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폭설 피해 전북 지역의 애끓는 민성

 
▲ 축사 지붕에 올라간 농심, 몸보다 마음이 지쳤는지 외부의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먼 하늘만 바라본다.
 
폭설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폭설이 남긴 흔적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21일 하루동안 올 겨울 들어 가장 많은 45.9cm가 내린 가운데 면지역을 중심으로 피해 접수와 현황 파악, 응급 지원에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여전히 눈이 두껍게 남아 있는 정읍의 눈 피해를 취재하려고 중앙 언론들이 정읍에 다 모였다는 소리가 나도는 가운데 시내를 오가는 ㅈ일보, 덕천 우사를 취재중인 S방송사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정읍의 곳곳이 눈 폭탄을 맞아 일그러진 모습은 보기 드문 광경일 것이다. 오후 4시 지나 시내를 벗어나자 온통 백색 벌판.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길이 아닌지 알 길이 없다. 덕천 지나 이평가는 길 곳곳에 축사나 창고같은 것들이 붕괴된 모습이 눈에 띠고 차가 눈에 빠져 방치된 모습도 자주 보인다.

 사람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지만 쌓이다, 얼다, 녹다, 다시 쌓인 눈을 설탕에 찌든 크림처럼 이고 서 있는 소나무숲도 위태로워 보였다. 정읍의 소나무도 때 아닌 생존투쟁을 하고 있다. 눈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부러져 버리면 생이 마감된다. 어린 소나무의 경우 눈은 줄기까지 타고 내려와 얼어붙어 있었다. 정읍의 만물이 눈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시간이다.

    
 
▲ 덕천 소재지 지나치자마자 본 광경. 돌아오는 길에 보니 다행히 보험회사의 렉카차가 와 있었다.
 
산외 소성 옹동 태인... 농촌지역에선 폭설피해로 아우성

산외 노은 마을에서는 축사 100평이 붕괴되어 소 12마리를 구하고자 온 마을 주민들이 동원됐고, 소성 신광마을 ㅅ목장에도 우사 철거를 위해 인력이 투입됐다. 옹동에서는 눈으로 고립 위기에 처한 일리마을과 내칠마을 진입로 등을 쓸기에 바빴고.

우사가 밀집된 덕천 도계리 도계마을에서도 이집 저집의 축사가 붕괴됐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자기집 축사만 돌보는데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태인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비닐하우스 102동이  파손됐고 버섯재배사 4동, 축사 붕괴 35건, 주택반파 1건 등이 접수돼 있었다.


지붕 눈 쓸다 눈위에 망연자실 앉아있는 모습

덕천 도계마을입구에 있는 한 젖소 우사, 가운데가 내려 앉은 상태인데 그 아래를 젖소들이 오가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인데도 주인은 무너진 축사를 철거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고  무너지지 않은 우사 지붕을 쓸었다. 쓸다가 지쳤는지 그 젊은 주인은 어두워지는 시간에 우사지붕 눈위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다. 그 아래로 부모같은 두 노인이 오가며 거들고 있지만 아들은 일어날 줄을 몰랐다.

무너진 아래로 젖소들이 드나드는 것이 위험해 언제 붕괴됐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지난 금요일이란 대답이 들려왔다. 벌써 7일째 방치해 둔 셈이다. 인력을 지원받지 않으면 복구자체가 힘든 규모와 날씨였기에 그랬을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 덕천 도계리 도계마을 입구의 젖소 축사. 무너진 아래로 젖소들이 드나들어 위험했다.
 
"돕겠다구요? 차라리 하늘을 막아주세요..."

 이평 산매리 돈지마을 서모씨의 정미소도 무너졌다. 무너진 곳 아래는 벼와 트럭이 묻혀있었고 그 옆 건조기 3대가 파손됐다.

서씨 부부도 무너진 곳의 벼나 트럭을 빼내지는 않고 그 옆쪽 무너지지 않은 정미소 내부의 쌀가마를 들어내느라 분주했다 이미 무너진 곳이야 어쩔 수 없고 무너지지 않은 쪽이 무너져 버려 쌀을 모두 버릴까봐 쌀 정리를 하고 있다는 것.

일단 지원 병력을 요청, 다음날 오기로 되어 있어 복구하기 좋게 눈을 치워놓았다. 일하던 주인이 한마디 보탠다. "차라리 하늘을 막아주세요."

남편의 쌀 치우는 것을 거들던 서씨 부인이 말한다. "이렇게 눈에 무너질 줄은 상상도 못 해봤어요. 작년같이 추곡 수매가 일찍 끝났으면 우리가 벼를 보관할 일도 없을텐데 낼 모레 사이 수매가 있어 곧 나갈 남들 벼를 망쳐 놔서 큰일이네요. (정미소) 짓는 것이야 돈만 있으면 되는데 철거할 일이 더 큰 걱정입니다."

     
 
▲ 이평 돈지의 무너진 정미소. 아래에 공공비축미 수매에 낼 벼가 쌓여있다고 주인은 안타까워 했다. 수매를 바로 앞두고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 정미소가 무너지자 그 아래 깔린 트럭과 벼들.
 
`이미 무너져 버린 것은 포기, 아직 남은 것을 신경 쓸 때`

이제 사람들은 무너진 부분을 포기해버린다. 이미 무너지지 않은 곳이 있다면 힘을 그쪽으로 쏟고 있었다.

시내에서 만난 칠보 살며 농사 짓는 지인. 그 집 비닐하우스의 상태를 물었더니 소식을 들려준다. "연동기를 돌려 열로 건조시키거나 일부로 비닐을 찟어 눈이 안 쌓이게 해서 견뎌요."

철근이 손상되는 것보다 비닐이 파손되는 것이 더 저렴하니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큰 것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을 버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니...

지난 8월 초에 폭우가 휩쓸고 간 기억과 상처가 아직도 생생한데 올 겨울 폭설까지 내리니 정읍시민들은 자포자기의 심정들을 전하고 있다. 무차별한 자연의 예측 불가능한 조화겠지만 당하면서 억울한 사람들은 굳이 그 이유를 밝혀보고 싶다. 그러나 자조밖에 답을 구하지 못했다. 자조는 무기력감으로 연결돼, 절망이 전이된다.

남은 희망이 있다면 하나, 과연 특별재난지역에 `준`하는 것이 아닌 `특별재난지역`로 선포될 수 있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돼버렸다. 정읍통문=황성희 기자 redhann@yahoo.co.kr (황성희님은 정읍 지역 인터넷 대안언론 `정읍통문`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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