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길옆 화단, 중년의 택시기사 아저씨는 꽃들에게 무슨 얘길 하는 걸까
기차길옆 화단, 중년의 택시기사 아저씨는 꽃들에게 무슨 얘길 하는 걸까
  • 승인 2005.06.0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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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줌마 고미애의 일본…일본인 그 두번째

우리가 사는 곳은 `기타시나가와`라는 변두리 주택가다. 집은 기차길이 옆에 있지만 비교적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아 때때로 들리는 기차소리를 제외하고는 참 한적한 곳이다 
집 근처에는 조그마한 놀이터가 있는 구립 공원이 있어서 가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기차길옆 낡은 철조망 밑으로는 벽돌을 쌓아서 만든 오래된 화단이 있다. 옹기
종기 각양각색의 꽃들이 참 예쁘게 피어 있다. 누가 심었는지 알 수 없는데도 꽃들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빛내며 참 잘도 자라나는 것 같다 .
기차길 옆 맞은편에는 택시회사가 있다 택시회사의 울타리도 철조망이지만 그 앞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서 꽃들을 심어 놓아서인지 철조망이 잘 안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초록빛 잎사귀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일 뿐이다 그리고 화단과 나란하게 음료수 자동판매기와 담배자동판매기가 놓여있다.
아이들의 학교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이제 학교까지 가는 길은 내게도 참 익숙한 곳이 되어 간다.
아담한 화단이 양쪽에 있는 길을 따라 작은 공원 두개를 지나서 아이들과 학교에 간다. 벚꽃이 피었던 나무들 사이를 지나 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는 공원을 거쳐가면 학교가 나온다.
몇일 전에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고 집에 오던 중이었다 택시회사 앞에서 택시기사 한분이 한손에는 담배를 들고 꽃들을 열심히 살피고 계신다. 중년의 기사는 옆에서 누가 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담배를 끄더니 시들은 꽃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꽃들에게 천천히 인사도 해주면서 자기 집 정원 가꾸듯이 너무 정성스럽게 하나 하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교대시간까지의 여유일까, 아니면 출근하고 운전 나가기 전에 꽃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일까. 궁금증이 일어서 계속 살펴본다 잠시 후 다른 아저씨가 물통을 들고 나와서 꽃밭에 물을 주기 시작한다. 자기들끼리 뭔가 열심히 이야기하더니 꽃잎도 만져보면서 향기를 맡더니 즐거워한다. 그들의 얼굴에서 꽃들처럼 피어나는 웃음에 나도 모르게 전염되고 만다.
중년의 택시기사가 보여준 여유롭고 멋진 아침이었다. 그 곳의 꽃들은 그날 유난히 더 싱그러워 보였다.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면서 그날 아침 택시기사분이 만졌던 잎을 나도 만져보고 향기를 맡아본다. 박하향기가 내 온몸을 휘감는다. 매일 매일 지나치는 이 길에 이렇게 진한 향기를 뿜는 꽃이 있었다니. 보기에는 보라색이 아주 예쁜 꽃일 뿐이었는데….
이제부터는 모르는 꽃이더라도 관심도 주고 인사도 나눠야겠다. 딸아이가 꽃만 보면 좋아라하며 눈인사를 하는 모습에 그저 꽃을 좋아하나 보다 했지, 내 자신은 보고 예쁘다는 인상말고는 다소 무심하게 지나쳤을 뿐이었다. 멋진 중년을 위해서 나도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졌다.
작년에 구에서 하는 일본어 교실 수업중에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리에게 작은 새싹이 심어져 있는 우유팩을 선물해 주었다. 아직까지는 죽이지 않고 소중히 여기면서 베란다에 키우고 있는데 화분이 작아져서 고민 중이다. 기차길옆 화단에 내다 심어서 모두 같이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만의 꽃보다는 모두의 꽃이 더 좋지 않을까 이제는 저 많은 꽃들이 어떻게 피고 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꽃씨도 함께 심어서 꽃들이 피어나는 걸 아이들과 함께 봐야겠다. 서로 친구하면서 자라는 꽃들은 작은 화분 속보다 더 씩씩하고 아름답게 피어나겠지.
이 곳 주택에 사시는 분들은  집 앞에 작은 공간이라도 생기면 화단을 만든다. 화단을 만들 형편이 안되는 분들은  크고 작은 화분에 온갖 꽃들을 심어서 지나가는 행인들과 기쁨을 함께 나눈다. 작은 한귀퉁이 땅이 있으면 꽃씨를 뿌리고 기달릴줄 아는 여유를 이제부터는 배워야겠다. 이곳은 지금 꽃천지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다. 나도 이번주에는 아이들과 화단에 기쁨의 한자락을 걸쳐놓아야겠다. <이 글은 남편의 해외 근무 때문에 지난해 6월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주부 고미애씨가 현지에서의 느낀 점들을 담은 것입니다. 고미애 아줌마는 매주 일본에서의 생활과 느낌, 그리고 다양한 소식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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