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군대내 동성애자 인권침해' 실태

지난 15일 오전 10시 종로구 느티나무 카페에서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 규탄과 군 당국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성애자인원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35개 인권단체가 함께 주최한 이 자리에서는 군대 내의 동성애자의 인권 대우에 대한 군의 인식 전환을 촉구하는 한편, 최근 동성애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 동성애자의 사례를 공개했다.

이 날 자리에서 소개된 동성애자 A씨는 2005년 6월 신병교육대에 입대했으나 하루 종일 남성들끼리 부대끼며 생활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성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이 많아져 고민했다. 결국 담당간부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혔으나 비밀이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됐다. A씨의 상담내용이 부대 내에 퍼진 것은 물론, A씨의 아버지가 `우리 아들이 동성애자니까 잘 부탁드린다`고 보낸 의견서마저 유출돼 부대 내에서 동성애자로 낙인찍히게 됐다.

이후 A씨는 부대 내 간부와 고참들로부터 성적 모욕을 수 차례 당했고, `동성애자는 에이즈의 위험이 있다`는 명목으로 강제로 에이즈 검사를 받고, 성관계 횟수까지 밝혀야 했다. 부대 내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던 A씨는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조기 전역하려 했으나 해당 부대에서는 심사를 위해선 동성애자임을 입증할 성관계 사진을 요구했다.
A씨는 조기 전역을 포기하고 자살까지 염두에 두다가, 결국 100일 휴가 때 동성애자 남성과 성관계를 맺고 사진을 찍어 부대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사실마저도 또 다시 부대 내에 유출돼 A씨는 이전보다 더욱 심한 인격모독을 감수해야 했다. A씨는 이를 견디기 못하고 올 2월 초에 휴가를 나와 자살을 하기로 했다. 휴가 기간 중 A씨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지난 8일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에 상담을 요청했고, 이에 동인련은 A씨의 동의 하에 10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해 긴급구제조치를 요청했다. 인권위는 14일 해당 부대에 조사위를 파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A씨는 현재 자택에서 요양중이다. A씨의 치료를 담당한 정신과 의사는 "A씨는 심한 우울감, 자기 비하감, 불안·초조 등 증상을 동반한 주요 우울증 증상을 앓고 있으며 환경적 스트레스가 계속될 경우 증상 악화로 자·타해 시도가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입원치료를 통한 약물·상담치료가 병행돼야 하고 향후 복귀 및 군 생활이 불가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단장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단에 우선 A씨 휴가를 10일 연장하며 그 기간 중에 조기 전역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단체들은 해당 부대에 대해 피해자 A씨를 즉각 전역시키는 것은 물론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인권위의 조사에 성실하게 응할 것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해당 부대가 △피해자의 비밀 관리를 소홀히 해 수 차례에 걸쳐 유출한 점△성 정체성을 `보호받을 권리`가 아니라 `단순한 성적 이상행동`으로 다룬 점 △근거 없는 에이즈 검사를 강행한 점△법적 근거도 없이 성관계 사진을 요구한 점등을 고려할 때 해당 부대는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씨의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군대 내 동성애자 전반에 대한 보호를 위해서는 우선 군 형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군 형법 92조는 `계간(동성간 성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달 "성적소수자의 생존권, 안전권, 노동권을 존중하고 편견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면서 군 형법 92조의 삭제를 권고했었다.
이와 더불어 동성애를 `질병 및 심신장애`로 규정한 징병신체검사 규칙(국방부령 제 556호)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도 있었다.

한편 인권위가 2004년에 공개한 `군대 내 성폭력 현황 실태조사(2003년도 자료)`를 보면 군대 성폭력의 실상이 심각한 수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조사는 인권위가 2003년 10월부터 4개월에 걸쳐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육군 현역 및 제대사병 671명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성폭력 피해자(3명)와의 면접, 군법무관·의무관 등에 대한 보충면접조사를 병행해 실시됐다.

이 자료를 보면 671명 중 103명(15.4%)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 48명(7.2%)중 피해 경험도 있던 사람이 39명(81.7%)에 달해 군대 내 성폭력은 악순환되고 있었다. 피해자 103명 중 `1회 이하`가 9명(8.7%)에 불과하고 `5∼6회`가 13명(12.6%), `수시로 당함`이 31명(30.1%)로 나타나 군대 내 성폭력이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 계급에 대한 답변 128건 중 `상급자(선임병, 부사관, 장교 등)`가 총 104건(81.2%)에 달해 성폭력이 강제적으로 저질러지고 있음도 드러났다. 성폭력의 발생 장소는 피해자 응답 151건 가운데 내무반, 화장실, 샤워실 등 기본생활공간에서 116건(76.8%)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유형에 응답한 피해 사례 170건 중 `포옹` 70건(41.2%), `가슴 및 엉덩이 등 신체 만지기` 57건(33.5%), `성기 만지기` 22건(12.9%), `키스` 16건(9.4%)이었으며, `성기삽입` 과  `신체애무 강요`가 각 2건, `자위행위 강요`도 1건이었다.

군대 내에서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신고 및 처리실태를 조사한 결과 `직접 피해를 당한 경우 신고 사례`는 87건 중 4건(4.4%)에 불과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들은 `으레 는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아서`가 48건(64.0%), `상관에게 보고해도 소용이 없어서`가 12건(16.0%),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에`가 7건(9.3%)으로 조사됐다. 성폭력 교육의 부실과 군대 내 사병관리 체계의 허술함이 동시에 나타난 부분이다.

군대 내 성폭력으로 인한 후유증도 만만치 않아 피해자 114명 중 `모욕감을 느꼈다`와 `수치심을 느꼈다`가 각각17명 (14.9%)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성폭력 경험 이후 21명(22.8%)가 태도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태도 변화의 유형으로는 `동성애자의 혐오` 8명, `남자답게 보이려고 노력`이 5명, `자신의 남성적 정체성에 대한 회의`가 4명, `후임병에게 강제적 성적 접촉 시도`가 3명, `여자에게 강제적 성적 접촉 시도`가 1명 인 것으로 조사됐다. 오형석 기자 lorrely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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