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정명은 기자의 코스별로 가보는 북한산 등반기 5회


#망월사의 모습. 달을 바라보는 절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코스: 의정부시청→시청뒤 매표소→사패산 가는 길→포대능선→망월사→망월사역

오랜만에 의기투합했다. 일요일이니 가능한 일. 토요일이라면 오로지 기사쓰기를 위한 등산을 했어야 할 터인데…. Weekly서울에 북한산 산행기를 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안타깝게도 단 한번도 제대로 등산을 해본 일이 없다. `제대로`라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물론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풀이할 수 있겠지만 기자에게 그 세음절의 단어는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우선 두가지만 얘기해보겠다.
이전에 몇차례 기사에 푸념을 한 적이 있어 기사를 읽은 독자님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첫째는 바로 `즐기는` 산행이다.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누구의 말처럼 산이 거기 있으니 올라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기자는 그렇지가 못했던 것이다. `독자님들께 좋은 산행 코스 알려주기-바로 회사로 복귀해 기사 작성하기` 라는 족쇄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던 탓이다. 그래서 호시탐탐 좋은 산행코스에, 좋은 촬영 거리 찾느라 눈이 번뜩이면서, 마음은 항상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두 번째는 바로 `애프터 의식`이다. 순 우리말로 하면 `뒷풀이`라고나 할까. 이건 산행에 있어, 특히 기자같이 `풍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과장해서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의식이다. 혼자서 산에 오르건,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오르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란 얘기다. 바로 고픈 배를 채우고, 고된 산행으로 빠져 나가버린 수분을 보충하는…육체 생리학적 관점에서 봐서도 정말 중요한 일이다. 술과 푸짐한 안주. 그리고 신나는 여흥. 삼천포로 빠지는 얘기가 너무 길었나. 어쨌든 독자님들을 위해 이렇듯 중요한 걸 간과하고 고생하는 기자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이날의 산행을 그런 면에서 `아주 신나는 일`이었다. 함께 한 인원은 모두 넷. 그중에는 기자의 초등생 공주님도 끼였다. 나머지는 모두 장성한 어른들.
각각 맛나는 밥과 반찬, 그리고 수분을 보충할 드링크제를 준비하고 만난 장소는 의정부 전철역. 코스는 물론 기자가 골랐다. 만난 시간이 오전 10시 20분. 의정부 시청 옆에 위치한 의정부 예술의전당 바로 뒤켠으로 난 사패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기로 했다. 역에서 걸어서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니 벌써 11시가 가까워 온다.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공주는 벌써 숨이 차는 모양이다. 저만큼 떨어져 걸어오는데 이마에 구슬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다.



산으로 접어들자 무척 더울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산책로를 연상시키는 등산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공주의 인상이 달라진다. 갑자기 걸음이 빨라지면서 맨 앞의 일행 뒤에 바짝 달라붙는다. "야, 우리 공주 오늘 잘 가는데…." 어린이들은 칭찬을 많이 해주어야 한다. 중간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한모금.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약 1시간 40여분을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 하며 걷는다. 중간에 의정부 시청 뒤 매표소를 지나고, 안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고, 범골-회룡사 매표소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도 차례로 조우한다. 마침내 도착하는 곳은 사패능선. 거기서 길이 갈린다. 우회전하면 사패산행이고(약 1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좌회전하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도봉산. 이 코스를 처음 타보는 일행중 한 사람이 "야, 오늘 코스가 너무 밋밋한데…." 하지만 허언이었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약 20여분을 더 걸으면 갑자기 나타나는 끝보이지 않는 계단. 기자는 이미 수십차례 그 계단을 올라봤지만, 계단이 몇 개인지는 모른다. 아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또 셀 힘조차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하기 일쑤다. 그동안 `군소리` 없이 `씩씩하게` 잘 따르던 공주님이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입에선 `배고프다`는 소리가 연발한다. "아빠, 우리 삶은 계란 먹고 가자…." 어렵지 않은 부탁은 들어주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중간에 `휴-식!`. 각자 싸가지고 온 음식들중 간단히 먹을거리를 꺼낸다. 삶은 계란을 비롯, 차갑게 얼려놓은 물, 그리고 오이 등등이다. 계란 6개가 순식간에 동이 난다. 공주에겐 두 개가 돌아갔다. "스파게티보다 100배는 맛있다"를 연발하는 공주. 그도 그럴 수밖에. 산에선 꽁보리밥에 고추장만 있어도 산해진미다. 술을 좋아하는 일행중 한 명은 "이럴 땐 막걸리가 제격인데…" 하며 못내 아쉬워한다.
다시 산행. 마지막 남은 계단들을 죽을 힘을 다해 오른다. 확 트이는 시야, 확 트이는 마음…. "이제 고생 끝이다."


#my daughter sing a song "bobbarabopbop"

약 10여분을 더 걸으면 탈출구인 망월사행 표지판과 만난다. 내려가는 길도 그럭저럭 괜찮다. 경사가 급한 곳은 계단이 놓여 있어 관절 등에 큰 무리 없이 내려갈 수 있다. 10여분을 걸으면 나타나는 웅장한 규모의 절. 망월사(望月寺)…달을 바라보는 절이다. 그 절안에 산채 만한 바위가 있고 그 아래 신기하게도 약수가 고여 있다.


#mangwol-temple

다시 하산길. 아까 먹었던 계란 두 개의 약효가 다했는지 공주가 밥을 먹자며 "밥바라밥밥밥밥…"노래를 부른다. "조금만 더 가면 아주 좋은 곳이 있으니 거기서 먹자"며 하산길을 재촉한다. 20여분을 걷다보면 나타나는 계곡. 망월사쪽에서 발원한 물과 도봉산 주능선 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나 계곡 사이로 흘러내린다. 물의 양도 꽤 많다. 적당한 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공주는 수영을 하겠다며 물이 많이 고여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랜다.
술과 밥과 수영과 모두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장소를 간신히 찾았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의정부 역에서부터 3시간 30여분 걸린 셈이다. 자리를 펴자마자 웃옷을 벗어 제끼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북극해의 바닷물보다 더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절로 탄성이 나온다. 피로가 한꺼번에 싹 가신다. 바로 이거야.
용왕님 수라상보다 더 찬란한 성찬이 차려진다. 공주는 큰 도시락을 먼저 챙긴다. 김치볶음에, 멸치볶음에, 술 좋아하는 일행이 전날 직접 부쳤다는 각종 부침개, 고추장, 그리고 특별음식으로 준비한 족발까지…. 아참, 물론 배낭 속 깊숙이 `식지 않게` 보관해 온 소주병도 물론이다. 음식들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활약이 돋보이는 건 물론 공주.
"맛있냐?" "……" "맛있냐구?" "……"


#mysterious tree

몇 번을 물은 끝에 간신히 나온 대답…"꿀 맛이다, 꿀 맛!!"
소주 몇 잔에 취기가 돈다. 밥을 다 먹은 공주는 이내 물 속으로 풍덩. 옆 자던 사람들이 구경이라도 났는지 쳐다보다가 한마디씩 한다. "춥지 않니?" 그러고보니 방금 물속에 들어간 공주의 입술이 파래진다.


# the boy enjoy  on the water falling

성찬 자리가 끝난다. 2%의 부족함이 남지만 이 정도가 딱 좋다. 짐들을 챙겨 배낭에 쑤셔넣고 계곡을 따라 내려온다. 암벽 폭포위에서 미끄럼을 타는 아이들…. 그들에게 여름은 천국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 만 한 것일 터이다. 망월사 역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서울왕족발`이라는 족발 공장이 있다. 등산객들을 위해 직접 만든 족발을 팔기도 하는데 가격은 6000원(작은 것)과 10000원.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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