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은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사패산→도봉산


#사패산 정상 인근의 버섯바위

그동안 북한산과 도봉산(도봉산도 사실은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된다. 북한산국립공원 관리공단이 같이 관할한다.) 산행에 게을렀다. 하도 많이 다니다 보니, 지루하게 느껴진 게 가장 큰 이유일게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족히 수백번은 다녀봤음 직하다. 특히 지난해 5월부턴 `위클리서울` 독자님들께 안내해드리느라 더욱 자주 찾기도 했던 터였다. 그래서 한동안 외유를 좀 했다. 그래봤자 서울 인근산들인데, 수락산이 그렇고 불암산, 용마산-아차산, 포천의 명성산, 경기도 남양주의 축령산, 천마산 등이 그렇다. 최근들어 몸이 근질거렸다. 외유 때문이다. 북한산이 그리워졌다. 서울에 살다보니 매일 보는 북한산이고 도봉산이지만, 그 깊은 품이 절절했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 올랐다. 북한산을 갈까, 도봉산을 갈까 하다가 이내 도봉산으로 잡았다. 그 북쪽 언저리에 있는 사패산이 먼저다. 사패산은 아직 구체적으로 독자님들께 소개해드린 적이 없다. 그래서 일부로 거쳐 가기로 작정을 하고 나섰다. 그 사패산 소개부터 해 올릴까나.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시발로 남으로 내려오다 원산 아래 추가령지구대에서 하나의 정맥을 떨군다. 이것이 한북정맥이다. 한북정맥은 내려오면서 백암산, 적근산, 대성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을 이루고 도봉산에 이르기 전 사패산으로 솟아 올랐다.

사패산은 동쪽으로 수락산을, 서남쪽으로 도봉산을 끼고 안골계곡과 고찰 회룡사를 안고 도는 회룡골 계곡 등 수려한 자연휴식 공간들이 숲과 어우러진 산이다. 사패산이란 명칭은 조선시대 선조의 여섯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올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숲이 있고 너럭바위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흐른다. 이곳에 가면 가재와 날도래, 강도래 등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수서곤충들을 만날 수 있다. 암봉의 형상이 매우 기괴한 사패산은 도봉산의 날카로운 암봉과는 대조적으로 정상이 넓은 암장으로 되어 있다. 물론 지금은 도봉산에 오르는 등산객들 중 많은 이들이 먼저 이 산을 찾고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을 거쳐 다시 도봉산으로 넘어간다. 기자 또한 이 길을 택해보았다.


의정부 역에서 전철을 내린다. 동북부 쪽으로 나와서 광장을 가로 지르면 나오는 차도. 횡단보도를 건너 우회전하면 바로 버스정거장이 나온다. 부곡 온천행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약 15분여를 달린다. 경민대 못미처 안골 유원지 정류장이 안내방송에서 흘러나온다. 내린다. 길을 건너면 안골유원지 표지판이 나온다. 길을 따라 약 20여분을 계속 걷는다. 시골 같은 풍광의 마을이 끝나는 무렵 위로 고가차도가 지나고 아래에 지하암반수 약수터가 있는 곳이 나온다. 직진. 왼쪽으로 얼은 계곡이 이어진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날씨가 그럭저럭 포근하다. 이제 봄이 오려나…. 봄이 오면 숨 죽이고 있던 저 계곡가의 버들강아지 나무들이 싹을 틔워내겠지…. 유독 추웠던 이번 겨울. 따뜻한 봄이 그립다. 봄의 여신이 내뿜는 온기를 받은 뭇 생명들의 기지개가 그립다.

계곡을 건너면 시청 뒤 매표소로 올라가는 등산길이 나온다. 건너지 말고 계속 직진. 유원지의 음식점들도 한가하기만 하다. 겨울이라서 손님들이 없는 모양이다.

약수터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길 20여분. 드디어 등산로가 나온다. 갈림길이 나오면 무조건 오른쪽 길을 택한다. 그렇게 하면 사패산 정상과 직접 만날 수 있다. 물론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등산로 중간에 약수터가 한 군데 더 있다. 몇몇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안골 등지에서 약수를 받으러 온 사람들로 보인다. 시원한 약수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신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식는다. 서둘러야 한다. 오늘 등산로는 만만치 않다. 대략 예상 소요시간만 5시간. 그것도 혼자이니 망정이지 동행이라도 있다면 시간을 더 늘려 잡아야 한다. 약수터에서 30여분, 숨을 헐떡거리며 눈이 덜 녹아 다소 미끄러운 오르막을 끙끙거리며 오르면 어느 지점에서 시야가 트인다. 남쪽으로 버섯바위가 옹골지게 자리잡고 있다. 그 버섯바위 아래쪽에 남근을 닮은 바위가 하늘을 찌르듯한 자태로 서 있다. 남근을 보면서 선조의 여섯째 딸 정휘옹주를 떠올리는 건??


#포대 능선에서 바라본 사패산 정상. 거대한 바위 하나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걷노라면 드디어 사패산 정상과 만난다. 어느 산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희귀한 모양이다. 정상 전체가 마치 드넓은 평원과 같은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게 하나의 바위 덩어리다. 북쪽으로는 끝보이지 않는 절벽 그리고 그 너머로 멀리 검단산이 버티고 서 있다. 남쪽은 도봉산 방향이다. 만장봉-자운봉 등 도봉산 정상은 보이지 않고 그 오른쪽으로 오봉만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 겨울인데 따뜻하게 햇볕이 비치는데다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아 포근하기만 하다. 물을 한모금 마신뒤 다시 출바알….

사패능선을 거쳐 20여분 걷다보면 나무 계단으로 된 깔딱고개가 앞을 떠억하니 가로막아선다. 제일 지루하고 힘든 코스다. 기자도 이전에 쉬지 않고 오르려다 숨 넘어갈 뻔한 그 깔딱고개. 아예 포기하고 천천히 천천히 걷자고 스스로 맹세한다. 마음이 편하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마음을 비운 모양이다. 절대 앞지르려 하지 않는다.

15분여 걷다 보면 능선이 나온다. 살았다. 이마에 땀줄기가 흐르는데 장갑을 낀 손을 차갑기만 하다. 잠시 쉬고 있자니 등줄기가 싸늘해진다. 이러다 감기 걸릴라. 보온병을 꺼내 뜨거운 물을 호호 불어가며 몇 모금 마신다. 얼었던 손도 녹인다.


다시 능선길을 따라 출발. 많지 않던 등산객들의 수효가 갑자기 불어난다. 따뜻한 날씨 때문인가 보다. 스쳐지나가는 일부 등산객들의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진동한다. 한잔씩 걸친 모양이다. 길이 미끄러운 데 술이라…조심들 하셔야 할텐데.
망월사에서 원도봉을 거쳐 올라오면 만나는 헬기장 바로 위 봉우리 못 미친 능선에서 우회전길을 택한다. 산책로 같은 길이 이어진다. 계속 직진하면 포대능선 중간 쯤과 마주친다. 사람들이 아까보다 훨씬 많다. 포대능선 바위 위 곳곳에서 식사들을 하는 모습들이 눈에 뜨인다. 겨울 산행에선 식사를 위해 햇볕 잘 내리쪼이는 따뜻한 장소 찾아내는 게 일이다.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어느 곳에 가면 그런 장소가 있다는 걸 안다. 항상 식사는 그곳에서 하게 마련이다.


#도봉산 정상에서 본 수락산과 불암산

민초샘을 거쳐 망월사로 내려가는 갈래길을 지나면 Y계곡 가는 길과 우회전 길이 나타난다. Y계곡으로 갈까 하다가 발걸음을 돌린다. 길이 미끄러운데다가 등산객들이 밀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발길을 서둘러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도봉산 정상의 만장봉과 자운봉

군데군데 눈들이 쌓여 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그런 모양이다. 급경사길을 한참을 가쁜 숨을 내쉬며 오르다보니 능선이 반긴다. 코 앞에 거대하고 웅장한 도봉산의 정상들이 두팔을 벌리고 지친 행려를 반긴다. 자운봉과 만장봉이다. 시계를 본다. 서두른 덕분에 의정부 역에서 4시간 가량 소요됐다. 적당한 자리를 잡아 김밥과 사발면을 꺼낸다. 따뜻한 날씨인데도 가만 앉아있자니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한다. 읽지도 않은 사발면을 대충 우겨 넣는다. 뜨끈한 국물에 몸이 녹는다. 오늘은 주능선 끝까지 가볼 계획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르락 내리락 칼바위 능선 끝나는 부분 오봉과 갈라지는 길에서 좌회전한다. 주능선길이 이어진다. 우이동 계곡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시간관계상 신선대 바로 못미쳐 주능선 끝에서 좌회전한다. 1시간여 눈이 덜 녹은 하산길을 따라 내려간다. 도봉산 유원지가 나온다. 유원지 안과 밖의 포장마차와 음식점들은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경제 어렵다고 해도 돈 있는 사람들은 다 잘먹고 잘 산다. 시간을 보니 의정부 역에서 5시간 30분이 걸렸다. 안골 매표소에서 약 4시간 30여분 걸린 셈이다. 혼자 떠난 산행이었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다리에 피곤이 몰린다. 반대로 가슴속은 시원하기만 하다. 막걸리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생각을 접는다. 내일부터는 또 속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직 기자는 속세에 몸 담고 살 수 밖에 없는 미천한 중생이기에…. 그래 이것이 인생이다. 정명은 기자 jungm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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