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무기한 노숙 농성 돌입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



지난 12일 상경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노동자들의 노숙농성이 일주일을 넘기고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 본사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하청지회 노동자들은 본사 측에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대화를 거부한 채 사설 용역 업체들을 고용해 노동자들의 접근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2004년 12월에 시작된 하이닉스매그나칩 비정규직 문제가 1년이 넘었는데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하이닉스 반도체에서 직장폐쇄를 한 데서 야기된 기나긴 대립은 이제 충북노사정협의회를 비롯해 종교계·학계 등 충북 지역의 각계각층까지 개입된 사회문제로 확대되었다. 작년 12월 22일 범도민대책위원회, 충북도, 청주시, 청주지방노동사무소는 하이닉스 측에 노동자와의 대화를 촉구하는 권고문을 발표했다. 가정파탄과 생계곤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는 문제인식에서 비롯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하이닉스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이닉스 측은 `하이닉스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성이 없으므로 대응해야 할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각계의 참여에도 진전이 없자 하청지회는 배수진의 각오로 서울 본사로 상경했다. 당초 계획은 12일 하루동안 우이제 하이닉스 사장과 대화를 시도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이 중간에서 가로막아 무기한 노숙농성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노동자들은 노숙농성을 시작하면서 이 곳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유서를 가슴에 품은 채 투쟁하고 있다.

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건물에 비닐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지난 12일 유서를 썼다. 120여명의 노동자가 각자 4통씩 써서 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 본사에 한 장씩 보내고 나머지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다. 16일에 청와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보낸 유서는 아직 반응이 없고 본사에 보낸 유서는 하이닉스 측에서 수령을 거부해 되돌아왔다.
21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다 17일 오후에 응급실로 실려간 박순호 하청노조 지회장, 역시 17일간의 단식 끝에 응급실에 갔다가 다시 청주의 농성장으로 내려간 임진헌 사무국장의 힘겨운 단식 투쟁도 하이닉스의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김충렬 성운테크놀러지 반장                                    #조남덕 금속노조 사무처장

하이닉스매그나칩 생산라인의 하청업체 중 하나인 성운 테크놀러지 소속인 김충렬 반장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곳에서 떠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 반장은 "이미 나락까지 떨어졌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집도 가정도 다 잃고 남은 건 몸뚱아리 밖에 없다. 이제 갈 데가 어디 있냐" 라며 배수진을 친 노동자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김 반장은 하이닉스가 대화를 안 해주는 것은 신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경찰이 자신들을 막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경찰과 전경 50여명은 하이닉스 건물 내에 대기 중이었다. 정문에는 사설 용역 업체 사람들이 10여명 있었고 그 안을 국가공권력이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이닉스가 입을 닫고 있는 가운데 건물 내에 대기하고 있는 전경 50여명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이 병력은 노동자들이 용역 업체를 뚫고 하이닉스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들은 왜 경찰이 건물 내에서 자신들을 막느냐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지만 경찰 측은 대답이 없다고 한다. 노사간 문제에서 국가 공권력이 과연 중립성을 지키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노숙 농성중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김 반장은 "청주에서 투쟁 중이었을 때부터 경찰이 하이닉스의 사설 업체처럼 움직이는 모습에 분노했다. 청주 공장에서 앞으로는 용역 업체가 막고 뒤에서는 경찰이 막아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경험도 있었다. 경찰과 사설 업체가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하나 하는 회의를 느꼈다"라며 공권력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표출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쓴 유서

건물 안의 은행을 이용하기 위해 들어가려고 해도 길을 막는 용역 업체와 실랑이를 벌여도 경찰은 그저 손놓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자신들이 관여할 수 없는 일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건물은 한 생명보험회사의 소유로 되어 있다. 은행측에서는 건물주가 원해서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고 하고 건물주는 가타부타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한다. 자유국가에서 은행도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 반장은 법에 대한 불신감도 드러냈다. 작년 7월말 청주지방노동사무소가 하이닉스 하청업체 4곳의 파견을 `불법파견`으로 결정했을 당시 이제 복직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결국 불법파견을 한 하이닉스 측은 벌금을 내고 끝내면 그만인 것을 보고 실망했다는 것이다. 미온적인 법규정이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큰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 반장은 하이닉스 측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실무진이 아닌 부장급들과 경찰의 주선으로 짤막한 대화를 가진 적이 있다. 우리 얘기를 들어는 보겠다는 얘기를 했지만 별다른 의미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답답함을 나타냈다. 김 반장은 우 사장의 비공식적인 발언에 대해서도 비난했다. 우 사장이 이원종 충북 도지사와 만난 자리에서 "(노동자들의) 딱한 사정은 알지만 다 고용할 순 없다. 선별고용 정도는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 반장은 대기업의 사장이 대화는 안하고 비겁하게 노동자 흔들기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게다가 알려진 바로는 올 해 하이닉스가 신설한 생산라인에 필요한 인원이 1,500명 가량인데 도의적인 차원에서라도 120명의 노동자들을 복직시켜 주는 것이 옳은 것 아니냐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남덕 사무국장도 노숙농성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다. 현재 중립성을 잃은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강남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려주었다. 얼마전 건물주가 농성장을 철거하겠다는 경고장을 보내왔다. 조 사무국장은 농성장 철거부분에 대해 "우리가 기물을 파손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공터에 비닐을 치고 노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안타까워했다.

조 사무국장은 비정규직 문제에 관련해 "우리나라의 자본가들의 의식이 너무 천박한 것 같다. 사람들을 저 비용으로 이용해서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들었다. 그 나라 기업가들도 자기가 조금 손해보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기업문화라는 걸 생각해서 추진하는 건데 우리나라 기업가들은 그런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비정규직 입법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현재 발의중인 비정규직 입법안은 일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사회 전체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현재 자기가 비정규직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전체의 70%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이 일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없어져야 하지 않나? IMF전에는 없던 것이 갑자기 생긴 것은 결국 자본가의 횡포라는 것을 증명한다. 사회 구성원이 같이 고통분담을 해야지 왜 노동자가 혼자 짊어져야 하나. 기업가들이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사회 약자에게 돌리는 것 중 하나가 비정규직이다."

조 사무국장은 참여정부의 키워드 중 하나가 사회 양극화 해소인데 그것을 위한 사회 각층의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한다. 실제 비정규직은 절대 빈곤의 삶을 살고 있지만 사회는 데모만 하는 사람들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는 언론의 잘못도 있음을 지적했다.
조 사무국장은 "노동자들의 농성을 전하는 대중매체에 대해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과열되어 폭력이 동원되는 모습만 찍어서 내보낸다. 그럼 사람들은 노동자 투쟁의 어두운 면만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유서를 쓰고 노숙농성을 한 지 일주일이 돼가지만 소위 말하는 중앙 언론사는 관심도 갖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까 누구 하나가 죽어나가야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라며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 사무국장은 정치인들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지원약속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했다. 사회에서 고립돼 있는 비정규직들의 극한의 처지를 알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조 사무국장은 마지막으로 혹시나 염려되는 우발사태를 걱정했다. 이 곳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고 스트레스와 피곤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에 피해의식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용역 업체 쪽에서 사소한 도발을 걸어오게 되더라도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사무국장은 만일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라도 하루빨리 대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년 12월부터 노숙 농성을 해왔기 때문에 몸이 성한 노동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진료를 나온 송홍석 의사는 "(노동자들은) 감기, 스트레스로 인한 위장장애 및 과민성 대장염, 차가운 바닥에서 자서 생긴 담 등 각종 질병들을 앓고 있다"고 했다. 간단한 응급치료는 할 수 있으나 근본적인 치료는 병원에 직접 가야 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건강은 위험에 방치되어 있었다.

현재 하청지회 측이 바라는 것은 `대화`가 전부다. 궁극적으로는 120명 노동자의 전원 복직이 문제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대화만 시작돼도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1년 동안 투쟁해온 결과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매일 저녁 농성장을 찾아와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민주노총을 비롯해 사회 여러 계층이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이들의 도움과, 생존의 궁지에 몰린 하청지회 노동자들의 무기한 노숙농성이 하이닉스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오형석 기자 lorrely82@naver.com



농성근로자 신익호씨 인터뷰
"6년간 놀이공원 한 번 같이 못간 아내와 아이에게 늘 미안"


#신익호씨는 고혈압으로 인한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농성장에서 진료를 받은 신익호(남. 33세)씨는 고혈압으로 인한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이 고혈압에 걸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신 씨는 의사의 진료 결과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신 씨는 작년 12월에 청주에서 노숙농성을 하면서부터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번 먹던 두통약을 이제는 매끼니 때마다 2∼3알은 먹어야 견딜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두통이 너무 심해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고혈압으로 안한 두통이라고 해 많이 놀랐다고 한다. 다음날 병원에 가라는 말에 낯빛이 어두워진 신 씨에게 조 사무국장이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나선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의료보험증을 쓰면 된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신 씨는 "작년 9월에 의료보험이 끊겼어요. 돈을 못 내서…"라고 말했다. 의료보험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료보험 혜택 자체를 받지 못하는 처지인 것이었다. 신 씨는 자신의 생계와 관련 "다른 집 아내들은 아르바이트하고, 붕어빵이라도 팔면서 어떻게든 생계를 꾸리죠. 근데 제 아내는 다섯 살 난 애를 돌보느라 아무 일도 못해요. 어린이집 보낼 돈이 없어서 애가 집에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절대적 빈곤에 시달린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유서의 내용에 대해 묻자 신씨는 가슴속에서 유서를 꺼내 보여줬다. 가족에게 죽음이라는 표현을 차마 쓸 수가 없어서 돌려 말하느라 고생했다며 웃는 신 씨의 표정은 메말라 있었다.
"집사람과 6년 살았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라 늘 빚에 시달리면서 살아서 그 흔한 놀이동산 한 번 못 데려갔어요. 고생만 시키고 남들 해주는 건 하나도 못 해준 게 늘 미안했어요. 아이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장난감 하나 사주지 못했거든요. 슈퍼에 갈 때 애한테 제일 미안해요. 원래 애기들은 그런데 가면 과자를 이것저것 짚잖아요? 근데 그 과자를 다 사줄 수가 없었어요. 아빠로서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아이와 아내에게 정말 사랑하고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근데 비정규직 싸움은 누구 하나 죽어나가야 이루어지는 거라서 큰마음 먹고 죽으러 간다고 했어요."
신 씨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이 현장의 고단함이 감정들을 말라버리게 만든 모양이었다. 신 씨는 노동자들이 유서를 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고 나서 가족들로부터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며 웃었다. 신 씨는 "무기한 농성이 끝나야 죽든지 살던지 할텐데 참 답답하네요"라며 유서에도 불구하고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하이닉스를 원망했다. 신 씨의 얘기 속에서, 1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농성으로 몸이 상하고 가정은 파탄지경에 빠진 하청지회 노동자들의  애환을 볼 수 있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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