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한 시간 동안의 서울 뒤집기

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퍼붓습니다. TV에선 연신 폭우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 중북부지역에 호우 경보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비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네요. 큰 일입니다. 별 일 없어야 할 텐 데요. 비가 올 때마다 그렇듯 중랑천은 또 범람했답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내립니다.

집을 나섭니다.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우산도 별 소용 없습니다. 사방에서 내리치는 빗줄기로 이내 바짓가랑이가 젖어듭니다. 오늘도 걸어서 출근할 수 있을까….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결단을 내립니다. 중간에 몇 군데 확인해야 할 곳도 있습니다. 성북천과 정릉천, 그리고 청계천이지요.


#떡전교 사거리, 고장난 신호등, 위태롭게 달리는 차들

걷습니다. 쉼터에서 약 10분여 떡전교 사거리가 나옵니다. 사건을 이곳에서부터 이미 벌어져 있습니다. 교통이 가장 혼잡한 출근대 러시아워. 그런데 사거리의 교통신호가 꺼져 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비…앞은 잘 보이지도 않고 위태위태한 상황이 연이어집니다. 차들이 아슬아슬 곡예 운전을 합니다. 사방에서 경적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도로는 이미 물난리입니다. 횡단보도 앞에는 등교를 서두르는 학생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차들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는 것입니다.


#뒤엉킨 차들. 사방에서 경적소리가 울려퍼지고...

하지만 교통을 통제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날씨 좋을 때 나와 계시던 모범운전자 분들도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112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시간은 정확히 오전 8시 28분.

"떡전교 사거리 교통신호등이 고장 나서 난리가 아닙니다. 빨리 나와서 통제를 해주십시오."

전화를 끊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사진 몇 컷을 찍으면서 기다려 봤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위험한 상황은 계속해서 연출되고 있습니다. 10분이 지났습니다. 순찰차 한 대가 옵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고 맙니다. 왜 그냥 지나쳤을까요. 난리가 아닌 상황, 누가 봐도 알 수 있을텐데….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립니다. 반가운 소리입니다. 어디서 나는 소린가 찾아보니 어젯밤 거리에서 잠을 잔 게 틀림없어 보이는 허름한 차림새의 중년 남자입니다. 이 사람도 답답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호루라기는 그냥 소리만 나고 있을 뿐, 어떤 역할도 해내지는 못합니다.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다시 112로 전화를 겁니다. 이번엔 조금 큰 소리를 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란 대답이 돌아옵니다. 다시 시간이 흐릅니다. 다른 순찰차 한 대가 지나갑니다. 그냥 지나갑니다. 속이 탑니다. 그리고 6분뒤, 그러니까 신고전화를 한 뒤 16분이 지난 8시 44분, 다른 순찰차 한 대가 교통신호 통제기 앞에 와 섭니다. 경찰 한 명이 내려서 잠깐 통제기 안쪽을 만집니다. 이내 교통신호 등불이 켜집니다. 아주 간단하더군요.


#기자가 신고를 한지 16분만에 현장에 도착한 경찰.

"어디서 오셨어요?"
"동대문경찰서에서 왔습니다."

떡전교 사거리에서 동대문경찰서는 자동차로 3-4분이면 오고도 남을 만큼 가깝습니다.

"왜 이리 늦었어요?"
"교통통제센터가 용두동에 있습니다."

멀어서 늦었다는 얘깁니다. 용두동이라봤자 10분이면 오고도 남을 텐데요. 그러면서 짜증나는 표정으로 위 아래를 훑습니다.

"제가 신고를 한 사람인데요. 아주 위급한 상황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늦게 오신 것 아닌가요?"

"어제 밤새웠습니다. 비만 오면 감전 등으로 차단기가 내려갑니다."

그래서 교통신호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고생 많이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짜증이 납니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몇마디 했습니다. 순찰차가 그냥 지나간 것부터, 결론이 중요하지 않느냐, 사고라도 났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느냐는 등….
마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한마디 남기고 가버립니다.


#급격히 수위가 불어난 정릉천.

걸음을 옮깁니다. 빗줄기는 더욱 강해집니다. 이미 바지는 젖을 대로 젖었습니다. 떡전교 사거리에서 20여분 걸으면 용두대교가 나옵니다. 정릉천이 흐르는 곳이지요. 대교 위에 일단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가가보니 수위를 재고 있습니다. 서울시와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중이라는 데 고려대학교 부설 방재과학기술연구센터 직원들이었습니다.


#수위 확인작업을 하고 있는 고대 방재과학기술연구센터 직원들

정릉천은 아주 위태롭습니다. 수위가 급격히 불어나고 있습니다. 위로는 내부순환도로 고가가 지납니다. 고가에서 물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가는 물

연구센터 직원 중 한 명에게 물어보니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하는 군요. 직원들은 오늘 새벽 3시부터 이곳에 나와 수위를 체크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고생이 많습니다. 사진을 찍는데 몇 컷만 보내달라고 합니다. 자료를 남겨야 하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았답니다. 그러겠노라고 했습니다.


#성북천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 10분여, 성북천이 나옵니다. 이곳도 마찬가집니다. 수위가 급격히 높아진 상태입니다. 청계천은 어찌됐을까,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에 들러볼 생각입니다. 빗줄기는 기사를 쓰는 순간에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일산행 3호선 전철이 끊겼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별 일 없어야 할 텐데요….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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