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흉터와 무늬> 출간... "연애소설 3부작 쓰겠다"

시인, 아니 `소설가` 최영미(44)가 4년여의 시간을 투자한 노작(勞作) <흉터와 무늬>(랜덤하우스중앙)를 성채를 비유한다면 그 주재료가 된 벽돌은 `시적 문장`이다. 최씨에게 `신인 소설가`라는 낯선 명찰을 달아준 장편 <흉터와 무늬> 속에는 아래와 같은 운문의 상처, 혹은 무늬가 흔하게 발견된다.

`언제 허물어도 되는 모래 위에 세워진 인생이었다.`
`한 아이가 카메라의 줌렌즈로 당겨 본 듯 두둥실, 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만난 남자보다 또렷한 영혼이여.`
`수천의 낮과 밤을 보냈건만, 언니는 가벼워지지 않았다.`
`어떤 빛도 그림자도 머물지 않는다. 사랑은 나를 거꾸러뜨리지 못했다.`


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집을 내놓으며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었던 최영미. 단 한 권의 시집만으로 보통의 작가의 평생 치를 영욕을 한꺼번에 겪어낸 그녀는 98년 두 번째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를 내놓으며 이런 말을 했다.

"시는 내게 밥이며 연애이며 정치이며, 그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무엇이다."

그랬던 최영미가 첫 소설이 나온 5월 11일 오후 서울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을 만나 `방향전환`을 선언했다.

"소설은 오랜 시간 동안 내 꿈이었다. 20대부터 소설가가 되겠다는 욕망에 휘둘려왔다. 이 책을 시작으로 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의 전형적인 사랑을 소재로 한 연애소설 3부작을 쓰고싶다."

"지난 4년은 시인인 나와 소설가가 되려는 나의 투쟁의 시간"

<흉터와 무늬>에 매달린 2001년 봄부터 현재까지를 "시인인 나와 소설가가 되려는 나의 투쟁의 시간"이었다고 표현한 최씨는 "(시와 소설은) 글쓰기의 밀도와 호흡이 판이한 탓에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는 고백을 들려줬다.

비약이 무제한 허용되는 시와는 달리 절제와 짜임이 필요한 소설 사이에서 겪은 고민을 말하면서는 "시가 정신적 노동의 산물이라면, 소설은 (정신적 노동도 포함됐지만) 육체적 노동의 결과물에 가깝다"고도 했다. 혹사한 육체 탓에 어깨와 목의 통증으로 여러 차례 병원을 드나들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고통과 힘겨움 끝에 출산한 <흉터와 무늬>는 어떤 이야길까. 최영미의 입을 빌어 말해보자.

"어떤 훈장도 얻어내지 못한 상처 입은 가족의 이야기다. 우리 주위 대부분의 가족은 비틀리고 힘겨운 역사를 지나왔다. 한국의 가족은 뚜껑을 열어보면 한 집 건너 소설의 소재가 아닌 집이 없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그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제나름의 신념을 지닌 우익 아버지 정일도와 심장에 뚫린 구멍 탓에 열 여섯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맡는 정일도의 첫째 딸 윤경. 주인공이자 화자인 정씨의 둘째 딸 하경의 진술을 통해 듣는 두 사람의 삶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프다`.

시적 문장 혹은, 운문적 사유의 힘을 읽다

ⓒ2005 랜덤하우스중앙
그 아픔은 1960년대 이후 수난과 격변의 한국사회를 살아온 사람들의 보편적 감정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이 숨길 수도 있는 아픔을 굳이 드러내는 이유는 `감동의 획득`을 위해서일 터. <흉터와 무늬>가 주는 감동의 많은 부분은 앞서 언급한 최영미의 가벼운 듯 하면서도 치밀한 시적 문장과 운문적 사유에서 연유한다.

그녀가 메모와 자료 정리를 이미 마치고 원고의 30% 가량을 완성시켜놓았다는 `연애소설 3부작`은 어떤 무늬를 가지게 될까? 어쨌건 그것들에도 시의 향취 또는, 시적 리듬감이 많든 적든 묻어있을 것은 분명할 듯하다.

선배소설가 오정희는 "속 깊이 감추어둔 상실과 고독의 어두운 공동(空洞)을 파고드는 작가의 깊고 내밀한 시선에 의해 상처는 정화되고, 비로소 빛을 얻는다"는 말로 시인에서 소설가가 된 후배의 첫걸음에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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