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탐구> 역대 통치자들의 질병과 건강 관리

* 조선조 27명의 왕 중 환갑 넘긴 임금은 6명, 평균 수명 47세
* 정력 보강 위해 풀벌레·뱀 드신 `연산군`
   최장수왕 영조, 15년간 인삼만 100근 복용
* 효종, 종기 치료 중 과다출혈로 사망 `의료사고`
  역대 대통령 장수 - 이승만 윤보선 90세 넘겨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취임한 노 대통령 허리 통증으로 고생, 보톡스와 쌍꺼풀 수술도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크게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는 왕들이라 할 지라도 `건강` 문제는 최고의 관심사일 수 밖에 없었다. 과거 `통치자`에서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로 개념은 바뀌었지만 현대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500년 동안 이어져 온 조선조 왕들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건강을 통해 그들을 괴롭혔던 질병과 자신만의 `웰빙` 전략을 살펴봤다. 그 때나 지금이나 분명한 것은 국가 지도자가 `정무`로 인해 느끼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일반인들보다 상당하다는 점이다.


#세종대왕


민족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대왕은 비만에 시달렸고, 연산군은 정력을 위해 뱀과 풀벌레까지 먹었으며 장수로 유명한 정조는 `인삼`을 최고의 보약으로 여겼다.
서울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정선 씨는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이란 논문에서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질병과 건강관리에 대해 분석했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역대 27명의 왕이 승계했던 조선시대(1392-1910)는 518년간 지속됐는데, 이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의학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엿볼 수 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소선 시대 27명의 왕들 가운데 환갑을 넘긴 사람은 6명이며 평균 사망 나이는 47.0세다.
다음은 조선조 역대 왕들의 건강 상태와 병력, 보건 생활 등을 담은 김 씨의 논문 전문을 요약·재정리한 것이다.

아픈 뜸 기억, 낙형 금지
태종 - 류마티스 관절염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역시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64세 무렵에 건강이 계속 나빴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질병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목마름에 시달려야 했으며 67세에는 병 치료를 위해 온천욕을 해야 했고, 68세에는 풍질을 앓았다.
74세에 다시 풍질이 들어 이후로는 계속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이를 낫기 위해 죄수를 석방하고 성황신에게 기도하는 등 갖은 방법을 사용했으나 넉 달 간 앓다가 사망했다.

평소 격구를 즐겼던 정종은 신경이 예민했고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 63세에 병이 들어 사망했지만 자세한 병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용의 눈물>의 주인공인 태종 이방원도 평소 풍질을 앓았다. 47세 때는 본래 있었던 풍질이 다시 발작해 물건 잡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태종의 풍질은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경추 신경근증으로 보인다는 게 김 씨의 설명.

태종은 풍질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용과 뜸 치료 등을 받았으며 자세한 질병 기록은 없지만 56세 때 병세가 갑자기 악화됐다. 당시 태종의 치료를 위해 사용된 방법 역시 길흉을 점치거나 죄수들의 사면령을 내리는 것에 그쳤다.
젊은 시절의 세종은 고기가 아니면 식사를 못할 정도로 육식을 좋아했고 당시 왕들이 즐겼던 사냥을 좋아하지 않는 비만한 체구였다. 29살에 두통과 이질로 병세가 심해졌는데 정신적 과로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35세 때부터 세종은 풍질이 고질병으로 발전했으며, 하루 마시는 물의 양이 한 동이가 넘었다는 기록을 보면 당뇨병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3세 때는 주로 안질을 자주 앓았는데 `한 걸음 사이에서도 사람이 있는 것만 알겠고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욕을 즐겼던 세종은 50세 때 수전증으로 고생했으며, 52세부터 건강상태가 특히 좋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식을 통해 치료에 노력했으며 신하를 보내어 명산대천과 산사에 기도를 올렸지만 54세에 결국 사망했다.

문종은 종기를 자주 앓았는데, 고약이나 거머리를 붙이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조선조에서 가장 단명한 단종은 말이 약간 막히는 증상이 있었고 본래 구역질이 있어 평소에도 건강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을 만큼 혈기 왕성했던 세조 역시 40세 이후부터 질병으로 고생해야 했다. 특히, 정신적 원인으로 인해 질병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20세로 단명한 예종은 발에 질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어려서 인사불성이 될 만큼 더위 병을 앓은 성종은 여름철만 되면 증세가 나타나 6, 7월에는 외부 출입을 자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7세 때에는 치통으로 고생해 한동안 식사를 적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사망하기 얼마 전부터 천식을 앓았고 설사 증상과 수전증으로 고생했다.

폭군의 대명사인 연산군은 세자 시절인 18세 때부터 종기를 앓았는데 중국 약을 얻어와 비로소 치료할 수 있었다. 건강을 이유로 여러 차례 경연을 취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실제로 건강이 많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당시 의원들은 연산군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력에 좋은 풀벌레와 뱀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출된 뒤 역질에 걸려 괴로워하며 사망했다.
중종은 45세 때 건강이 좋지 못했는데 약을 먹거나 붙이고, 침으로 터뜨리거나 고름을 빼내는 등의 치료가 행해졌다. 57세에 사망한 만성 치주염으로 고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효성이 지극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종은 아버지(중종)의 죽음에 너무 슬퍼한 탓으로 갑자기 사망한 걸로 기록돼 있다. 상중에는 식사를 잘 들지 못해 수척해졌으며 기력이 너무 지쳐 사람에게 부축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인종의 재위기관은 8개월로 역대 왕 중 가장 짧다.

본디 허약한 체질이었던 명종은 평소부터 감기에 자주 걸렸다. 특히, 걱정이 많고 소심했던 명종의 병은 `마음`에서 상당 부분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30세 때는 세자가, 32세 때는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죽었는데, 그 슬픔으로 인해 건강상태가 무척 좋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글을 벽에 붙여놓고 항상 보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군주였던 선조는 22세 때 목소리가 비정상적으로 돼 낫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본래 비위와 원기가 약했던 그는 왜란으로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질병치료로 침을 자주 맞았다.
46세 때는 가슴 통증과 귀울림이 있었으며 52세 때는 감기로 인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약을 자주 복용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선조 자신이 "마음병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광해군은 28세부터 치통을 앓았으며 30세 부터는 해마다 안질을 앓았다. 광해군은 자신의 건강과 관련, "본래 마음의 병(화병)이 많다"며 "일이 많아 병이 난 것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조반정 이후 강화도에 격리됐으며 해마다 병을 앓아 조정이 내의를 보내야만 했다.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젊은 시절 건강한 편이었지만 38세 때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다. 45세 때는 질병을 앓는 중에 누군가 저주하는 물건을 감춰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노심초사로 병이 생겨 몸이 부어오르고 한기와 열이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인조는 55세 때 감기에 걸린 뒤 병세가 위독해져 사망했는데 당시 세자(효종)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인 것으로 전해진다.
때때로 건강이 좋지 못했던 효종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의료사고`로 죽은 불운한 인물이다. 41세 때 치료 실수로 인한 출혈 과다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머리 위해 난 작은 종기가 점점 악화돼 나쁜 피를 뽑고자 침을 사용했는데 계속 출혈이 그치지 않아 운명을 달리했다.

현종은 젊어서부터 위장병과 안질, 가렴증, 두통, 부스럼 등 다양한 병을 앓았다. 그는 34세때 다리통증과 두통, 열로 인해 위독해져 결국 사망했다.
현종의 뒤를 이은 숙종도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28세 때 "마음의 병으로 마음이 답답하여 숨쉬기가 곤란하고 밤새도록 번뇌가 심하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주로 화병으로 고생하던 숙종은 자신의 병에 대해 "(내) 성질이 너그럽고 느슨하지 못하여 정무에 신경 쓰느라 먹고 자는 것을 제때에 못하고 화병이 날로 성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는 60세 때 복부 팽만과 구역질 등으로 사망했다.
세자 시절인 12세 때 두창을 앓았던 경종은 성기능 장애로 생식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5세 대 음식물에 독약이 들어 있어 토하기도 했던 그는 37세 때 병세가 위중해져 세상을 떠났다.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장수한 영조도 젊었을 때는 두창을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37세 때는 심한 슬픔과 `화병`으로 깊은 밤에도 문을 연 뒤에야 비로소 취침한 것으로 전해진다.
40세 때 복부 통증으로 뜸을 100번이나 뜬 영조는 당시의 기억이 끔직했던지 낙형(烙形, 불에 달군 쇠를 죄인 몸에 대어 지지는 형)을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담병을 자주 앓았던 영조는 평소부터 정신적인 압박감이 자신의 건강을 해친다고 생각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70대부터 건강 상태가 다시 좋아진 영조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검은 머리털이 있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았다고 전해진다. 76세 때는 백발이 다시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난다는 기록도 있다.
영조는 일찍부터 인삼을 중요했던 것으로 보이는 데 72세 때 1년간 복용한 인삼량이 20여근이나 됐으며 59세부터 73세까지 15년간 복용한 인삼이 100근이 넘을 정도로 자주 복용했다.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했던 영조는 83세 때 가래, 어지러움, 천식 등으로 병세가 악화돼 사망했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젊었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다. 매년 있었던 화성 행차 때마다 병 없이 왕래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49세 때 종기가 악화돼 결국 사망했다.
순조 역시 45세 때 다리 부위에 난 종기가 심해져 사망했으며, 헌종은 자세한 증상의 기록 없이 2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담증이 있었던 철종 역시 33세에 일찍 사망했다.

고종은 47세 때 체한 것으로 소화제를 많이 복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56세 때 일제의 강요로 왕위를 넘겨줘야만 했던 그는 안질과 관절염 등으로 고생하다 68세에 사망했는데 중풍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은 비운의 왕 `순종`은 치통과 다리 통증으로 고생했으며 변비증상도 있었는데 53세 때 병세가 악화돼 사망했다.

"건강은 빌릴 수 없다"
보톡스와 쌍꺼풀 수술

김정선 씨는 일반인들보다 장수했다고 생각하기 쉬운 조선시대 왕들이 비교적 오래 살지 못한 것에 대해 당시 의학의 한계와 불결했던 생활환경 조건, 궁중생활의 결함 등을 꼽았다. 정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외에도 지나친 호의호식과 운동 부족 등이 건강 악화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한편, 대한민국이 건립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건강은 몰라보게 좋아진 의학 체계와 청결해진 생활로 인해 비교적 장수하는 편이다.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은 90세까지 장수해 그의 건강 비결이 회자되기도 했다. ▲균형있는 식사 ▲청결한 생활 ▲충분한 휴식 ▲규칙적인 운동 ▲웃음을 잃지 않는 생활 등이 이에 담겨 있다. 이 전 대통령은 1965년 뇌일혈로 하와이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 역시 1990년 숙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90세가 넘는 생을 살았다. 이후 군 출신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큰 질병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건강은 빌릴 수 없어도 머리는 빌릴 수 있다`는 발언으로 유명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이 좋아하는 달리기 덕분인지 여전히 건강하다는 전언이다. 임기 중 `건강이상설`까지 나돌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만이 최근 두 차례에 걸쳐 폐 질환 등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보톡스 주사`와 `쌍꺼풀 수술`을 받는 등 현대 의료의 혜택을 비교적 많이 받은 대통령이기도 하다.
유상민 기자 uporter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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