는 보다 더 거룩해야 한다. 그것이 영과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면 우리의 예배는 장소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의 예배가 생명의 주를 따르고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면 우리는 보다 진실하게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삶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삶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하늘의 길인 것이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함부로 그렇게 쉽게 발걸음을 내디딜 수는 없다. 입으로는 생명의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