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1. 인도를 생각하기인도만큼 많은 여행객들의 구설에 올라 설왕설래의 대상이 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인도를 다녀와 쓰인 수많은 여행기들, 타지에서 만난 여행객들이 인도에 대해 늘어놓는 찬사와 불평들. 직접 가본 사람은 가 본 사람대로 할 말이 많고,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듣고 본 이야기로 각각의 좋거나 두려운 막연한 환상을 나누어 가지는 나라. 명상의 나라에서 영적 체험을 겪었다는 간증 식의 여행기부터 더러운 길거리에서 그치지 않는 호객을 견뎌 결국 살아 돌아왔다는 유튜버들의 고생담까지, 인도 여행에 대한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어제 영화 하나를 봤다.장규성 감독의 영화 ‘어린 의뢰인’(2019).상영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진 영화다. 시장의 논리로 보자면 정인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에 이 영화가 개봉을 했더라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어떤 때와 맞아떨어져 크게 이슈가 되고 흥행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영화 또한 그런 덕을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도가니’나 ‘82년생 김지영’처럼.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많이 아팠다. 영화라는 특성 때문에 약간의 신파와 권선징악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인도의 콜카타에서 겪었던 일들을 말하기 전에 다소 장황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콜카타와 벵골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전혀 관련이 없을 줄 알았던, 근래에 일어난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역사에서 군의 쿠데타를 경험한 적이 있고, 타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구나 싶었다. 새로운 사건들은 으레 미리 알고 있거나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이해되니까. 미얀마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웅 산 수치의 민주화 운동이나 이름 모를 소수민족이 박해받고 있다는 정도를 겨우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때때로 중간에 잠을 깰 때가 있다. 다시 잠을 청해 보아도 정신은 쨍그랑 소리가 날 정도로 오히려 맑아지고 있다. 할 일 없이 누워 있는 시간들이 아까워 진다.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구들장 아랫목 같은 뜨뜻함이 온몸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찬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있어본다. 끝내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일으키는 소소한 움직임에 옆 사람도 잠을 깰까봐 살며시 몸을 일으킨다. 차가운 거실의 공기가 얼굴을 향해 들이 닥친다. 보일러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에 ‘앞바퀴 뒷바퀴’라는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그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랬다. 아저씨는 앞으로 한 걸음 뒤로 두 걸음을 걸었다.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보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걸음인데 잠시 한 눈을 팔다보면 신기하게도 저만치 앞서 가 있는 거다. 그 아저씨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에다 동그라미를 뱅뱅 돌리며 이렇게 놀렸다.앞바퀴 뒷바퀴~~ 에에~~ 앞바퀴 뒷바퀴이~~그러면 아저씨는 우리를 보며 신나게 앞으로 한번 뒤로 두 번 걸어보였다.마이클 잭슨의 문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풍경이 아름답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내가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추위밖에 없다. 거대한 산맥의 봉우리들 사이에 놓인 캠프에는 작은 숙소 몇 채가 있었고 온통 눈으로 뒤덮여 아름다웠지만 추웠다.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산악인들은 이곳에서 등반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래서 베이스캠프라고. 그러나 일반인은 이 이상 나아갈 수 없다. 체력은 고사하고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허가가 필요할뿐더러, 봉우리들 사이에 고여 있는 듯 자리한 이 캠프를 넘어서는 것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새해를 맞아 안면도에 다녀왔다.왜 하필 안면도냐고 물으신다면. 그곳엔 그 사람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엔 이렇게 묻겠지. 그 사람이 누구냐고.그 사람은 바로 천상병 시인입니다.그렇다. 그곳엔 천상병 시인의 옛집이 있다.천상병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의 집이 떡하니 안면도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많다. 왜냐면 시인님 살아생전 안면도에서 조개 구워 막걸리 마셨단 소린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인사동의 찻집 ‘귀천’ 근방 어디메쯤 시인님의 거처가 있지 않았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나는 좀 단순하고 무식하다. 내 목숨과 크게 관련이 없는 상황이라면, 법에 그닥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사람들하고 관계에 있어서 실리를 따진다거나 유불리를 굳이 계산하지 않는다. 이는 내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고 깊은 탓에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넘쳐나서가 절대 아니다. 사람들과 여러 이해관계로 얽히고 싶지 않고 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단순 무식의 무사안일주의 성향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정말 단순하기로는 일가견이 있는 것이 좋아하는 것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밑도 끝도 없이 싫어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세계여행’이라는 말은 참 예쁜 말인데도, 그 안에는 숨겨진 굴곡이 있다.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세계는 동그랗지도 않다. 세계는 울퉁불퉁하다. 울퉁불퉁한 사면에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잘 보이지 않은 채 놓여 있다. 드러나지 않은 얼굴들이 그 안에는 빼곡하다. 지난 1년간 짧고 긴 여행으로 몇몇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하며 나는 그 사실을 매번 느꼈다. 무언가를 ‘보러 온’ 서구의 배낭여행자들과 ‘보여 지는’ 아시아인들의 사이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얼굴들이 너무 많았다. 인간이면 다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난 ‘똥개’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집 믹스 견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이름이 따로 있지만 나름 애칭이다. 이 개는 큰아들이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왔는데 이렇게 우리 집을 거쳐 간 애들이 수도 없다. 한번은 말만한 말라뮤트를 데려왔는데 털이 군데군데 빠져있고 인상이 사나웠다. 컹컹 짖는 소리가 아파트를 쩌렁쩌렁 울렸고 조그만 고양이들의 목을 물고 놔주지 않았다. 그걸 보자 내 눈에서 눈물과 불꽃이 튀었다. 발발 떠는 고양이를 가슴에 안고 방에 들어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저 새끼 당장 어디다 좀 갖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군대 기상 나팔소리와 사이렌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나와 아들의 휴대폰 알람 소리다. 5분 뒤에 또 울릴 예정이다. 창문 밖 표정은 아직도 어둡다. 건너 편 아파트의 창문에 간간이 불빛이 눈에 띈다. 겨울철 아침 여섯시 반은 일어나기 정말 힘든 시간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서둘러 일어나서 간단한 식사준비를 해놓으면 아들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밥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한 뒤 대충 씻고 같이 집을 나선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나의 하루 일과는 시작한다. 아직 어스름이 깔린 이른 아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조두순 출소로 한창 떠들썩했던 12월 초. 그의 출소일인 12월 12일에 중국의 네이버격인 ‘바이두(百度)’를 열었다가 첫 화면에 노출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갓 출소한 조두순의 얼굴 사진과 함께 관련 기사가 가장 윗부분에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제목은 ‘(영화) 소원 사건 범인 조두순 형기 만료 출소, 12년 만에 처음으로 얼굴 노출, 분노한 사람들 계란을 던지다’이다. 과연 중국에서는 조두순 사건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 궁금해서 재빨리 기사를 훑어보았다. 해당 기사는 SBS사의 12일자 최신기사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23년 전 오늘. 나는 결혼을 했다.시퍼런 땡감처럼 설익은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러니 뭔들 제대로 했을까. 엄마 보고 싶다고 자다 깨서 엉엉 울다가 오줌을 누고 다시 잠이 들곤 했다.친정은 서울인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대전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남편은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야 할 일이 잦았고 하루걸러 출장이었다. 오죽 심심하면 브라더 재봉틀을 사다놓고 행주 가장자리에다 레이스를 박아 붙였을까. 남편이 미운 날은 청바지 통을 바짝 줄여 쫄바지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겹기만 하던지….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중국의 유명한 음악 애플리케이션인 ‘QQ음악(QQ音乐)’을 쓰던 도중의 일이다. 오랜만에 고전록을 들어볼까 싶어 영국의 록밴드 ’퀸(Queen)’의 노래를 찾았다. QQ음악에서는 외국 노래라도 가사를 중국어로 번역해서 제공하는데 가사를 보던 도중 그룹 이름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Queen’이라는 단어 옆에 괄호를 쳐 놓고 ‘皇后乐队(황허우 위에뛔이: 황후 악단)’라고 써놓은 게 아닌가. 물론 뜻은 맞지만 고유명사까지 그네들의 언어로 이름 붙이는 그 기개가 일견 웃음이 나면서도 감탄스러웠다.우리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기 전 항상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공용 우편함이다. 어떤 날은 우편함 입구에 뾰족이 내밀고 있는 우편물들이 나 데리고 가시오 라는 모습으로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팍팍한 살림살이 눈치라도 챈 듯 친절하게도 대출을 해주겠다며 불특정 다수가 무차별적으로 뿌려대는 손바닥만한 광고지들이 널브러져 있기도 한다.그래도 가끔은 내 이름 석 자가 받을 사람의 위치에 적힌 위클리 서울의 주간지가 우편함에서 기다리고 있을 땐 기분이 참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얼마 전에 전국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백일장이 있었다. 처음엔 그냥 재미로 한번 응모해볼까 싶어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나도 철없었던 내 모습도 떠올라 마음이 참 그랬다. 좀 더 재밌고 좀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써 내렸다. 그때 쓴 글을 여기다 다시 옮겨본다.마흔 여섯에 엄마는 백발이 되었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뒤에 생긴 일이었다. 자식 넷을 남겨두고 대책 없이 세상을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얼굴이 창백해져버리는 대신 엄마의 머리가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10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중국에서 뜻하지 않게 히가시노 게이고(东野圭吾, Dōngyĕ Guīwú)를 만났다.그의 소설 (중국판 제목은 이다)의 연극 공연을 통해서다.매일 아침 소주대 어학당을 가려면 지하철역에 인접한 문화예술중심(우리나라로 치면 ‘예술의 전당’ 혹은 ‘세종문화회관’)을 지나쳐야 한다. 문화예술중심에 가까워지면 옥외 광고판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각종 공연 광고를 안 보고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가 없다. 확실히 광고 효과는 있다고 해야겠다. 활짝 웃는 해금연주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 쯤 이었다.치킨보다 쫄면이 더 맛있는 대학로의 ‘림스 치킨’이라는 곳에서였다. 그녀와 나, 그리고 남자 하나. 우리 셋이 그곳에서 만난 사연은 이러했다.3년 전 쯤. 페이스북을 시작했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눈팅만 했을 뿐 글을 쓰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의 글을 보게 됐고 ‘와… 미쳤다’ 싶게 재밌었다. 페친 신청을 했고 그녀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저렇게 글 잘 쓰는 사람과 알게 된 것이 영광스러웠다.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도 한번 써봐?’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때부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소주는 물이 많은 도시다. 크고 작은 호수는 말할 것도 없고, 곳곳에 강과 하천이 흐른다. 중국에서는 이런 지방을 일컬어 ‘수향’(水乡, shuǐxiāng)이라고 하는데, 특히 수향이라고 하면 강남(장강의 남쪽, 장강은 우리에게 ‘양자강’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수향을 일컫는다. 상해(상하이), 남경(난징), 항주(항저우), 소흥(사오싱), 소주(쑤저우), 양주(양저우), 무석(우시) 등이 모두 강남 수향에 속한다. 강남 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강수량이 풍부해서 강과 하천, 호수가 사방에 널려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SNS상에 어떤 분이 자신이 살아오며 겪었던 이야기를 올려놓은 글을 읽게 됐다. ‘설마…’ ‘진짜!’ ‘어떻게 그런 일이’라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릴 만큼, 믿기 힘든 여러 일들이 그 분 삶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나 역시 꽤나 많은 일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말이다.그 처음의 기억은 유치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에 부산에서 일어났던 ‘정효주 유괴사건’. 그 당시 부산에서 수산업을 크게 하고 있던 정 사장의 막내딸 효주는 유괴범에게 두 번이나 납치되는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