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전라도 민요의 하나. 일반적으로 육자배기는 <긴 육자배기>와 <자진육자배기>를 합쳐 말한다. <긴 육자배기>는 진양조에, <자진육자배기>는 세마치장단에 맞추며, 보통 《보렴》 《화초사거리》 《육자배기》 《흥타령》 등의 순서로 부른다. 음계는 낮은 소리는 떨어주고, 중간소리는 평으로 내며, 그보다 위의 소리는 반드시 꺾는 목소리를 내는 전라도소리의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서도의 대표적 민요가 《수심가》라면, 전라도의 대표적인 민요는 《육자배기》이다."
그녀를 보면 <육자배기>가 떠오른다. <육자배기>가 정확히 뭔지 몰랐다. 그런데도 그녀에게선 그 <육자배기>가 배어 나왔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무릎을 쳤다. 아하, 그래서였구나.
전라도….
맞다. 그녀는 전라도 여자다. 얼굴만 보아도 안다. 행동만 보아도 안다. 말투는 남도인지, 북도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다. 육자배기 같은 걸쭉한 입담이 그칠줄 모르고 쏟아진다.
그래서 물었던 거였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였다. 전라도 어디가 고향이에요? 보통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질문은 이렇지 않다. 어디가 고향이에요?? 쯤 될 게다. 그런데 사족이었다. 그래서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
전라북도 익산이여!! `요`자가 차마 붙지 않는다. 붙였는데 들리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듣고 싶은 화자의 욕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걸쭉한 건 걸쭉해야 한다는 욕구, `요`자가 붙는 게 더 어색할 것 같다는…뭐 그런 거다.
왜? 하는 단말마의 첨언이 확신을 갖게 한다. 아니, 그럴 것 같아서…. 이쯤 되면 기가 죽는다. 간신히 한마디 덧붙인다. 저는 고향이 어디인 것 같아요?? 글씨, 어딘가?? 동행한 놈의 입이 방정이다. 그 쪽이여요…. 화자의 고향 역시 그쪽이란 얘기를 걸쭉한 남도 억양으로 얘기해버린다. 어딘디?? 고창이구만이라우!! 용기 내서 억양을 살려보려고 하지만 어색하다.  그 집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섯번째 이야기-김 굽는 임 부장

아니…포장마차에서 웬 밥?? 하루에 기름 말통 한 개씩을 너끈히 잡아먹고도 남는 시뻘건 기름 난로 위에 올려진 김이 최후의 몸부림을 쳐댄다. 향긋한 바닷내음이 포장마차의 틈을 비집고 골목길의 고단한 삶 속으로 퍼져나간다.
"아…빨리 주랑게!!" "아따, 알았당게, 쪼까만 기둘려!!" 40대 중반은 돼 보이는 남자가 소리를 지르자 익산떡 맞받아친다.
도대체 뭘 달라는 거야? 이럴 땐 귀와 눈과 코와 기타 오감을 쭈뼛하게 세운 채 사태를 주시하는 수밖에. 이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눈이 부실듯한 자태로 커다란 우동 그릇에 넘칠 듯 퍼질러진 채 익산떡의 투박한 손을 통해 공수된다. 다음은 우동 그릇 네 다섯배는 되고도 남을 크기의 냄비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포장마차 안에 진동하던 또 한가지 냄새의 주인공이 바로 이 놈이었구만. 탁자 위에 올려놓은 냄비의 뚜껑이 열린다. 정체 모를 내용물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몽환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화자의 입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지진을 일으킨다. 저게 뭐지?? 정체는 금방 드러난다. 김치 냄새가, 청국장 냄새가 정체를 알게 해준다. 김치 청국장 지짐이라고 해야 하나…아니면 청국장 김치지짐이라고 해야 하나. 어렸을 때 고향에서나 먹어 봤음직한 바로 그…. 그게 다가 아니다. 아주 중요한 한가지가 그 안에 투박하게 더불어 있다. 바로 돼지 등뼈.

그리고 익산떡의 후한 인심이 한가지 더 곁들여진다. 바로 1박2일 동안 밤을 새워 담은 김장 김치다. 돼지 등뼈가 들어간 청국장 김치 지짐, 돼지 등뼈가 들어간 김치 청국장 지짐에 시뻘겋게 타오르는 기름 난로 위에 잔인하게도 구워진 김, 그리고 김장 김치…그게 전부다. 아…한가지를 빼먹었다. 바로 소주.

자기보다 밥을 먹었어도 최소 3650그릇(하루에 두끼씩, 5년을 잡은 것임)은 더 먹고도 남았을 연상의 여인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 그 남자는 임 부장이다. 이름은 모른다. 그냥 그렇게 부른다. 임 부장은 숭인동 길레스토랑의 `왕단골`이다. 매일 온다. 익산떡이 포장마차를 열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단다. 이전, 익산떡은 청계천변의 그 `유명한` 삼일아파트에 살면서 숭인동에서 식당을 운영했었다.(아참, 삼일아파트와 관련된 익산떡의 무용담도 있다. 조만간 들려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익산떡의 손맛에 반해 식당을 자주 찾았던 것이고, 익산떡이 이곳에 포장마차를 열자 다시 단골이 된 것이었다.

임 부장은 출판사에 다닌다고 했다. 항상 같이 포장마차에 들르는 사람도 출판사 일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투명한 냉장고 안에서 `나 좀 잡주쇼`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는 병어회나 다른 안주를 먹는 법은 거의 없다. 아니 안주 자체를 시키지도 않는다. 두 사람이 들어오면 익산떡은 "아따, 왜 이제사 와" 걸진 목소리와 함께 김장 김치를 날라오고, 화력 좋은 가스 불 위에서 지글지글 끓는 커다란 냄비를 가져온다. 그 사이 임 부장은 포장마차 한 켠에서 소주를 두 병 꺼내오고, 시뻘건 난로 위에 어디서 났는지 모를 김을 굽는다. 그리고 현장을 응시하는 수많은 시선들엔 아랑곳 없이 하얀 쌀밥과, 색깔 좋은 김과, 시뻘건 김장 김치와, 돼지 등뼈가 들어간 청국장 김치 지짐을 걸 지게도 먹는다. 화자의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안주들이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런 느낌은 포장마차 안의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억울한 것만은 아니었다.

두 번째 조우였던가. 그 임 부장 일행과의…. 낯이 익은지라 인사를 건넸고 건네 받았고, 돼지 등뼈가 들어가지 않은(그날은 그랬던 것 같다.) 청국장 김치 지짐 냄새에 침을 삼키고, 임 부장 손끝에서 잔인하게 구워지는 색깔좋은 김에 시선을 보내고…. 그런데 그 김이 화자의 탁자 위에도 놓여진 것이다. "이거 귀한 겁니다. 드셔보슈" 투박한 임 부장의 말소리와 함께…. 이게 웬 떡?? 게다가 익산떡의 투박한 손 위에 사뿐한 자세로 안겨져 날라오는 또하나의 은총. 우동 그릇에 담긴 청국장 김치 지짐이 화자의 눈앞에도 펼쳐진 것이다. "한번 먹어봐"라는 `요`가 붙을 듯 붙지 않는 익산떡의 짧은 한마디. 투박하게 생긴 임 부장 참 사람 좋다. 투박하기만 한 익산떡의 손은 왜 그리도 곱기만 한지…. <다음호 계속>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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