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일어난 신부의 유아 성폭력 의혹 사건이 로마 교황청에 알려지게 됐다. 신부에의한유아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 전국성폭력상담소, 보호시설협의회, 미성년자 성폭력피해 부모모임 사랑방 등은 지난 12일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03년 부산지역에서 일어난 신부의 유아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교황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2003년 부산의 한 성당 부설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들이 주임 신부에게 성추행 당했다며 피해 유아의 부모와 여성단체들이 신부를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사건을 불기소 처리했다.

이들은 지난해 고등검찰과 대검찰청에 연이어 재항고했지만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 처분을 받고, 현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신청하고 가해신부와 천주교에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날 피해아동 부모가 직접 참석해 "아이는 아직도 성폭행의 후유증으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가해자는 일상 생활을 그대로 영위하고 있다"며 "한국은 성폭력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는 나라냐"고 억울함을 풀어주길 호소했다.

여성단체와 피해 아동 부모들은 "유아성폭력에 대한 수사당국의 무지와 허술한 수사과정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사건도 "초동 수사 과정에서 검찰로부터 유아들의 진술이 담긴 녹화 자료가 삭제됐다는 통보를 받고 똑같은 진술을 3번이나 반복해야 했고 전문의의 성폭행 후유증이라는 진단이 있었음에도 증거불충분이라는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재희 부산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유아 성폭력 사건의 경우 유아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아 가해자가 시인하지 않는 경우 무혐의 받는 경우가 많다"며 "수사기록을 살펴봐도 경· 검찰의 수사과정이 너무나 무성의했다"고 지적했다.

가해자가 종교단체 사제라는 점이 수사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 소장은 "지난해 여성단체에서 이번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에게 여성운동 `걸림돌상`을 준데 대해 천주교 단체에서 공식 항의를 하는 등 천주교가 거대 조직이라 사건을 풀어 가는데 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가해 신부로 지목받은 Y씨는 부산지역 사회단체의 대표직을 수행하는 등 사회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왕성히 참여하고 있는 이로, 부산지역 내 진보단체 간에도 사건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원서에는 사건의 의혹과 함께 "법적인 해결뿐만 아니라 천주교에서도 가해신부에 대한 응당한 제재를 해야 한다"며 신부직 박탈과 최소한 정직 조치를 요청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들 단체는 탄원서를 교황청으로 보내고 곧이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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