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숭인동 길레스토랑-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놓는 정

이 날도 마찬가지. 삶은 문어를 주문했다. 소주 한 병을 마셨다. 맥주 한 병도 마셨다. 예정된 프로그램대로라면 68년생은 여기서 끝을 맺고 레스토랑 무대에서 사라지게 돼 있다. 어라, 그런데 이날은 아니다. 맥주 한 병을 더 시키는 게 아닌가.

그리고 화자와 일행에게 말을 붙여오기 시작했다. 태도가 심상치 않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틀에 박힌 듯한 일상에 젖어 있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변화`는 `두려움`이다. 공포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변화하면 큰 일이라도 일어날 것으로 지레 겁을 먹는다. 틀 안에서 안주하길 원한다. 화자와 일행도 마찬가지. 그런데 변화는 예상했던 것 보다 좀더 심각한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68년생의 말투가 갑자기 무지무지하게 흐려지면서 혀가 꼬이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마실 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상대방의 안색을 살필 줄 알았다.

맥주 잔이 건네졌다. "혀엉님들, 제가 한 잔 사알게요∼." 싫다고 손사래를 쳐도 끄떡 하지 않는다. 무작정 밀어붙이기다. 이 일을 워쩌나. 뭐 술이야 마다 할 족속들이 못되지만, 그래도 막걸리에 맥주를 섞는다는 건 아무래도 좀…. 방법은 계속해서 거절하는 것일 터. 그렇지만 68년생 아우님의 밀어붙이기는 좀처럼 끝이 나질 않는다.

거기가 이제 시비까지 걸어온다.

"왜? 내가 사는 술 마시면 안되는 거야??"
"……."

분위기를 파악한 익산떡이 재빨리 나선다.

"아따, 이 분들 맥주 안 마시니까, 그냥 혼자서 마셔∼그리고 오늘 많이 취했구먼."

68년생 이번엔 익산떡으로 `변화`의 방향을 돌린다. 초지일관 시비조다. 약간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결국 익산떡 바깥 사장님이 출두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된다.

68년생 쌍 `ㅅ`자를 내뱉으며 무대 뒤로 퇴장한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냥 못이기는 척 한 잔 받아마시면 됐을 터인데…. 아니, 그게 다가 아니다. 그래도 한 편으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날 68년생의 태도를 봐선 결코 한 잔으로 끝을 낼 품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익산떡의 덧붙여지는 얘기가 확신을 갖게 한다. 이전에도 그런 적이 한 번 있었다는 것. 어느 순간 갑자기 돌변하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돼서 손님들에게 행패를 부리더라는 얘기였다.

익산떡 빼놓지 않는다.
"평상시엔 참 착한 총각인디…."

그날 그 일이 있은 뒤로 68년생은 다시는 그 레스토랑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삶은 문어를 먹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가 떠올라 익산떡에게 묻곤 했지만 단 한번도 들른 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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