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참말로 부잔갑다. 어떻게 닭을 끼니마다 한 마리씩 먹는다냐?”
“미국은 참말로 부잔갑다. 어떻게 닭을 끼니마다 한 마리씩 먹는다냐?”
  • 승인 2006.04.0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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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낙연의 어머니에 관한 추억 <2회>

저희 4남3녀 형제자매의 약속에 따라 어머니의 추억을 시간 나는 대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번째 이야기로 먹을거리와 가난에 얽힌 추억을 적어볼까 합니다.
세월의 힘이겠지요. 그 때는 고통스러웠지만, 이제는 우습기까지 하군요. 풍화(風化)된 탓이겠지요.



<내가 집에서 음식 칭찬을 하지 않는 이유>

요즘도 저는 집에서 식사할 때는 음식이 맛있어도 칭찬하지 않는 버릇이 있습니다. 집사람은 몹시 서운해 하지만, 제 입에서는 칭찬이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뭉뚱그려서 “잘 먹었소” 하고는 말하지만, 구체적인 음식을 지칭해 “이것 맛있소”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저의 이런 못된 버릇에는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광주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저는 매우 싼 하숙을 했습니다. 반찬은 항상 볼품없고, 겨울에는 방바닥도 추웠습니다. 그런 하숙방에 하루는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지만, 저희 아버지께서는 제가 잘 먹는 것을 유별나게 원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숙집 밥을 억지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나 맛있는 반찬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조금 나은 것이 콩나물 무침이었습니다. 저는 콩나물 무침을 게걸스레 먹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선택과 집중이었지요.

그 후에 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2주일에 한 번 꼴로 영광 법성의 시골집에 가면 끼니마다 콩나물이 밥상에 올라오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큰 놈(제가 장남이니까)은 콩나물을 좋아하더구만…”이라고 한마디 하신 결과였습니다. 끼니마다 콩나물을 먹기란 고역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음식이 맛있어도 “맛있다”고 말하지 않게 됐습니다. 심지어 맛있는 척도 하지 않고, 한 음식을 집중적으로 먹지도 않는 버릇마저 생겼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꾸 그 음식만 줄까봐 겁이 났던 것이겠지요. 아프게 터득한 생활의 지혜라고나 할까요?


<딸기가 빨갛다는 걸 중학생 때 알았다?>

어린 시절, 저희 시골집 뒤안에는 손바닥만한 딸기밭이 있었습니다. 10평 남짓한 면적이었습니다.

딸기 철이 되면 저희 4남3녀 형제자매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맨 먼저 딸기 밭으로 달려갔습니다. 저희들은 딸기 열매가 조금만 맺혀도 닥치는 대로 따 먹었습니다. 그러니 딸기가 제대로 굵어질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저는 느긋하게 늦잠을 자곤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그마나 먹을 만한 딸기를 일찌감치 따 두셨다가 몰래 저에게만 주셨기 때문입니다. 큰 손자인 저에 대한 할머니의 편애는 아주 노골적이었거든요.

딸기에 얽힌 동생들의 설움을 제가 안 것은 한 참 뒤였습니다. 저희 형제자매가 모두 어른이 된 뒤에 명절을 맞아 시골집에 모였을 때였습니다. 농담을 은근히 잘 하는 셋째 남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딸기가 크면 빨개진다는 것을 나는 중학교 들어가서야 처음 알았네…”


<미국은 참말로 부자인갑다>

저는 대학 4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비교적 편한 서울 이태원의 미 8군 21수송중대에 배치됐습니다. 입대한지 6개월 조금 넘었을 때 첫 휴가를 얻었습니다.

시골집에 가서 저녁을 먹은 뒤에 어머니께서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밥은 뭘 주디야(주더냐)?”
“예, 쇠고기도 나오고, 돼지고기도 나오고, 닭도 한 마리씩 나오고요…”
“미국은 참말로 부잔갑다(부자인가보다). 어떻게 닭을 끼니마다 한 마리씩 먹는다냐?”

그 때는 장남인 저도 닭을 1년에 한 마리, 잘하면 두 마리쯤 먹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여름철이면 닭에 인삼을 넣고 푹 삶아 보약으로 먹었지요. <이낙연님은 민주당 국회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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