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악이 우는 밤에
뽕악이 우는 밤에
  • 승인 2005.06.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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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곽상주의 천태산 편지 2


 
아무리 농번기라 해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살랑 바람 부니 피로도 풀린다.
저녁을 먹고 마루에 걸터앉아 있노라니
집 앞 고추밭 아래 논에서는 청개구리 노래하니
이밤은 이렇게 고즈넉하니 깊어갈 모양이다.

며칠전만 하더라도 저 논배미에서는 개구리들이 우렁차게 울어대더니
그 개구리들은 어디로 숨은 건지 목청높여 우는건 청개구리 소리뿐이다.
시골에 오래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구별할 수 있는 울음소리.

그 청개구리 울음속에 참으로 귀에 익은 반가운 소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맹꽁이 소리였다.
맹꽁이를 이곳에서는 뽕악이라고 부르는데
어릴적 몸이 둔한 그 뽕악이를 잡아 달리기 시합도 시켰고
다리를 실로 묶어 이런저런 장난도 많이 쳤었는데
그 뽕악이들은 손에 잡으면 끈적거리는게 두꺼비 개구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뽕악이는 개구리처럼 펄쩍 뛰지도 못하거니와 두꺼비처럼 엉금엉금 기어 다니면서
논가의 풀속이나 진흙 속에 몸을 숨기고 사는걸로 기억되지만
평소에는 눈에 잘 띠지 않다가 마을 주변 논보리를 베어내고
모내기하려고 논을 갈면 그때부터 울어대는데 우는 기간도 불과 며칠뿐이었다.

그런 뽕악이들이 이젠 보호를 받아야 하는 생태 종이 되었다는데
소리 또한 들어보기 힘들어졌어도 우리 논에는 아직도 그 뽕악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여 해마다 요맘때면 은근히 그 울음 소리를 기다려 보곤 했었다.

만약 그 울음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우리 논에서 그 뽕악이들은 멸종된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렇다면 그것은 내 죄가 분명할진대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그 반가운 울음 소리에 다시 취한다.

사실 몇년전만 하더라도 수십마리의 뽕악이들이 울어댔는데
어쩌다 저 한두마리의 뽕악이 울음소리만 듣게 되었으니
내가 뿌린 농약에 그 뽕악이들이 사라져 갔단 말인가?

마음이 무겁지만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이 밤이 끝이 없을 것
어떤 변명도 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을 생각하면 구차해진다.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바라보는 먼 발치 가로등 불빛은 흙탕물빛과 조화를 이루건만 
아직도 다 채워지지 않는 주머니를 위하여 살생을 불사하는 인지라
오늘 밤 저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그 욕심을 조롱하는 듯하다.

곽상주 기자 rhtkqnfl@hanmail.net <곽상주 님은 전북 정읍시 인근에 있는 천태산에서 생활하며 생태 전문 인터넷 언론 정읍통문 등에 유기농과 생태 환경 등에 관련된 좋은 글들을 기고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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