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국한 논개를 비롯한 7만 민관군의 충절을 이어가려는 제4회 진주논개제가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된다. 하지만 진주성 의기사에 있던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논개영정의 재봉안 여부를 놓고 또 한차례 논란이 예상된다.

독도수호와 일본의 유엔안보리 진출 저지를 위한 진주시민운동본부’에 따르면 “새롭게 봉안될 논개 영정은 철저한 고증작업을 거쳐 당시대의 의상과 머리 모양을 따르고 표정도 절개를 느낄 수 있도록 제작돼야 한다”며 “이번 논개제 때 진주시가 이 사업을 추진해 표준화된 영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술로 일본에 보국하자"

친일화가 김은호가 1937년 그린 〈금차봉납도〉는 전시 총동원체제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인 화가들이 친일작품을 생산하는 데 물꼬를 튼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은호는 전시체계 당시 1942년 11월 조선미술가협회가 주최한 전쟁을 독려하는 대표적인 시국 전람회인 ‘반도총후미술전’에 첫 작품을 출품했다. 이 미술전은 조선후방에서 미술로 일본에 보국하자는 취지로 개최한 것.

이후 이 미술전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을 맡기도 했다.

그의 〈금차봉납도〉는 친일 여성단체인 ‘애국금차회’가 금비녀(금차) 11개, 금반지와 금귀이개 2개, 은비녀 1개, 현금 889원 등을 모아 일제의 성전승리를 위한 국방헌금 납부를 감격스레 그리고 있다.

의기사에 있는 논개영정은 김은호가 1955년 그린 그림이다.

가상법정서 ‘사형’ 언도

또 지난 1998년 3월 1일 민족문제연구소와 민족예술인총연합회 주최로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린 ‘반민특위 설치 50주년 기념 가상법정’에서 재판부는 김은호의 죄상을 열거하며 논개영정을 그린 그에 대해 ‘사형’을 언도한 바 있다.

당시 가장법정의 해설자는 “임진왜란 당시 7만여 민중의 의로운 죽음과 의기 논개의 열정이 서려있는 자랑스런 진주성지. 그러나 이곳에 일제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난국 민중의 운명보다는 치욕스런 친일파들의 흔적에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어 ‘자랑스런 진주성’이 아니라 ‘수치스런 진주성’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절개 없는 미인도로 그려

진주 촉석루안 의기사에 걸려 있는 논개영정은 기생풍에 머리모양이나 복장도 임진왜란 당시 풍습을 따르지 않았다고 복식전문가가 밝힌 바 있다.

더구나 의기사 영정은 김은호가 그린 남원 광한루의 성춘향 그림과 모습이 똑같아 고증이 안된 단순한 미인도로 알려졌다.

백영자 저 〈한국의 복식(경춘사 간, 1993)〉에 보면 조선시대 저고리의 실측도를 파악해 놓았다.

한국의 복식에 따르면 조선시대 저고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길고(평균 50-60Cm), 18세기 후반에 들어 평균 10-30Cm 정도로 짧아졌다고 설명했다.

논개가 살던 때는 16세기 후반으로 임진왜란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저고리가 점차 짧아지기 시작한 것.

이에 따라 김은호 작 ‘논개영정’은 저고리의 길이만 보더라도 18세기보다 훨씬 뒤에 조선시대 여인들이 입었던 복식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밖에 〈한국복식풍속사연구〉에서 조효순씨는 “여성의 저고리는 조선조 중기를 기점으로 짧아지기 시작했다”면서 “말엽에 가서는 거의 유방을 가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고증해 놓았다.

한편 지난해 12월 전남 화순군 동면 충의사 의암영각에는 아천 김영철 화백이 그린 논개 영정이 봉안돼 있다.

진주신문 제휴/김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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