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명은 기자의 북한산 샅샅이 훑기-도봉산 망월사→민초샘→자운봉→마당바위→도봉산매표소



눈이 시리다. 20초간 쳐다보았다간 망막이 녹아내리기라도 할 듯 하다. 저처럼 처절히도 붉을 수 있을까. 가는 세월…가는 가을…가는 시간…가는 순간에 온몸으로 저항이라도 하려는 듯.



망월사역에서 엄홍길 기념관 앞을 지나 계곡을 따라 망월사 방향으로 오르는 등산로. 도처에는 핏빛 단풍들이 지천으로 소요를 하고 있다. 하늘에도, 땅에도, 그 사이의 텅빈 공간에도 저마다 벗어제낀 몸뚱아리들을 벌겋게 드러내놓고 있는 11월 마지막의 그것들.
많이 고민했다. 어느 곳으로 가야지, 좀더 확실한 아쉬움의 현장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하고. 송추로 가서 여성봉-오봉 코스를 타야 하나, 의정부로 가서 의정부 시청 매표소-사패산-사패능선-포대능선-자운봉 코스를 타야 하나, 아니면 북한산 백운대를 올라볼까?? 물론 이 모든 고민은 모두 독자님들을 염두한 탓이다. 마지막 가을…독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완연한 단풍을 보여드리고자 한 고뇌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망월사행을 결정했고, 오르는 길 99% 만족할 만하다. 아쉬운 점은 오르면 오를수록 산은 이미 겨울로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비가 온 뒤라서 길이 미끄럽다. 게다가 등산로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내린 단풍들의 시체들. 낙엽이 많이 쌓인 이쯤이면 길은 더욱 미끄럽기만 하다. 오르는 길에도 내려가는 길에도 통나무처럼 미끄러져 뒹구는 건장한 등산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절대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과 만장봉 근처에선 끔찍한 현장도 목격했다. 자세한 설명은 잠시 뒤로 미루고, 자 오후 1시에 시작한 산행, 서둘러야 한다. 해가 짧아져서 자칫 잘못하다간 일몰 뒤 어두움 속에서 하산을 해야 할 터….


#망월사 바로 아래 위치한 표지판. 세갈래길이다. 자운봉 방향으로 좌회전.

망월사역에서 계곡을 따라 망월사 방향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다소 급하다. 입구에서부터 등산로가 갈라지는데 매표소에서 바로 우회전하면 원도봉사를 거쳐 포대능선 끝 부분과 만난다. 그곳에서 좌회전 하면 도봉산 정상 방향이고, 우회전하면 사패능선을 거쳐 사패산-의정부 쪽과 만난다.
매표소에 위클리서울 지난호 몇 부를 전달하는데 아저씨 한마디 하신다.
"요즘 얌체족들이 많아요. 돈 안내고 입장을 하는 가 하면, 올라가서도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고…. 올라가서 담배 피우고 불 피워서 음식 해먹는 사람들도 있다니깐요. 그래서 쓰겠습니까. 그런 기사좀 많이 써주세요."


얘기가 짧으면 좀더 들어주려 했는데 너무 길어진다. 중간에 컷. 위클리서울 독자님들중엔 그런 몰지각한 분들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계도도 좀 해주시길. 기자도 실제로 산행중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야 흔하게 볼 수 있고, 날씨가 많이 쌀쌀해진 때에는 준비해온 버너로 찌개 등을 데워 먹는 사람들도 목격할 수 있었으니…. 문제는 쓰레기와 화재다. 특히 겨울철엔 곳곳서 피어오르는 불길 때문에 수십년, 수백년, 수천년에 걸쳐 간직돼온 자연이 고스란히 파괴되기도 한다.


직진해서 망월사로 오르는 길. 오르는 사람들보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요즘은 주5일 근무가 대부분이어서 토요일에도 이른 시간부터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다.


약 40여분 계곡을 따라 흐드러질 정도로 불타오르는 단풍과 어우러지며 발걸음을 옮기면 나오는 세갈래길. 오른쪽은 망월사를 거쳐 포대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기자는 민초샘 방향으로 좌회전. 시간이 늦은 때문이다. 거기서 부턴 급경사길이 이어진다. 같이 간 동행의 입에서 연신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낙엽 조심해서 밟고 한눈 팔지 마세요" 당부하는 걸 잊지 않고…. 이마에선 줄줄줄 흘러내리는 땀. 온몸이 땀 투성이다. 쌀쌀한 날씨에 땀흘리는 것 기분 썩 괜찮다. 어디가서 이렇듯 땀을 흘려보겠는가. 그것도 순전히 노동에 의해 배출되는 땀이니 보람도 있다. 이렇게 땀을 흘리다보면 스트레스는 날아가고, 건강은 자연스럽게 챙겨지는 것이다.

"힘은 드는 데 상쾌하긴 하네요."
초보 등산객에 속하는 동행인의 얘기.

"것봐, 그렇다고 했잖아요. 자주 좀 다니라고…" 으쓱해진 기자의 한마디.
어라? 그런데 풍광이 바뀌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져버린 단풍. 그 자리엔 말라비틀어진 잎들만 한 두 개씩 눈에 뜨일 뿐…완연히 겨울산의 처참한 몸뚱아리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다. 하긴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럴만도 하지.


#포대능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 민초샘. 도봉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약수터일 게다.

약 30여분 숨이 턱턱 막히는 거친 급경사길의 돌계단을 마치 스님이 수행을 하듯 딛고 또 딛고 한발 한발 오르다보면 능선 바로 아래 은밀한 곳에 자리한 샘. 바로 민초(民草)샘이다. 바위 틈새로 한두방울씩 떨어져내리는 물이 고여 만들어진 샘이기 때문에 물량이 아주 적다. 조그마한 생수병으로 한두개 뜨면 없어져 버릴 정도. 때문에 물을 마시면서도 조심스럽기 그지 없다. 그만큼 물맛은 꿀맛.


#민초샘에서 오르면 만나는 포대능선의 표지판. 자운봉으로 좌회전.

거기서 20-30여미터를 오르면 포대능선과 만난다. 우회전 하면 사패능선을 거쳐 사패산으로 향하게 되고, 좌회전 하면 만장봉-자운봉 등 도봉산 주봉우리들과 조우한다. 좌회전. `Y계곡` 가는 길과 우회로가 교차하는 지점이 코앞에 있다. 초보 산행가 덕분에 우회로를 택한다. 물이 질퍽거리는 등산로를 조심 조심 한참을 걷는데 헬기 소리가 머리 위에서 크게 들려온다.


#사고가 난 뜀바위. 출입금지 구역인데도 사람들은 지키지 않는다.

"어디서 사고가 났나?" 나무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헬기의 모습. 몇 바퀴를 순회하더니 주봉우리쪽으로 다가간다. 사고는 만장대 쪽에서 난 모양이다. 기자의 본성이 발휘되려는지 걸음이 빨라진다. 거의 뛰다시피 능선에 올라보니 헬기가 보인다. 예상이 적중했다. 만장봉에서 이어지는 뜀바위쪽이다. 거긴 출입금지 구역인데 쯧쯧. 사고 등산객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아슬아슬 로프에 매달려 헬기에 태워지는 순간이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뛰어올라 간신히 촬영했다. 헬기에 태워지고 있는 저 사람은 어찌됐을까.



카메라를 꺼내 간신히 한 컷을 찍자 기다렸다는 듯 급하게 출발하는 헬기. 저 사람은 어찌됐을까, 혹 잘못되는 건 아닌지…저긴 사고가 났다하면 크게 나는 곳인데…. 걱정과 동시에 위험하다고 출입금지 간판까지 세워놓은 그곳에 굳이 올라간 인간들의 오욕, 대자연 앞에 같은 인간으로 선 부끄러움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사고 직후임에도 그곳엔 또다른 인간군들이 잔뜩 오르고 있거나 올라 있다. 벌금 30만원짜리 "야호…"를 외치면서.


#만장봉



#자운봉

마당바위 쪽으로 내려오는 길. 역시 아래로 내려올수록 핏빛 단풍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특히 도봉산 유원지 부근은 절정을 이루고 있다. 하산한 사람들이 그 아래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매표소를 나서면 늘어선 음식점 행렬들. 우리도 오늘은 저 속에서 한 번 어우러져 볼까나. 돼지등갈비(15000원)에 막걸리를 마시는 데 금새 배가 불러온다. 식당안의 온기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진다. 정명은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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