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숭인동 길레스토랑-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익산떡은 동네 터주대감이다. 청계천이 복원되기 훨씬 이전부터 살았다. 쉼터도, 일터도 이곳이었다. 쉼터는 삼일아파트였다. 몇십년을 청계천변에 남루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으면서 서민들의 삶을 대표했던 바로 그 아파트다. 그것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과정에 익산떡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 있다. 익산떡은 길레스토랑을 열기 전 인근에서 식당을 했다. 그때가 삼일아파트에 살 때였다. 물론 길레스토랑을 연 다음에도 삼일아파트 생활은 당분간 계속됐다. 대단한 꿈을 지니신 한 시장님이 등장했다. 그는 "청계천을 복원하겠다"는 말로 시장님이 됐다. 그리고 바로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됐다. 문제가 많았다. 걸림돌이 많았다. 청계천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문제였다. 청계천 고가 밑에서 수십년간 각종 중고물품들을 팔던 벼룩시장 상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노점상들이 들고 일어났다. 연일 시위와 반발이 이어졌다. 그 중엔 철거 계획이 잡힌 삼일아파트 주민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 주민 가운데 익산떡이 있었던 건 물론이다.

철거에 반대하는 삼일아파트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익산떡,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 위원회에서 중요한 한 자리를 맡고 있었다고 했다. 그 말 잘하고 화통하고 사람들과 잘어울리는 익산떡에겐 어찌보면 당연지사.

화자는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모르고 있었다. 최근 화자가 <위클리서울>에 몸담기 전 근무했던 신문사의 한 후배기자가 찾아왔다. 물론 한 잔 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막힌 곳을 소개해주겠다며 후배 기자를 데리고 간 길레스토랑. 막걸리 몇 순배가 돌 무렵 후배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어? 저 아줌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저 아줌마는 당근, 익산떡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 정도로 끝나나 했다. 그런데 익산떡도 후배 기자를 어디서 본 듯 한 모양이었다.
"저 총각, 어디서 많이 봤는데…."
그렇게 해서 스무고개를 풀어가다보니 나오는 삼일아파트 비대위 사건. 내용인 즉슨 이 후배 기자가 한참 서울시와 삼일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을 무렵 취재차 현장을 방문했고, 비대위원장 등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익산떡이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커피도 타주고 했을 턴디…."

당시 익산떡은 비대위의 총무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것 뿐 아녀. 주민 인터뷰한다고 해서 내가 대표로 TV에도 나왔어…."

그 뿐 아니다. 한때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을 땐 가스통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익산떡이 그 가스통을 든 채 철거를 강행하려는 용역회사 직원들에게 온몸을 던지기도 했다나…. 이건 익산떡 얘기가 아니고 전에 얘기한 적 있던 출판사 임 부장이 전해준 것이다. <다음호 계속>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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