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읍 외하리(扶安邑 外下里, 역귀지 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막료로 혁혁한 공을 세운 신호(申 浩, 1539(중종 34)~1597(선조 30) )의 정려가 있다.

신호는 자가 언원(彦源)이고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고부(古阜)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 22)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변방을 지키는 장수와 고을 수령을 지내면서 치적을 올렸다.

그가 함경도 조산보 만호(造山堡 萬戶)를 지낼 때 조산포(造山浦)에 오랑케가 침입하자 이를 무찔렀다. 그때의 공로로 그는 낙안군수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이순신의 막하로 들어가 견내량(見乃梁) 안골포(安骨浦)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이 그의 공적을 조정에 상신하자 조정에서는 통정대부(通政大夫)를 내렸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 교룡산성 수어사(蛟龍山城 守禦使)가 되었는데 남원성(南原城)이 포위되자 이를 지원하러 갔다가 순절하였다. 조정에서는 선무원종 일등공신(宣武原從 一等功臣)에 녹하고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남원(南原)의 충렬사(忠烈祠)와 고부(古阜)의 정충사(旌忠祠)에 제향하였다.

또한 정려가 내리졌는데 그의 후손이 부안(扶安)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정려도 부안으로 옮기어 세웠다.

<부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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