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은 기자의 북한산 샅샅이 훑기: 탕춘대→비봉→대남문→대성문→정릉편

진달래가 진다. 개나리도 진다. 하지만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그 자리엔 또다른 생명이 피어나고 있으니까. 봄이 끓는다. 사내의 피가 끓는다. 여인네의 마음이 끓는다. 그리고 탕춘대가 끓는다. 이 끓는 봄…어찌 그곳엘 가보지 않으랴. 봄이 끓어 넘치는 그곳 탕춘대….


지난해 여름쯤 한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다. 그때 약속했다. 내년 봄엔 꼭 탕춘대 소식을 들려드리겠노라고. 그래서 갔다. 탕춘대. 연산군이 궁녀들을 끼고 질탕하게 놀았다는 바로 그 탕춘대.

불광역에서 내린다. 2번출구. 직진한다. 사거리다. 좌회전. 바로 옆에 미도다방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등산객들에겐 유명한 곳이다. 미도다방으로 약속을 잡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미도다방 앞으로 약속을 잡기 때문이다. 미도다방은 지하에 있다. 그 1층은 슈퍼마켓이다. 조그만데도 사람들이 몰린다. 등산객들이다. 바로 앞 의자에선 다른 일행들을 기다리는 등산객들이 눈에 뜨인다. 저 이들도 탕춘대에 오르나?? 얼굴을 보니 그런 것 같다. 설레는 표정이 역력하다. 끓어 넘치는 가슴을 간신히 억제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물 두통을 산다. 오늘은 산행길이 벅차다. 최소한 4시간은 가야 한다. 그것도 자칭 준전문가 의 빠른 걸음 셈법이다. 길 건너편은 국립보건원이다. 횡단보도에서 건넌다. 나중에 건너도 된다. 왼쪽으로 북한산의 웅장한 자태가 넘실 댄다. 가파른 산허리 위에 봉우리 하나가 위태롭게 얹혀져 있다. 족두리를 닮았다. 족두리봉이다.

약 15분여를 걸으면 마을이 끝난다. 끝나는 지점에 조그마한 공원이 있다. 공원 안엔 약수터도 있다. 빈 물통이 있는 사람들이면 충전요망. 공원 끝나는 지점, 계단이 가로 막아선다. 계단을 오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일 터…. 오른다. 15분여 평지에서 몸을 푼 상태라 그리 힘들지 않다. 한치 앞을 못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숨이 차오른다. 아이고 죽겠다, 는 소리가 절로 난다. 걸음이 늦어진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날씨가 너무 더운 것인가. 계단이 끝나도 오르막은 이어진다.

15분여 오르다보면 정자가 나온다. 동네 어르신들의 쉼터다. 고압선이 지난다. 행려도 지난다. 꼬불꼬불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예비군 훈련용으로 보이는 참호 위의 모래주머니를 밟고 산행을 이어간다. 탕춘대다. 잠깐 짚어보고 가자. 땀도 좀 식힐 겸….

탕춘대 고개가 있었다. 종로구 신영동 세검정 정자에서 평창동으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고개다. 조세고개라고도 했다.
고개의 오른쪽 언덕에 조선시대 연산군의 놀이터로서 탕춘대(蕩春臺)란 정자가 있었다.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을 쌓은 다음 숙종 45년(1719) 북한산성과 도성을 연결하는 새 성을 쌓고 그 명칭을 탕춘대성(蕩春臺城)이라 하였던데서 명칭이 유래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찾은 것이다. 그리고 조세고개의 명칭 유래는 고개 부근에 조선시대에 조지서(造紙署)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서를 일명 조세라고도 하였으므로 조세고개라 불리었다는 설명이다.



자하문 밖 세검정 일대를 지금도 탕춘대라 부르는데, 이는 연산군 때에 지금의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사찰 장의사(藏義寺)를 이궁(離宮)으로 쓰면서 그 아래 경치 좋은 언덕을 놀이터로 쓰면서 시작되었다. `탕춘(蕩春)`이란 봄기운을 만끽한다는 뜻이다. 연산군 11년(1505)에 경치 좋은 이 곳에 탕춘대를 짓고 그 앞 시냇가에는 수각(水閣)을 세우고 유리를 끼워 냇가를 볼 수 있도록 하여 궁녀들과 놀았다 한다. 연산군 참 좋았겠다. 끓는 피를 지닌 사내, 연산군이 너무 부럽다.


#탕춘대 등산로

실제 탕춘대가 있던 부근의 시냇물이 감돌아 흐르는 신영동 일대에는 승목소라는 마을이 있었다. 장의사계곡은 봄철의 꽃, 여름의 과일, 가을의 단풍이 어우러져 세검정 일대의 수석과 함께 수려한 경관을 자랑했다. 당연, 이 일대는 조선시대에 시인과 묵객들이 줄지어 찾았던 곳으로 유명해질만 하다. 1970년대 초까지도 각급 학교의 소풍장소로서 애용됐다고 한다.
산책로가 이어진다. 기분 좋다. 머얼리 족두리봉, 향로봉이 보인다. 비봉과 문수봉도 볼 수 있다. 북한산 서부 능선의 절경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셈이다.


#족두리봉. 족두리를 닮았다.


산책로를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면 오래된 돌성이 나온다. 탕춘대성이다. 또 인터넷에서 찾아본다.
탕춘대성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청군에게 항복한 수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숙종 28년(1702)부터 북한산성의 축성 논의가 시작돼 찬반 양론 끝에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이 완성된 후 8년 후인 숙종 45년(1719)에 축조됐다. 즉, 국가 유사시에 북한산성에서 수비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탕춘대 일대에 창고를 짓고 군량을 저장해야 하며,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탕춘대성을 축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숙종 44년(1718) 윤8월 26일부터 10월 6일까지 약 40일간 공사를 진행하여 전체 성 길이의 절반 가량을 쌓았는데, 자하문 서쪽 탕춘대성이 시작되는 곳에는 토성(土城)으로, 그 외는 석성(石城)으로 하였다. 성의 높이는 3.03m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공사는 이듬해 2월부터 시작하여 약 40일만에 완공되었다.


#탕춘대 능선에서 본 구기동

성곽의 길이는 북한산 비봉에서부터 구기터널·홍지문을 거쳐 인왕산 정상까지 약 4㎞가 된다. 축성된 성 안에는 연융대와 선혜청 창고·상평창·하평창 등 주요 군사시설을 설치했다. 탕춘대성은 한마디로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 축성 당시에는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서성(西城)이라 불리었으나 후에 탕춘대성이라 정식 명명되었다. 탕춘대성은 도성이나 북한산성과 같이 체성(體城)과 여장(女墻)을 쌓았으며,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성구(城口)를 뚫어 놓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간혹 어려운 단어도 있다. 직접 찾아보시길…. 어쨌든 오늘 역사 공부 제대로 한다.
불암동 전철역에서 50분 거리(일반인들은 1시간 잡아야 한다)에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진짜 먼 셈이다. 당연히 탕춘대 매표소다.


#탕춘대 매표소

1600원을 낸다. 매표소 직원 친절하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죄송스런 얘기지만 다녀 오진 않을 것인데…. 다른 곳으로 내려갈 것이기 때문에.


#포금정사 가는 길의 바위 틈새길.

걷는다. 또 걷는다. 오르는 게 아니다. 평지가 이어진다. 기분 좋다. 힘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도 잠깐이다. 향로봉-족두리봉 가는 갈래길이 나타난다. 두 갈래길이다. 우회하면 비봉쪽이다. 접어든다. 여기서부턴 가파른 언덕길이 이어진다. 지루하진 않다. 15분여 걸으면 포금정사터가 나온다. 포금정사가 있었던 자리다. 지금은 없다. 대신 빈 공터와 약수터가 있다. 지나면 비봉매표소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진짜 등산하는 것 같은 가파른 언덕길이다. 숨이 차오른다. 오른쪽으로 물개바위가 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생은 다 이런 것이라며 꾸역꾸역 오른다.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좋겠다. 하산할 때의 기분을 안다. 하산객들에겐 노오란색 막걸리가 보일 게다. 진짜 좋겠다.


#오르는 길의 물개바위

마침내 능선. 시야가 트이지 않는다. 능선 중에서도 깊이 패인 곳이기 때문이다. 바로 오른쪽으로 비봉이다. 왼쪽으로 가면 향로봉-족두리봉과 닿는다. 우회한다. 바위 언덕을 올라서니 그제서야 시야가 트인다. 약간 흐릿한 날씨지만 시야는 그럭저럭 괜찮다. 황사도 없다.



연두색으로 물들어가는 삼림이 보기 좋다. 비봉은 비봉(飛峯)이다. 새가 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정상에 진흥왕순수비가 있다. 그래서 비봉(碑峯)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르려면 위험하다. 온통 암벽 덩어리다. 그래도 사람들 많이 오른다. 저러다 헬기 뜨는 거 아냐. 괜한 심술이다. 미도다방에서 여기까지 1시간 40분 걸렸다.
조금 더 가면 사모바위다. 부처바위, 장군바위라고도 한다. 사각형의 육중한 바위가 아슬아슬 산위에 걸려 있는 형상이다. 자연의 신비다.
오늘 소개는 여기까지다. 문수봉을 우회해서 청수동암문, 대남문, 대성문 가는 길은 이미 귀가 닳도록 소개했다. 진달래 지는 자리에 새로운 꽃들이 피어난다. 야생화들이다. 다음 주 정도엔 북한산과 도봉산에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소개해 드릴까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아는 게 없어서….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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