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쓰기> 희귀성 암으로 세상 떠나기전 심경 담아

이 글은 지난해 6월 22일 임파종이라는 희귀성 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 홍순분(1961.10.19-2005.6.22) 님이 자신이 투병 중이던 2005년 1월경 쓴 글입니다. 이 글은 1주기를 맞아 남편 유성민 님께서 그 유지를 기리기 위해 `위클리서울`에 보내온 것입니다. 유성민 님은 "아내의 시신은 희귀성 암을 치료했던 담임교수에게 기증되었고, 고인의 심경이 이랬었다는 것을 교수님께 알리기 위해 소량의 책자를 만들게 되었다"며 "다른 환자 가족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암환자들의 심경이 이러 했을 것이란 생각에 이 글을 보낸다"고 밝혀왔습니다. 뒤늦게나마 홍순분 님의 명복을 빌며, 글을 보내주신 유성민 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려대 의과대학 감은탑에 홍순분 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위클리서울>은 이 글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투병중 심경을 담은 글을 모아 만든 소책자와 유성민 님이 보내온 편지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이 어떻게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더해 갔다.

어딜 가도 가게문을 열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가게에서 졸아야 마음이 편했다.

세상의 고민과 걱정은 모두 혼자 지고 사는 사람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친구들도 형제도 모두 버리고, 오로지 돈을 벌어야겠다는 내 자신. 앞만 바라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이 것 뿐이었다.

내 몸은 생각 안하고, 돈을 쫓아서 아무 생각 없이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면서, 조금만 더 벌면 나아지겠지….

금전적인 여유 없이 항상 쪼들리니, 돈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은 빚이 빨리 없어지는 게 우리에겐, 아니 나에게는 항상 무거운 짐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도 하기 싫었다.
모든 것 버리고,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항상 피곤하고, 지친 몸은 잠으로 채우고, 어디 멀리 교외로 나가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작년 청량리에 다시 가게를 개업하면서, 몸이 유난히 피곤한 걸 느꼈다. 몸은 그 때부터 안좋았던 것 같다.

어디가 특별히 아픈 건 아니었지만 많이 지쳐 있었다. 의사의 지시와 가족들의 의견으로, 같이 행동하고 있지만, 그저 같이 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나는 의사가 오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내가 `임파종`….
나에게 이런 병명 자체가, 믿어지질 않기 때문이다. 내 생에 일만 해왔다. 결혼해서 임신기간 빼고는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의사가 오진했을 거라는 생각 뿐…. 아직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병원에 있으면서 내가 환자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 마음에서 내가 환자라는 인식이 믿어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약을 먹고, 머리가 반 이상이 빠져 나가고 있다.

왜! 인식이 안되는 걸까?
내가 병원에 입원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한 순간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연연했던 가게도 문을 닫아야만 했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건강이 망가진 다음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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