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석자만 더 길었으면 임꺽정과 만날 수 있을 텐데"
"손이 석자만 더 길었으면 임꺽정과 만날 수 있을 텐데"
  • 승인 2005.11.30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명은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남양주시 천마산편


#천마산에 지천인 낙엽송


우중충하다. 금새라도 비가 올 듯…. 버스 창으로 간혹 휙휙 지나가는 빈 들녘에선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올 겨울은 또 어찌 살아내야 할꼬…. 산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들도 알리라. 평생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는 `죄 아닌 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농민들의 심정을….


우울하다. 11.15농민대회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던 농민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전국에서 들끓는 분노.
그래 잠시라도 잊어보자.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떠난 산행길. 결국 내린 곳이 천마산 아래였다. 이전에도 몇차례 산행을 한 적 있는 그곳. 높이에 비해선 산세가 험하고 구경거리도 꽤 있는 그 산이다. 천마산유원지가 있는 등산로 입구 쪽은 식상하다. 이번엔 다른 코스로 올라보자. 호평-평내지구 대단지 공사로 아파트 천지인 호평동 입구에서 하차. 약 30여분을 공사장 사잇길을 따라 `불쾌한` 걸음을 옮기니 버스 종점이 나오고 거기서 15여분을 더 걸으면 만나는 천마산 매표소. 남양주시 시민들은 `공짜`, 타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1000원을 받는단다.


천마산(天摩山)은 남양주시의 한가운데에 우뚝 자리잡고 있는 높이 812m의 산으로, 남쪽에서 천마산을 보면 산세가 마치 달마대사가 어깨를 쫙 펴고 앉아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웅장하고 차분한 인상을 준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말 이성계가 이곳에 사냥을 나왔다가 산세를 살펴보니 산이 높고 매우 험준해 지나가는 촌부에게 이 산의 이름을 물었는데 촌부는 "소인은 무식하여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자 이성계는 혼잣말로 "인간이 가는 곳마다 청산은 수없이 있지만 이 산은 매우 높아 푸른 하늘에 홀(笏, 조선시대에 관직에 있는 사람이 임금을 만날때 조복에 갖추어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이 꽂힌 것 같아 손이 석자만 더 길었으면 가히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手長三尺可摩天)"라고 한 데서 천마산(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노부부가 등산로 가에 내놓고 파는 야채들.

매표소 바로 못미쳐 등산로 가에 텃밭에서 키운 야채 등을 내놓고 파는 노부부가 정겹다. 
산 입구 등산로 안내 표지판을 보고서 호평동→천마의 집→헬기장→임꺽정 바위→정상→가곡리로 방향을 잡았다.(나중에 오남리 방향으로 수정.)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날씨는 우중충하기만 하고 정상은 비구름에 덮혀 있다. 우산도, 우비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 괜히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등산객들도 많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할 수 있나. 그저 하느님의 가호만을 기대해 볼 뿐….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길 5분여 계곡이 나온다. 계곡 옆으로 난 조그마한 오솔길. 사실 자세히 보면 길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시멘트 길을 걷는 것보단 훨씬 낫겠다는 생각에 접어들었다. 조금 올라가면 한 아름은 되는 굵기의 나무들이 지천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곳과 조우한다. 나무 아래엔 가느다랗고 노오란 색의 솔잎이 지천으로 떨어져 쌓여있다.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낙엽송과 그 분신들이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쌍의 연인들이 마치 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인공들인 양 부럽게만 보인다.


길을 재촉한다. 10여분을 더 가다보면 다시 아까의 시멘트 길과 만난다. 좌회전하자마자 오른쪽으로 <천마산의 집>이 보인다. 이 곳을 관통해서 오르는 길도 있지만 출입통제. 시멘트 길로 주욱 오른다. 5분여 지나면 시멘트 길이 끝나는 지점에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가파른 경사…시작하면서부터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낙엽송들은 여전히 지천이다. 북한산이나 도봉산 등 서울시내의 산들과는 내용 면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임꺽정 바위 바로 아래에 위치한 기묘한 묘양의 바위. 거북인가??

조금 더 올라가니 나타나는 나무 계단.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날씨는 아까보다는 조금 개는 것 같다. 하느님의 가호다. 숨이 막혀온다. 이마에선 추운 날씨인데도 굵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린다. 잠시 쉬다가 다시 걷고 잠시 쉬다가 또다시 걷기를 20여분, 나무 계단이 끝나고 헬기장이 나온다. 몇몇의 등산객들이 어울려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 갑자기 등산가방 안의 도시락이 떠오른다. 여기서 끝장을 내?? 달콤한 유혹을 간신히 넘긴다.
또다시 나무 계단. 중간 중간에 나무 의자가 놓여져 있다. 관리청인 남양주시에서 만들어놓은 것인데, 왠지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살릴 수는 없을까. 다리가 아프면 낙엽 위에 덜퍼덕 주저앉아서 쉬면 되는 것이고….


#임꺽정 바위. 사진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웅장한데다 그 안에는 바위굴까지 있다.

얼마나 이 지긋지긋한 나무 계단을 더 올라야 하나, 위를 보는데 갑자기 집채만한 크기의 바위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바로 임꺽정 바위다. 그 유명한 임꺽정이 호평동과 마석 사이를 잇는 마치 고개(지금은 터널-마치터널-이 뚫려 있다.)를 주무대로 활동했는데 이 임꺽정 바위가 근거지로 이용됐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임꺽정 바위에는 장정 두세명은 들어가 기거할만한 크기의 바위굴도 있다.


#정상에 있는 표지판. 기자는 샘터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곳서 5분여 다시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세갈래길. 바로 정상 인근이다. 우회전하면 천마산 유원지 입구와 만나고 좌회전해서 약 50여 미터 걷다보면 정상이다. 태극기가 꽂혀있다. 정상 부근의 바위들이 미끄럽다. 이곳에만 비가 내린 모양이다. 정상엔 몇몇 등산객들의 모습이 눈에 뜨인다. 여기서부턴 초행이다. 동북쪽으로 천마산이 보이고 바로 아래는 오늘의 하산목적지 가곡리다. 왼쪽은 오남리 방향. 배가 고파온다. 참, 도시락을 싸왔지. 한적한 바위를 골라 자리를 잡고 앉아 성찬을 펴는데, 지나가는 행인이 보인다.
"여기서 가곡리 가는 길이 괜찮나요??"
"갈 수는 있는데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고 낙엽들이 많이 쌓여 있어서 등산로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래요??"
갑자기 생각이 달라진다.
"다른 곳으로 가는 길도 있나요??"
"오남리로 내려가는 것도 괜찮지요. 저는 그쪽으로 가는 길인데…."
갑자기 갈등이 인다. 오남리는 가곡리와의 갈래길에서 좌회전하면 된단다. 일단 밥을 먹고….


흘린 땀 때문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성찬을 끝내고 진행하던 방향으로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자 갈래길이 나온다. 잠깐의 갈등 끝에 좌회전 길을 택한다.
가파른 내리막길. 그런데 아뿔사, 등산로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낙엽이 쌓여있고,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탓이다. 이러다 길 잃어버리는 것 아냐, 불안한 생각이 엄습한다. 하지만 의식과는 반대로 걸음은 계속 아래로 아래로 하산길을 재촉한다. 어디선가, 두런두런 사람들 얘기소리가 들린다. 휴, 다행이다. 커다란 바위 아래 위치한 샘(무슨 샘이냐고 물었더니, 특별히 이름이 붙여져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천마산 옹달샘이라고 부른단다) 앞에서 아까 길을 물었던 등산객과 또 다른 등산객 한 명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 글쎄 이 천마산에는 멧돼지가 많다니까요!!"
"그래요??"
겨울에 오면 아주 흔하게 도처에서 멧돼지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단다. 얘기의 주인공은 실제로 멧돼지와 마주친 적도 있다고 한다. 간장이 서늘했다나??


#커다란 바위 아래 자리한 옹달샘.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둘은 옹달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다시 호평동으로 가는 길. 오남리로 간다고 하니, 길을 알려주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등산로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에라이, 그래도 내친 김이니 한번 헤매보자.
간신간신 길을 찾아 오남리 행을 재촉하는데 등산객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바위 틈에서 멧돼지가 뛰쳐나오는 거 아닌지 겁이 날 정도다. 계곡엔 물이 흐르고 주변엔 마치 울창한 정글을 연상시키는 나무 덩굴들이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얽혀져 있다. 장관이다. 군데군데 조그마한 폭포들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어느새 멧돼지 걱정도 사라지고 자연의 경관에 그저 푹 빠져든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을은 더욱 선명한 자태로 행려의 혼을 빼앗는다.


#오남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길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가히 환상적이다.

그렇듯 수려한 경치가 끝날 즈음에 인가가 나타난다. 민박과 식당을 겸해서 운영하는 곳. 자연속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 마치 별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그럴싸하다. 들어가서 명함 한 장을 받았다. 언젠가 한 번 이용해보리라. 기약 없는 혼자만의 약속을 하고…. 산에 둘러싸인 수려한 동네가 이어진다. 아,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듯 아름다운 동네가 있다니, 절로 탄성이 나온다.


#오남리 저수지

그곳서 20여분을 걸으니 쾌 큰 규모의 저수지가 나온다. 오남리저수지다. 몇몇 강태공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등산로 출구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약 30여분을 걸으니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총 5시간 정도를 걸었다. 편의점 앞에서 캔맥주 하나를 사 마시고 청량리행 버스에 오르니 단잠이 몰려온다. 정명은 기자 sljung99@yahoo.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