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스러져 가는 재래시장을 찾아서-3개월 만에 다시 찾은 청량리시장 똥집 골목

지난 3월에 들렀었습니다. 청량리시장. 그땐 날씨가 그래도 꽤 쌀쌀했었는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보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집니다. 이제 여름입니다. 청량리청과물시장의 상인들 옷차림만 봐도, 또 그들이 내놓고 팔고 있는 과일 종류만 봐도 그렇습니다. 전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목소리 높여 외쳐댑니다.

"아이 형님, 수박좀 사가…고창서 올라온 것인디, 둘이 먹다가 열이 죽어도 모른 다니까. 진짜 달어!"

가격도 쌉니다. 2천원짜리부터 있네요. 노오랗게 익은 참외도 탐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요즘 낮이 길어져서 이들이 가게 문을 열고 있는 시간도 3월보다 더 깁니다. 퇴근길에 들러도 얼마든지 과일을 살 수 있어요.

그때 갔던 청량리시장이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사실 이번엔 취재보다 그 때 맛보았던 닭똥집 튀김 맛 때문에 방문했다고 하는 게 옳을 겁니다.

경동시장만 시장이냐??

사실 청량리시장, 그러면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전에 물론 대강의 위치는 소개해 드렸는데요. 못보신 독자님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청량리시장은 사실 경동시장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제기역에서 시작되는 경동한약시장, 사거리를 건너면 한약시장과 함께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벼대는 경동시장이 행려들을 반갑게 맞습니다. 경동시장 한 복판의 골목길을 따라 동북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경동시장과는 약간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바로 과일 시장이지요. 이전엔 시장을 알리는 간판도 없었는데 대로변에 커다란 간판이 두 개나 들어섰더군요. `청량리청과물시장`이라구요. 사람이든, 시장이든 그래도 이름을 갖고 있는 게 낫죠. 대부분 사람들 `경동시장`으로 총칭해버리거든요. 그런데 앞으론 정확한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다행한 일이지요.



경동시장에서 두 블록을 더 가면 나오는 게 바로 오늘의 주인공 청량리시장입니다. 사실 청량리시장은 인근의 경동시장이나 청과물시장, 수산물시장 등에 비해 규모는 작습니다. 원래는 지붕도 없었고 몇 개의 가게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는데 최근에 재래시장 개선 정리 사업 일환으로 지붕도 씌우고 허름했던 가게들도 깔끔하게 정리가 된 모습입니다. 서쪽 출입구 인근에는 몇 개의 포장마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3월엔 비닐 천막을 씌운 채 장사를 하던 포장마차들이 천막을 걷고 완전히 속알맹이를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장사하는 공간도 두 배 이상은 넓어졌습니다.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하루 일과를 마친 많은 사람들이 둘셋씩 모여 앉아 이곳의 명물 미니족발 등을 안주로 해 술을 마시느라 여념이 없네요.

 
#돼지 머리 고기와 1500원짜리 미니 족발. 먹음직스럽죠??

시장 간판 바로 아래엔 `진짜` 값싸고 맛난 돼지족발을 파는 집이 있습니다. 소주와 막걸리가 2천원이고, 미니족발도 1500원짜리부터 있습니다. 소주 두 병에 안주 하나 먹어봤자 간신히 5천원을 넘길 뿐입니다. 미니족발 뿐 아니라 돼지의 온갖 부산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머리고기는 물론이고, 돼지코, 귀, 내장 그리고 꼬리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특별히 원하는 부위를 주문하면 되는 것이지요. 바닥에 간이 식탁을 놓고 쭈그려 앉은 채 먹는 데, 항상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깨끗하게 다듬어진 생닭발이 1kg에 2000원 밖에 안합니다.

청량리시장의 주종목은 닭고기와 족발입니다. 닭은 생닭부터, 생닭발, 닭튀김, 똥집튀김 등 없는 게 없습니다. 닭의 사촌 쯤 되는 생오리고기도 팝니다. 물론 오리튀김 집도 있구요.

특히 40여년간 청량리시장을 대표해 온 똥집튀김은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똥집튀김이란 말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 많을 텐데요. 기자도 사실 이곳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물론 닭똥집이 모래집이라는 건 다 알고 계시죠. 보통 닭똥집은 구워서 소금장에 찍어 먹거나, 매콤하게 양념을 해서 볶아 먹는 게 일반적 상식인데요. 여기선 그런 평범한 틀을 과감하게 깨트렸습니다.

바로 과일 등을 갈아 만든 반죽을 똥집에 입힌 다음 신선한 기름에 튀겨내는 것이지요. 물론 느끼하지 않습니다. 기름에 튀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자도 그래서 처음엔 먹기가 꺼림칙했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입에 넣는 순간 그런 선입견은 처절할 정도로 깨져버립니다.

깔끔하고 상큼하면서도, 살살 녹는 것 같은 감미로움과 쫄깃함이 입 안 가득 풍미를 전해줍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따봉입니다.

3월 취재차 들렀던 닭똥집 아주머니가 먼저 알아보고 반깁니다.

"아이고 오랜만에 오셨어요."

인사 끝에 <위클리서울>을 보고 몇 몇 어르신들이 물어물어 찾아왔었노라는 얘기도 합니다. 사실 3월에 기사를 쓸 때는 가게 상호 라든가, 기타 정보들을 전혀 포함시키지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기사를 보신 분들이 일부러 이 가게를 찾느라 많이 헤매셨던 모양입니다.

아주머니의 입이 벙그레 해집니다. 기자도 기분이 좋습니다.
여전히 장사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때 소개해드렸던 바로 앞집, 그러니까 세 딸들이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다는 그 오리튀김집도 여전히 문전성시입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닭똥집 맛을 안보고 그냥 갈 순 없는 노릇이겠지요. 한 접시를 시킵니다. 가격은 5천원입니다. 막걸리를 같이 주문합니다. 같이 간 일행과 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오늘의 주인공이 드디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향긋한 내음, 접시가 넘쳐날 듯 한가득 담겨져 나오는 닭똥집.

"와, 뭐 이렇게 많이 준대요?? 혹 기사 써줬다고 뇌물 주는 건 아니죠??"
하긴 원래 양이 많긴 합니다. 그런데 이날은 담을 수 없을 만큼 억지로 쌓아 올린 품세가 신경 꽤나 쓰신 게 분명합니다. 아주머니 "많이 드세요"라며 그냥 웃습니다.
도저히 둘이 다 먹지 못할 양입니다. 생각 끝에 반 정도는 집에 싸가기로 합니다. 그래도 남은 양이 많습니다.


#닭똥집 튀김과 막걸리의 환상적 조화.

막걸리 두 통을 해치우고 가게를 나섭니다. 족발가게들이 주욱 도열해 있습니다. 6-7개가 몰려 있습니다. 전부 직접 족발을 만들어서 파는 곳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역시 족발가격과 맛입니다. 1500원짜리 미니족발부터 6000원짜리 왕족발까지 있는데 왠만한 족발전문체인점에서 파는 것보다 맛이 나았으면 나았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시장 끝 부분엔 몇 개의 포장마차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3월에 들렀을 땐 보이지 않던 집들인데요. 가보니 육회와 간·천엽 등을 팝니다. 똥집튀김을 먹은 뒤라 배가 부른데도 침이 꿀떡 넘어갑니다.

일행에게 "한잔만 더 할까" 했더니 그러자고 합니다. 간·천엽을 파는 포장마차에선 육회를 팔지 않습니다. 육회를 파는 포장마차에서도 간·천엽을 팔지 않구요. 바로 붙어 있는 집들인데 서로 도우며 사는 공생관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오늘의 메뉴는 간·천엽으로 골랐습니다. 가격이 얼마냐구요? 5천원입니다. 이 시장에선 5천원 이상 짜릴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싱싱한 간과 천엽이 조그마한 접시에 담아져 나옵니다. 참기름소금장도 물론이구요. 간과 천엽에는 깨소금 까지 정성스럽게 뿌려져 있군요. 막걸리 한모금을 걸친 뒤 입에 넣어봅니다. 향긋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뒤이어 포장마차에 들어온 젊은 연인 한 쌍이 기자 일행이 먹는 걸 보고 식욕이 동했던지 간과 천엽을 주문합니다. 이름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저거하고 똑같은 걸로 주세요."
요즘 젊은 여자들 왠만해선 생간과 천엽 먹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아니나 다를까, 몇 점 집어 먹더니 고개를 살랑살랑 흔듭니다. 뻘겋게 핏물이 흐르는 모양새가 영 비위에 거슬리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막걸리를 마시는 젊은 연인이 예뻐보이기만 합니다.

조금 지나니 주인아주머니 구운 은행까지 서비스로 내줍니다. 이렇게 해서 돈이 남느냐고 물었더니 "자주 오면 돼"라고 합니다.

그곳에서도 막걸리 두통을 마셨습니다. 길을 나서는데 아주머니 "자주 와야돼"를 연신 외쳐댑니다. "예, 그럴게요." 다음 번엔 육회를 먹어볼니다. 물론 어렵게 살아가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넘쳐나는 인정도 먹구요.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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