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 승인 2005.05.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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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한국 아줌마 고미애의 일본,,,일본인- 그 첫번째

 

<이 글은 남편의 해외 근무 때문에 지난해 6월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주부 고미애씨가 현지에서의 느낀 점들을 담은 것입니다. 앞으로 매주 일본에서의 생활과 느낌, 그리고 다양한 소식들을 전해줄 것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3월부터 시작한 고호의 전시회를 이제까지 보지 못하고 미루다가 결국 마지막날, 이른 점심을 먹고 서둘러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에 도착해서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매표소에서 안내원이 이제부터 2시간을 기다려야 미술관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2시간이라니 온 가족이 다함께 보려고 일요일날 왔더니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일본인들은 아무 말 없이 표를 사더니 끝이 안보이는 줄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도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딸아이가 자기는 2시간을 기다려도 보겠단다. 아들녀석은 당연히 집에 간다고 한다. 미술관 바로 옆이 공원이라서 아빠랑 아들은 공원을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남았다. 딸아이와 나도 긴 행렬의 마지막에 합류했다.
우리 앞에는 한 가족인듯 보이는 4명이 줄을 서 있었다 유치원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2명과 엄마 아빠인듯했다. 난 속으로 저 아이들이 과연 2시간을 기다려서 전시회를 볼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는 70세는 되어보이는 할머니가 서 계셨다. 세상에 저 나이에 이곳에 오신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도 혼자서 2시간을 기다려 전시회를 보시겠다는데 내심 놀라움이 일었다.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나도 집에서 가져간 책을 읽기 시작하고 딸아이도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줄어들 것 같지 않던 줄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정리요원들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요원들의 지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다. 나는 사람들을 살펴본다. 내 뒤로도 계속 줄은 늘어나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계속 줄을 서기 위해서 내 뒤로 가고 있었다. 나이든 노부부, 중년의 아줌마, 데이트하는 학생들, 삼삼오오짝을 이룬 친구들, 그 중에서 특히 내 눈길을 끄는 것은 나이드신 분들이 혼자서 오신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이었다. 내 바로 앞에 서 계신 분이 처음에는 특이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꽤 많은 분들이 혼자서 와 계신것 같았다. 내 상식으로는 정말 보고 싶어왔다해도 2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면 엄두가 안 날텐데 그분들은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계셨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드디어 우리가 입장할 순서가 되었다.
내 앞에 서있던 가족들도 함께 입장을 했다. 2시간동안 아이들은 정말 존경심이 일 정도로 차분하게 줄을 잘 지키고 서 있었다. 어른인 나도 다리가 아픈데 어찌나 의젓한지 내스스로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물론 앞에 서 계시던 할머니도 등을 꼿꼿이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셨다. 나는 속으로 왔으니 보고 가는 것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전시회는 제대로 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드디어 전시회장 안으로 입장!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전람회장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보나 걱정을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줄이 있었다. 키가 작은 사람은 그림 앞쪽으로 서서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딸아이를 앞으로 세우고 천천히 그림 앞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여유있게 그림은 감상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적은 평일처럼 관람할 수는 없었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에 비하면 우린 비교적 여유있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나이드신 분들도 힘이 드실텐데도 우아한 자세로 열심히 그림을 살펴보고 계셨다. 아이들도 어른들 사이에서 조용히 신기한듯 그림을 들여다본다. 가끔 엄마 아빠에게 질문도 해가면서 딸아이도 처음에는 힘들다고 하더니 열심히 그림을 보기 시작한다. 안내요원들이 곳곳에 있지만 별로 정리 할 일은 없어 보인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가끔 관람자가 많으니 그림의 감상을 조금씩 빠르게 해달라는 안내방송을 할뿐이다. 그림 감상중에 실수로 옆의 사람과 부딪치면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이동한다. 우리는 전시회를 무사히 보고 회장안을 빠져 나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보고도 그림이 가슴에 남아있는것은 고호의 그림이 너무 좋아서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딸아이는 고호의 해바라기와 자화상을 못 봤다고 투덜거렸지만 내 마음은 그 그림을 본 것처럼 뿌듯했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줄서기 문화가 잘 발달되어서 옛날처럼 끼어들기가 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게 사실이다. 오늘 난 이곳에서 끼어들기를 거의 못 봤다. 물론 내가 못 본 곳에서 한두번의 끼어들기가 있었을 수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각자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부러웠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이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자가  큰 약속도 지켜내는 것이 아닐까.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일본인들이 참으로 부러운 하루였다. 자칫하면 엉망이 될 뻔한 전시회가 각자의 작은 배려로 참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전시회를 보고 나오니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료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 30분을 기다렸지만 누구하나 불만이 없어 보였다. 나도 딸아이와 조용히 기다렸다. 버스에 오른다. 우리도 좀더 기다릴 줄 안다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빗줄기가 시원하다. <愛> sjy85@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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