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사람들을 찾아서: 서울 용두동 '작은 예수회 소망의 집'

 *문 연지 16여년…식사 위해 찾는 이들만 하루 평균 450여명 달해 
 *다른 무료급식소들 쉬는 휴일에도 급식 "쉬는 날이라고 밥 안먹습니까"
* 밥값으로 받는 200원…행려자들 최소한의 자존심 지켜주기 위한 것
* "노숙자, 게으르고 범죄우려 있는 존재들 아니라 마음의 상처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밥 먹고 살기 힘들다"란 말이 단순한 하소연이 아닌 시절이다. 정말 밥 먹고살기 힘들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생계형 범죄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자기 밥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기에도 벅찬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도 이 세상은 살만 하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음지에서 남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작은 예수회 소망의 집`이라는 곳이 있다. `작은 예수회`라는 종교단체에서 사회를 위해 여러 가지 사업들을 펼치고 있는데 이곳은 그 일환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소망의 집은 1990년도에 설립되어 1997년에 현재 용두동으로 이사온 이래로 1년 365일 모두에게 문을 열어두고 있다.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분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는 곳은 여기 말고도 있다. 그러나 이곳만의 특징이 두 가지 있는데 연중무휴와 하루 두 번의 식사제공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은 1년 365일 명절도 없이 봉사하고 있다. 이 곳 책임자인 이윤우 수사는 "(작은예수회의 회장인) 박성구 신부님께서 너희는 휴일 날 밥 안 먹냐?"고 했다는 일화를 들어 그 취지를 설명해주었다. 

하루 두 번 식사를 제공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이 곳은 아침 9시에서 11시 30분까지, 오후 3시에서 4시 30분까지 식사를 제공하는데 이곳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식사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시간을 정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끼니때마다 한 시간씩 운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눈높이를 이곳을 이용하는 상대방에 맞추는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릇에 반찬을 담고 있는 이수사(오른쪽)와 김 사회복지사

현재 이 수사와, 김종익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네 분이 이곳에서 매일 봉사하고 있고 나머지 일손은 여러 성당에서 자원봉사 형식으로 거들어주고 있다. 하루 평균 450명 정도가 식사를 하는 곳이니 만큼 봉사의 손길이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그래서 때로는 식사를 하신 분들이 설거지를 거들어 주실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수사는 "정말 힘들 때면 도움을 주는 손길이 때마침 찾아오곤 하여 운영을 해올 수 있었다"며 웃었다. 

이곳은 사람들에게 밥을 나누어주지만 엄밀히 말해서 무료급식소는 아니다. 식사 값으로 한 끼에 200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0원에 일반가정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큰 밥공기에 밥이 수북하게 나온다. 국 그릇 또한 매우 크다. 다른 배식소에서 주로 식판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식당처럼 밥 그릇 국 그릇 반찬 그릇이 구분되어 제공된다. 200원을 받는 것은 이곳을 이용하는 분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자 하는 박 신부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존심까지 배려하고자 하는 의도다.

봉사자들에게 힘든 점이 없냐고 물었다. 이 수사는 "봉사를 통해 행복을 얻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안에서 힘든 일은 없습니다. 다만 예산문제가 늘 버거울 따름이죠"라고 대답했다. 작은예수회의 후원회가 주축이 되고 동대문구청, 인근 시장의 상인회 등도 후원을 하고 있으나 운영에는 부족한 형편이다. 특히 후원문화가 `공동모금`으로 쏠리는 추세라 개별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곳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이라고 한다. 용두동에 자리 잡은 지 10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월세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예산의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수사는 소망 식당에서 목욕·이발, 기초적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싶은데 예산이 발목을 붙잡는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김 사회복지사(왼쪽)와 주방일을 하며 봉사활동하는 오만수씨

특히 이 수사는 "정부가 노숙자 문제에 대해서 너무 민간에 방치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국가시설은 많은데 비해 아직 노숙자를 위한 국가시설은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이 수사는 올해 1월 2일에 600여명이 이곳을 찾았던 사례를 들면서 근래 들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서민들의 살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피부로 느낀다고도 했다. 추우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다는 이 수사의 말에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주방 일을 하며 봉사하고 있는 오만수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숙자였다. 원래는 주방장으로서 사회생활을 했었는데 몸이 아파서 일을 그만두었고 그 이후로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오씨는 "주방 일이라도 해서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데 젊은 사람에게만 일자리를 준다"고 푸념했다. 사회에서는 노숙자들이 일을 안 해서 굶고 있다며 일을 하라고 하는데 정작 일거리는 주지 않는 모순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씨는 그동안 자살 시도를 5번씩이나 했을 만큼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11월부터 이 곳에서 봉사하게 된 이후로 그러한 충동을 느낀 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이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김종익 사회복지사는 2002년 11월에 소망의 집 식당으로 왔다. 김 복지사는 노숙자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그릇된 시각을 매우 강하게 비판했다. 김 복지사는 사회에서는 노숙자, 정부에서는 부랑자, 그리고 생각 있는 이들은 행려자라고 부르는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같은 존재를 두고도 각기 다른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행려자라고 하면 `각자 사정이 있어서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란 뜻이라는 게 김 복지사의 생각. 즉, 상처와 한이 있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말하는 부랑자는 그 의미가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 복지사는 "이 말의 뜻은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범죄의 소지가 있으므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 자`"라며 "이 사회가 노숙자를 삐뚤어진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김 복지사는 `인식의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나 학계에서는 실직으로 인한 노숙을 노숙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는 게 그의 견해다. 그러나 김 복지사는 4년 동안 생활하면서 실직 노숙은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노숙을 하는 사람은 일하기 싫어서 굶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특정 계층이란 것이다.

내무부 표창까지 받았다는 노숙자에 대한 연구를 근거로 김 복지사는 노숙의 원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노숙을 하는 사람은 `가슴속에 상처와 한`을 품고 사는 계층이다. 가장 많은 사례가 가정파괴로 인한 피해자들이다. 태생적 고아들, 결손가정의 자녀들, 버려진 아이들, 부모의 잘못으로 가출을 한 아이들, 미혼모의 자녀들이 자라면 결국 이 사회의 시스템에 의해 노숙자로 자라난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 중에 1945∼1955년 생이 많은데 이들 중 다수가 전쟁고아이다. 물론 이러한 출신의 사람들이 모두 노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 중에. 약하고 착한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의견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온갖 악조건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사회적으로 자립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김 복지사는 비단 고아만이 아니라 파산이나, 이혼 등 정신적인 쇼크를 감당해내지 못한 이들도 노숙자가 된다고 했다. 재기하는 프로그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이 그들의 자립을 돕는 진정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정신적인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심리적 치료 없이 사회로 다시 들이민다면 결국 그 사람에게 실패를 거듭 강요하게 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김 복지사는 거듭 `마음의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노숙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조금은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램도 밝혔다.

"노숙자는 게으르고 범죄우려가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가슴속에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재기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어떤 시선을 보내왔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노숙자 분들이 식사하는 자리에 함께 해봤다. 잘못하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자리라 그런지 모두들 조용히 식사만 하고 서둘러 떠나곤 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200원을 받는 봉사자와 돈을 내는 노숙자의 모습이었다. 최대한 친절한 태도로 돈을 받는 봉사자와 감사를 표시하며 돈을 내는 노숙자를 상상했었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노숙자는 최대한 당당하게 돈을 냈고, 봉사자도 받아야 할 것을 당연히 받는다는 태도였다. 그 주고 받는 모습에서 200원이 주는 참 의미를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곳 봉사자들이 강조했던 것처럼 인식의 전환이 헌금 몇 푼보다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가슴에 상처를 안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왜곡된 시선은 더욱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오형석 기자 lorrely82@naver.com


-소망의 집 이용하는 할아버지 인터뷰
"200원 없어서 밥 못 먹는 사람들이 있다구!!"

소망의 집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 겸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온 행려자 한 분을 만나봤다. 이 곳을 이용하시는 사람들의 기분이 상할 것이 염려되어 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만나게 된 것이다. 이름과 나이 밝히기를 극구 거부한 이 60대 중반 정도 돼보이는 할아버지는 처음 기자가 접근하자 심한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어렵게 말문을 연 할아버지는 개인사업을 했고 `IMF 사태` 때 파산이 나서 가족까지 잃고 거리로 나섰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이 만만치가 않아. 나도 대학 나왔고 가족도 있었어"라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분노의 눈빛을 보였다. 세상을 향한 분노일까? 할아버지는 "자네 우리같은 사람한테 돈 한 번 줘봤어? 요즘엔 1000원도 안 줘. 200원 없어서 밥 못 먹는 사람이 있다구"라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문 할아버지는 누구나 자기처럼 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나 많이 하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어디를 가느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가는 곳 정해져 있지 않지만 다 바빠. 돈 없다고 안 바쁜게 아니야"라며 더 이상의 대답을 거부하고 등을 돌렸다.

이 수사의 우려대로 이곳을 이용하는 노숙자들은 자존심 문제에 매우 예민했다. 사람들의 차가운 인식으로 인해 더욱 웅크려지게 되는 노숙자들이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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