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국 국가 울릴 때의 ‘대~한민국’은 결코 애국이 아니다

한국인의 애국심은 민족주의적 정서 때문에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유명하다. 특히 국내에 있는 한국인보다 외국에 있는 한국인의 애국심은 간혹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 한국인의 애국심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바로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비롯한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다. 이 같은 현상은 상당히 오랜 기간 나타나고 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지난 1984년 LA올림픽 때다.

당시 한국은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나라 전체가 철권통치로 신음하고 있었고, 또 그런 만큼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민중들의 삶은 극단적으로 피폐한 가운데 박정희의 유신 정권 이래 계속 이어져 온 국가 개발 독재는 민중들의 삶에 대해 희망 보다는 절망을 안겨주던 시기였다.

그런 가운데 치러진 LA올림픽에서의 성적은 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해외 동포들에게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군사독재 정권이 더 유효하게 써먹었다는 문제가 생겼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를 3S 정책(Sports, Screen, Sex)으로 적극 반영시켰고, 또한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의 물결을 극단적인 애국심으로 잠재우려 했다.

이는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함으로써 알정정도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사회와 정치에 대한 불만을 스포츠 올인 정책으로 무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87년 6월 항쟁으로 일정정도의 독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전두환 정권은 이후 노태우로 정권이 세습되면서 적당한 선에서의 민주화 세력과의 타협을 이뤘지만 한편으로는 서울 올림픽을 기해 민중들에게 승리도취 심리를 더욱 자극하면서 민주화에 대한 이어지는 욕구보다는 한국의 국위선양의 치적으로 가져갔고, 또 거기에 필요 이상의 애국심을 강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특히 해외에 나가 있는 동포들의 애국심을 비이성적으로 이용한 군사정권 때문에 한국의 애국심은 자칫 세계주의와는 또 다른 형태의 국수주의로 비쳐지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2002년 한국은 그야말로 애국심의 최극점에 이른다.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개최된 월드컵은 88 서울 올림픽을 훨씬 넘어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됐고, 특히 외국 생활을 통해 소수민족의 서러움을 힘겹게 견뎌나가던 해외 국민들에게는 일대 혁명적 사건이 된다. 즉, 자그마한 축구공 하나로 한민족 전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 등을 물리치고 당당히 아시아의 자존심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일은 결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 세계 사회 속에서 절대 강국이나 선진국의 이미지를 갖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위상을 보다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특히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보다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줬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생긴 부작용도 있다. 2002년 월드컵 직후 특히 유럽에서는 몇 가지 불상사도 있었다는 보도가 있다. 특히 한국에게 16강전에서 역전패를 당했던 이탈리아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심했다고 한다. 한국이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얻어 승리했다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당이나 술집 등에서 한국인의 출입을 금하는 곳도 있었고, 또 그런 과정에서 한국인과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싸움도 일어났다.

이는 한국에게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한 스페인이나, 조별 예선에서 발목 잡힌 포르투칼 등에서도 벌어졌는데 이들의 부당한 억지에 항의하는 한국인들(또는 관광객들)이 그들과 싸움이 붙어 경찰서에 끌려가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인들의 열광적이고 열정적인 응원 열기를 전 세계 언론들이 극찬하면 보도했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나치즘에 비교하거나,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의 극단적 애국주의와 비교하며 문제제기를 했던 해외 언론들도 생기면서 한국인의 애국심에 흠집을 내기도 했다.

이는 우리의 단결된 애국심에 대해, 또는 축구 변방 한국의 선전에 대해 유럽이나 남미 등 전통적인 축구 강국들이 치졸한 질투심에서 기인해 트집 잡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한국인에 대한 일정정도의 경계심을 만든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4일(현지시각)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는 이번 2006독일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마지막 평가전이 벌어졌다. 함께 본선무대에 출전하는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와의 경기였다.

가나라는 나라는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세계에서 금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알려지면서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나라다. 축구에 있어서도 월드컵 본선에는 처음 출전하지만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 2번이나 준우승을 한 경험이 있고, 아프리카 네이션스 대회에서는 4차례나 우승한 전력이 있는 강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나라의 사정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다. 1870년대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가 1957년 독립했지만 아프리카의 대부분 나라가 그렇듯이 경제적으로 빈약하기 이를 데 없고, 1인당 국민 소득이 300달러 정도 밖에 안되는 세계 최극빈 나라 중 하나다. 물론 축구 경기와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런 가나와 평가전을 하는 4일 에딘버러 이스터로드 스타디움에는 결코 미소로 반길 수만은 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 대표팀이 가나에게 1대 3으로 완패한 경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물론 이날 한국의 경기는 엉망이었고, 조별예선 첫 경기인 토고전은 물론 과연 이번 월드컵에서 단 1승이라도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 경기였지만 더욱 엉망이었던 것은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한국 응원단들의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이날 경기장은 마치 한국의 홈그라운드라고 생각될 정도로 붉은 옷을 입은 한국 응원단 2천 여 명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한국인들의 응원 열기에 흥미를 느낀 스코틀랜드인등의 현지인들도 상당수 함께한 그야말로 대규모 응원단이었고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 꽹과리와 징, 북을 동원한 응원의 함성은 애딘버러의 맑은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데 경기 시작 직전 양국의 국가가 울려 퍼질 때 부끄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가나의 국가가 먼저 울려 퍼지는데도 우리의 응원석에서는 꽹과리와 징의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사람들이 외쳐대는 ‘대~한민국’의 함성도 그대로였다. 이를 두고 현지에서 중계방송을 하던 한 방송사의 진행자와 해설자는 “우리의 타악기 중 징이 가장 멀리까지 들린다더군요”라며 그 소리가 자랑스럽다는 듯 해설까지 덧붙였다.

혹시 응원열기 때문에 가나의 국가가 나오는 것을 못들었나 했는데, 이어 우리의 애국가가 연주되자 타악기 소리도, ‘대~한민국’ 소리도 그친 채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 더러 전 세계로 중계된다고 했을 때 한국인들의 비뚤어진 애국심의 발로라고 생각이 들일이다.

외국에서 우리의 응원문화를 극단적인 애국주의 또는 국수주의로 보는 것이 그들의 잘못된 시각임을 깨달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이날 에딘버러로부터 들려온 응원 예절은 또 다른 형태의 ‘어글리 코리안’으로 비쳐질 것이 염려된다. 이석원 기자 <이석원님은 데일리서프라이즈 정치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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