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기 전 5000원, 집에 오니 300원이 남았더군요!!
산에 오르기 전 5000원, 집에 오니 300원이 남았더군요!!
  • 승인 2006.02.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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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정명은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북한산 대동문편

버스를 타면서 보니 지갑에 있는 돈 달랑 5000원. 은행 갈까 하다가 포기, 그래 돈이 없으면 막걸리도 마시지 않게 되겠지. 행려의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간만의 눈쌓인 북한산행은 힘들기만. 어두컴컴해진 저녁 하산하니 배는 고프고….


#대동문.

정말 오랜만이었다. 1월 중순 도봉산에 한차례 오르긴 했지만 `원조` 북한산은 언제 가봤는지 까마득할 정도. 그리고 갑자기 떠나게 된 산행길. 배낭 가방도, 겨울철 필수인 아이젠도 없었고, 등산복도 입지 않은 채였다. 게다가 지갑에 들어 있는 돈이라곤 달랑 5000원이 전부. 주머니엔 약간의 잔돈푼이 딸랑딸랑.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며칠전 눈까지 내린 뒤여서 길도 엄청 미끄러울 텐데…. 가만히 돈계산부터 해보니 얼추 때울 수 있을 것 같다. 막걸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바로 그것 때문에 은행에 가지 않은 것이다. 한 번이라도 참아보자고…. 그리고 100여회를 훌쩍 넘는 `화려한` 북한산 경험이 눈쌓인 산행길의 위험은 모면케 해주리라. 내심 자부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하기만 한건??

사무실을 나서면서 시간을 보니 오후 3시10분. 얏 이거 서두르지 않으면 자칫 깜깜한 밤중에 산중 미아 되는 거 아냐?? 게다가 며칠 전 내린 눈으로 등산로도 난리가 아닐텐데. 서두르자. 사무실 앞에서 북한산까지 바로 가는 버스편을 찾아보니 수유리 4.19탑을 거쳐 우이동까지 가는 코스가 제일 빠르다. 뒤 안돌아보고 승차. 버스는 고대 앞을 지나 미아리 삼거리를 거쳐 좌회전. 머얼리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다 다를까, 흰눈으로 덮혀 있다. 북한산 산행에 있어서만큼은 자부하는 기자도 왠지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간신히 등산화만을 신었을 뿐 어떤 준비도 돼 있지 않은 상태다 보니 더 그렇다. 완전히 동네 뒷동산 산책하는 차림이다. 백설에 뒤덮인 그 장중한 정상을 바라보는 순간, 포기할 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칼을 뺐으니 무라도 베어야지, 하는 오기가 인다.

4.19 묘역 정류장에서 하차한 시간이 정확히 3시50분. 시간 계산을 해본다. 두시간 코스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무작정 길을 건너 4.19탑 쪽으로 내려 걸으면서 머리를 짜낸다. 두 시간 코스 정도로 가면서 멋진 설경을 찍고, 미비한 상태에 안전한 산행까지 할 수 있는 코스가 어딜까. 그래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구천폭포를 거쳐 대동문까지 오른 뒤 우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자.



아카데미 하우스 매표소까지 올라가는데 하산객들만 간혹 눈에 뜨인다. 올라가는 등산객은 이 몸 홀로다. 눈이 많이 내린 탓인지, 시간이 늦은 탓인지 하산객들조차 그리 많지는 않다. 그나마 날씨는 포근하다. 정말 다행이다.

아카데미 하우스 매표소에 이르니 4시 15분. 중간에 슈퍼마켓에서 500원을 주고 물 한통을 샀다. 오늘의 등산배낭은 노트북 가방이다. 가방 안엔 매표소에 줄 신문만 잔뜩 들어 있다. 물을 가방 속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독자님들에게 화려한 북한산의 설경을 전해줄 비장의 무기,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상의 주머니에 담는다. 신문을 전해주면서 매표소 직원에게 묻는다. 구천폭포 좀 얼어 있나요?? 글쎄…빙벽 탄다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보니까 얼긴 얼은 것 같은데…. 그래 빙벽 폭포 사진은 최소한 찍을 수 있겠구나.


#눈 덮인 계곡.

등산로에 접어들어 내려오는 하산객들과 마주친다. 인사를 하면서 보니 전부 아이젠을 신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눈쌓인 길은 엄청 미끄럽다. 그렇지 않아도 사무실에서 출발전 지인이 눈내린 길 위에서 미끄러져 팔목이 부러졌다는 전화까지 받은 터였다. 지인은 손목에 철심을 박았다고 했다. 조심해야지, 밥줄 끊기지 않으려면….

매표소에서 10여분 오르면 갈래길이 나온다. 왼쪽은 칼바위를 지나 보국문-대동문에 이를 수 있는 코스. 오른쪽 길이 오늘의 산행코스로 잡은 구천폭포-대동문 방향이다. 구천폭포 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산객이 있어 물어본다. 구천폭포 사진 좀 찍을 만 합니까??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시는 60대 초반은 돼보이는 어르신. 글쎄…얼긴 얼은 것 같은데 사진 찍기는 좀 그렇겠던데. 폭포가 폭포 같지가 않어. 물이 흐르지 않아서.


잠깐의 갈등. 이 일을 어쩐다. 에이 그래도 그리로 가거라. 칼바위는 너의 상태를 봤을 땐 너무 위험해.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때 같았으면 오기라도 부려볼 기자건만 오늘은 천사의 목소리에 부응하기로 작정. 왜냐?? 위험하니까.


#구천폭포 오르는 길에 누가 만들었는지 주먹만한 눈사람, 그 너머로 도심이 보인다.

이쪽 코스는 계속 계곡을 끼고 등산로가 이어진다. 험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칼바위와 달리 안전을 위한 쇠줄이 연이어져 있어서 그나마 낫다. 어두워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돼. 그런데 막상 별로 찍을 게 없다. 기껏 해야 눈 덮인 산행길과 계곡 뿐. 게다가 카메라 성능도 무지무지 떨어지는 것이어서 눈에 들어오는 것조차 사실대로 담아내기 힘들다. 되는 대로 셔터를 눌러본다. 다시 점검해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눈 덮인 구천폭포. 빙벽 위로 눈이 내려 도대체 폭포가 맞긴 한지...

구천폭포에 다다르니, 거기도 찍을 게 없긴 마찬가지. 에라이…. 아쉬운대로 일단 한두컷 찍어보긴 했지만…. 쇠줄에 몸을 맡기고 미끌한 걸음을 재촉하다보니 이내 이마에 한두방울씩 땀이 난다. 그나마 뿌듯해진다. 산행은 역시 땀을 흘려야 제격이야.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 건 그 때. 계곡 쪽을 보니 눈이 녹아 있는 부분이 보인다. 저거라도 찍어야지. `눈 덮인 북한산에도 봄은 흐르더라.` 제목까지 멋부려 잡아본다. 하지만 막상 현장으로 내려가니 물이 흐르긴 흐르는데, 간신히 눈에만 보일 뿐 도통 카메라 앵글에 잡힐 것 같진 않다. 마침 바로 근처 바위에 매달린 고드름이 눈에 들어온다. 둘 다 찍긴 찍었는데….(상태는 독자님들이 게재된 사진을 보고 직접 확인하시길…어떻게 봄이 좀 흐르는 거 같습니까??)



#위가 고드름, 아래가 흐르는 물. 어떻게 봄이 흐르는 소리가 좀 들립니까??

이 코스는 시간이 적게 걸리는 만큼 경사가 급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길 1시간여(매표소에서부터) 마침내 능선이 나온다. 좌측으로 하얀 눈에 뒤덮인 칼바위가 시선을 붙들어매고 우측으론 진달래 능선 위로 얼핏 만경대가 날카롭게 눈을 찌른다.


#얼마전 `뚜껑` 열린우리당과  `寒나라당` 원내대표들끼리 `대동` 했다는 대동문에서 바라본 칼바위.


대동문에 이르러 시간을 보니 5시20분. 얼마전 `뚜껑` 열린 우리당과 `寒나라당` 내지는 `恨`나라당 원내대표가 모여 `대동제`의 `대동`으로 국회정상화에 합의했다는 그 기념비(?)적인 장소다. 평소엔 수많은 등산객들의 식사 등 회합 장소로 쓰이는 바로 앞 넓은 공터엔 간신히 두 팀의 등산객들만이 모여 앉아 컵 라면 용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다. 아…배고파라!! 갑자기 허기가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점심도 사무실에서 기름 난로위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으로 때운 터다. 물론 햇반 하나를 말아 먹긴 했지만…. 컵 라면 용기위로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저 탐스런 식욕이여…. 국물만이라도 좀 달랠까, 하다가 이내 발길을 돌린다. 하긴 내려가도 굶긴 마찬가지다. 지갑에 돈이 없으니…. 가만히 돈 계산을 해본다. 지갑에 남은 돈은 2000원. 주머니를 뒤져보니 잔돈이 700원 있다. 합이 2700원. 차비 900원을 빼고 나면 1800원이 남는다. 이거면 슈퍼마켓에서 500원짜리 소보루 빵 3개는 사먹을 수 있다. 아니 500원짜리 어묵꼬치 2개에 녹차 호떡 하나를 먹는 것도 괜찮겠다. 마음이 풍족해져 온다. 빨리 내려가야지. 올라왔던 길로 턴. 50여 미터 가다보면 갈래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구천폭포 가는 길이고 좌측이 진달래능선과 우이동 길이다. 길이 미끄럽다. 그러고보니 올라올 땐 한번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항상 하산길 요주의. 조심조심, 내려가다보면 진달래능선과 우이동 갈래길 우측에 이름없는 약수터가 있다. 그런데 표지판이 붙어있고 어라 이름이 생겼네. `대동약수`라고. 벌써 어둠이 뉘엿뉘엿 다가온다. `대동약수`건 `소동약수`건 서두르자. 산중 미아 되지 않으려면. 다행히도 길은 눈이 쌓인 채 등산객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 덜 미끄럽다. 이럴 땐 신발 스키를 타는게 최고. 그럼 평상시보다 두배는 속도를 낼 수가 있다. 기자의 경험상 그게 더 안전하기도 하고….


#절벽 진달래 나무에 매달린 고드름. 봄이 오긴 하는 걸까.

최소한 1시간은 걸릴 하산 길을 단 40분만에 주파했다. 중간 용담천 약수에서 목도 축이고…. 빨리 내려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굶주린 배 때문이다. 소귀천 매표소를 지나 옥류교를 지나니 대궐 같은 집이 반긴다. 할렐루야 기도원이다. 아스팔트 길 양쪽으로 몇몇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솔솔 풍기는 향긋한 음식 내음들.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용담천에서 리필한 물통에 자꾸만 입을 갖다 대는 수밖에….

우이동 버스 종점 인근 어묵 꼬치 간판이 캄캄한 저녁, 대보름달처럼 크게 들어온다. 허겁지겁 두 개를 먹어치우고 다시 한번 주머니를 확인한 다음 녹차호떡 하나까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없애버린다. 어묵 국물도 따따블로…. 버스를 타니 속이 거북하다. 먹은 게 식도 어딘가에 걸린 모양이다. 때마침 걸려오는 전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다. 야, 삽겹살이나 사라. 그래 사거리서 보자. 그래서 이날도 결국 술을 먹고 말았다. 집에 들어가니 주머니엔 달랑 300원. 뿌듯한 하루였다.  정명은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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