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연재> 고홍석 교수의 산내마을 쉼표찾기

`Weekly서울`이 연재하고 있는 `쉼표 찾기`는 오랜 학교생활과 사회활동 후 안식년을 가졌던 전북대 농공학과 고홍석 교수가 전북 진안군 성수면 산내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고 교수는 지난해 3월 전북 전주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 한적한 산내마을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갔다. 고 교수의 블로그에도 게재된 이 글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쉼표` 찾기가 될 것이다. 고 교수는 `Weekly서울`의 연재 요청에 처음엔 "이런 글을 무슨…"이라고 거절하다가 결국은 허락했다. `쉼표찾기`를 위해 산내마을에 들어간 고 교수는 지금도 시끄러운 정세와 지역현안들로 바쁜 사회참여활동을 하고 있다. <쉼표 찾기>를 통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Weekly서울`은 고 교수가 부인과 함께 산내마을로 이사를 가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모든 글과 사진들을 거르지 않고 연재하고 있다. 때론 초겨울에 봄 이야기를, 한 겨울에 여름 이야기를 접하는 일도 있겠으나 그 또한 색다른 재미가 될 듯 싶어 빼놓지 않고 게재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흐르는 강물에 가슴을 적시다  (4/16)
 
이사올 때 밝게 피어 환한 얼굴로 반기던 살구꽃은 그 사이에 지고 이파리가 나기 시작한다. 그 뒤를 이어 앵도꽃이 피더니만, 이제 애기명자나무 꽃이 한창이고 배나무에도 꽃이 반쯤 개화하고 있다. 각각 열매 맺는 시기가 다르니 꽃이 피는 것도 그 시간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아내와 나는 매일 아침 마당에 나서면 이제 어느 나무가 꽃을 피우는지를 살피는 게 하루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날씨가 풀리면서 이파리들이 눈으로도 가늠이 될 정도로 쑥쑥 자라나고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도시생활에 찌들어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들로서는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상쾌해진다.
 
어제는 도시 근교에서 전원주택을 예쁘게 짓고 사는 친구가 우리 시골집을 방문했다. 물론 우리 집도 이곳 마을사람들이 보기에는 리모델링을 하여 거의 전원주택의 수준이다. 하지만 친구 집과 비교하면 우리 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당과 유실수가 주종을 이루는 화단인 우리 집과 마당에 잔디를 깔고 조경수로 가꾸어 놓은 친구 집과는 가장 쉽고 확실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우리 집은 가난하게 살고 있는 마을의 한 구성원이지만, 친구네 마을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시골집을 고수할 것이다. 아직도 뒤쫓아오지 못하고 있는 영혼과 그림자는 느림과 여유와 가난함의 접점에서만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에는 구멍가게도 없다. 구멍가게는 걸어서 25분 정도, 차도 5분 거리에 있는 좌포리까지 나가야 한다. 우리 마을에는 아직까지도 소 달구지가 있으며, 그 소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다. 디카를 들이댔더니 소가 슬며시 고개를 돌린다. 부끄럼을 타는 것일까. 낯을 가리는 것일까. 얼마나 주인이 잘 대해 주었는지 온 몸이 반질반질하다. 기계화 영농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는 농촌 인력이 부족한 형편인데 아직까지도 축력을 이용한 농사를 고집하는 농부의 순박하고 우직한 고집이 우뚝 선 산처럼 보인다.

강에 나서면 강물은 햇빛을 받아 물살을 튕긴다. 그 잔잔한 파장 사이로 빛의 굴절이 달라 더욱 물살을 속살을 드러낸다. 바람도 그 연출에는 훌륭한 조연 역할을 한다. 강 건너 산에는 산벚꽃이 한창이다. 진달래까지도. 흐르는 강물에 가슴을 적신다. 햇빛으로 빛나는 물살의 파장으로 가슴을 데운다.

문득 총선이 끝나자 우리네 사는 것이 걱정이다. 잔치집에 소금뿌리는 격이지만, 역사의 주인인 민중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 총선 결과가 이라크 파병,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비정규직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부안핵폐기장, 신용불량자의 폭발적 양산 문제, 청년실업 문제 등 노무현 정부의 정책 실패를 합리화시켜 주거나 더욱 우경화로 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언제나 해가 뜨는 것과 지는 것은 가슴을 떨리게 한다. 산너머로 해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녁이 오면 자연스레 시골은 일을 마무리한다. 강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앞집에서 팥죽을 쑤었다면서 한 그릇을 퍼준다. 답례로 귤을 한 봉지 보냈다. 아파트에 살 때는 앞 집과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목례 정도가 고작이었었는데. 가마솥에서 끓인 팥죽은 팥죽 전문가게에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이 좋다. 팥죽을 달게 먹고나니 오늘 만난 달구지의 소처럼 음메~~~하고 소리지르고 싶다.

 
낙엽 소관목으로 높이 1m, 가지는 대개 가시로 변한다. 꽃은 짧은 가지에 3-5개가 모여 달리며 지름 2.5cm의 주홍색이고, 꽃잎은 도란형.도란상 원형이고 3-4월에 개화한다.



배꽃이 환하게 피었다. 이화여대에서는 예전에 데모에 동참하지 않은 대학 총학생회에 감자 한 자루 혹은 가위를 보냈다. 감자나 쳐먹거나 그것을 짤라 버리라고...... 배꽃을 보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하는 삼경인데......`가 먼저 떠오르지 않고.



달구지를 끄는 소. 정면에서 보니 잘 생겼다.


얼굴을 피하며 수줍어하는 것 같아 옆에서 다시 한 컷.....


햇빛이 비치면 강물은 파장을 드러낸다. 흐르는 강물에 가슴을 적신다. 역사와 민족을 향한 열정을 살려야....


해가 산에 고개를 반쯤 걸치고 있다. 저녁이다. 쉬는 쉼표..... 마침표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쉼표.....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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