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지금도 투쟁, 내가 쓰러져선 안돼"
"그들은 지금도 투쟁, 내가 쓰러져선 안돼"
  • 승인 2005.11.2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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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해 다시 단식농성장으로 향한 강기갑 의원 일기장 공개


 
쌀 협상 비준동의안 처리를 반대하며 21일째 단식하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16일 오후 갑작스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입원했다가 다시 농성장으로 복귀했다.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강 의원은 16일 오전부터 호흡곤란을 느끼다 오후 3시경, 저혈당과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겨진 강 의원은 종합검진과 함께 산소호흡, 수액공급 같은 의료 조치를 받았다.
의료진은 “강 의원이 수액 부족으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2∼3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병원을 찾은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강 의원에게 단식을 멈출 것을 권했지만 강 의원은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거듭 혔다.

강 의원은 의사들과 의원단의 강력한 만류에도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17일 국회 농성장으로 되돌아갔다.

강 의원은 병실에서도 "절대로 언론에, 농민들에게 알리지 말라.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가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의원은 이미 몸무게가 45㎏까지 줄었으며 혈당수치는 위험 수준인 60까지 떨어졌다.

한편 강 의원은 입원 직전부터 퇴원까지의 심경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를 공개했다.
 다음은 강 의원의 일기를 간추린 것이다.

『호흡이 너무 곤란하여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복식호흡으로 극복해 보려 눈을 감고 노력해 보아도 갈수록 더 깊이 숨을 쉬어야 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저혈당이 지속되면 신장장애가 오고 폐와 호흡에 이상이 생겨 호흡이 곤란할 것이라며 효소를 필히 먹으라는 분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며 효소 먹는 것을 미루어 왔다. 그러나 `이제 먹어야겠구나` 싶어 보좌관에게 효소를 조금 묽게 타오라 했다. (중략)
가부좌를 틀기도 했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보기도 했지만 호흡곤란은 해결되지 않는다. 누워보면 좀 나을까 싶어 2시 본회의에 의원들이 다 들어가고 난 후 세종대왕상 옆에 침상을 준비하라고 주문하고 기다렸다. 공원에 가서 맑은 공기를 쐬며 산책을 해볼까 망설였지만 힘에 부쳐 침상에 누워서 심호흡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더 심해짐을 느끼고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등 뒤가 굳어지고 횡경막이 답답하고 숨이 가파와 몸이 앞으로 구부려졌다.
보좌관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산소호흡기가 의무실에 있다면 사용해 봐야겠다 싶어 알아보라 하고 그 답을 기다리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듯 한지…. (중략)
전국의 농민들이 이렇게 투쟁하고 있는 지금 내가 쓰러져서는 안 된다. 우선 병원에 가서 포도당이나 하나 맞고 산소호흡으로 호흡고통만 해결하면 되겠지 하고 병원으로 왔다.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15일 농민대회에서 경찰방패에 맞아 목을 다친 동지가 부은 얼굴로 날 쳐다본다. 그 동지의 손을 잡아보고 응급침상에 누웠다.
점점 심해지는 호흡통증에 `아, 사람이 숨을 못 쉬는 고통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 것 같았다. 약이 투입되고 몸은 편안해져도 호흡은 좀체 진척이 없는 것 같다. 계속 복식호흡을 했지만 답답한 가슴 쪽으로 최대한 힘을 주어 숨을 쉬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조금씩 가슴 통증이 적어지면서 몸이 붕 뜨는 편안함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서부터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더욱 실감한다. 평소에도 공기의 고마움을 느끼기 위하여 얼굴을 물에 묻고 숨을 참아보았지만 이렇게 긴 시간 겪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제야 응급실 병실의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옆 할아버지의 천식성 호흡곤란은 산소 호흡기를 꼽고 있으면서도 숨이 곧 넘어가는 듯하다. 한쪽에서는 어느 아주머니의 견딜 수 없어 내뱉는 푸념 섞인 신음소리가 애처롭다. 아직도 남아 있는 횡경막의 통증과 고통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듯하다. 이들을 위하여 마음을 모았다.
응급실장이 찾아와 검사결과를 이야기하며 입원을 권하였다. 포도당만 맞고 안정되면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지만 혈액내 산소량의 부족과 전해질의 불균형으로 다시 악화되면 경련과 마비현상까지 올 수 있으므로 우선 입원 후 경과를 보자는 말에 어제 현상이 떠오르면서 그러자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마련한 듯한 입원실로 옮겼다.
천영세 원내대표와 심상정 부대표가 방문하여 더 이상 단식은 곤란하다며 할 일은 다했으니 단식을 접자고 하였다. 갑자기 우리 농민들의 절규가 다가오면서 그들의 몸부림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생각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는데 왠지 억센 팔뚝과 검은 얼굴의 우리 농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그냥 흐른다.
10년간 수십조 원을 투자하였다는데도 왜 우리 농민들은 이렇게 척박하게만 살아가야 하는가? 이렇게 삶에 몸부림이 절박한데도 왜 농민들의 목소리는 반짝하고 지속성이 없는 것일까? 왜 그냥 묻히고 마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농업을, 농촌을, 농민을 살려낼 수 있을까? (중략)
그놈의 상업농을 세계화가 불러와, 참새가 황새 따라 경주하는 형국이네. 에헤라 아서라, 경쟁이란 말 내던지고 상생의 깃발 잡고 생명농업 이룩하세. 이 길만이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라네.
청와대는 지금 당장 막은 귀를 열어 놓고, 농림부는 안일 무사 관행에서 떨쳐나와 고사 직전 우리 농촌 회생대안 세워보세. 표 관리에 급급한 의정일정 탈피하고 진정한 농업 정책 대안으로 만들어서 정부와 농민단체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그 동안 가득했던 농정불신 제거하고 우리 농업 살려낼 의지를 모아보세.
정부, 국회, 농민이 한 마음만 된다면야 지금도 우리 농업 살릴 길이 없진 않고 외국산 싼 농산물에 마음 혹한 국민들도 우리 농업 우리 먹을거리 소중함을 깨닫고 팔소매 걷어붙이고 나설 소비자 많을 거네.
이러한 농촌, 농업 우리가 설계하여 지금부터라도 합심하여 실천하면 참으로 신명나고 살맛나는 우리 농촌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갈길이 멀고 마음이 닫혀 있으니 암담하기 그지없다. 원무실장이 검진 차 들렀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소식에 오전 중 퇴원을 희망하고 퇴원하기로 했다. 실장은 안정을 취한 후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어 놓았지만 지금 농민들의 실정을 생각한다면 내가 이렇게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된다.(중략)
아무튼 오늘은 퇴원이고 또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2005년 11월 17일 성모병원에서 단식 22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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