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일기> 잦은 비로 오늘도 풀 매지 못한 콩밭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장마철에야 비가 잦은 건 당연하지만, 장마가 끝난 뒤에도 비가 자주 내립니다. 좀처럼 콩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미 콩밭에 풀은 콩들과 나란히 키재기를 하고 있고 내 눈은 몇 번씩이나 풀을 뽑고 있습니다만 콩밭은 아무런 일이 벌어진 게 없지요.

오늘까지만 비가 안 오면 내일은 풀밀어(약 20cm되는 칼날이 외바퀴 앞쪽으로 달려있어 마른 땅을 밀고 나가면서 풀을 뽑거나 잘라내는 농기구)가 들어갈 수 있겠지 하고 나면 다음 영락없이 비가 오기를 몇 차례….
이젠 더 이상 안 되겠습니다.

콩을 심을 때 풀밀어로 풀을 맬 생각으로 풀밀어 간격에 맞추어 콩을 심었기 때문에 일단 콩 주변의 풀들을 먼저 뽑기로 하고 콩과 콩 사이의 골은 비가 멎고 땅이 마르면 풀밀어로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채 마르지도 않은 밭에 들어가 콩 주변의 풀들을 뽑기 시작합니다. 땅이 젖어 있어 풀뿌리에 흙덩이가 달린 채로 뽑히니 뽑으면서도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오늘도 풀 뽑기를 그만둡니다.

우리 집 콩밭 크기는 두 마지기 조금 넘을까…. 그 땅에서 나온 콩으로 우리는 메주를 쒀서 된장을 담그지요. 땀 흠뻑 뿌려진 콩. 고마운 햇빛·바람 덕으로 만들어진 만난 된장·간장은 그간 살림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지난 해 여름은 밥 먹을 때 빼고는 콩밭에서 살았지 싶습니다.
엄청난 땀을 흘렸지요. 속옷을 흠뻑 적시는 건 물론 이마에서 내려오는 땀줄기가 눈 속으로 들어오면 어찌나 따가운지.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그걸 참으로 실감했습니다.
풀밀어로 대강 북도 주고 순도 질러주며 그렇게 여름을 보내면서 콩밭이 지긋지긋할 때도 많았지요.

아! 지금 그 여름이 그립습니다. 베적삼이 흠뻑 젖어도 좋다. 눈 속으로 흘러드는 땀방울도 좋으니 콩밭만 맬 수 있다면….
텔레비전을 켭니다.
호우 피해를 입은 지역의 복구가 채 5%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군요. 단지 잦은 비로 콩밭에 풀을 매지 못한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름 장마철은 장마철대로, 겨울 눈사태는 눈사태대로 우리 앞에 자연은 그대로 숙연함입니다. 그대로 두려움입니다. 난리는 난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자연의 거대한 질서와 힘을 우리가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거스르려 한다면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끝없이 이어지겠지요.
자연의 흐름을 따르며 늘 지켜지는 질서 속에서 땀 흘려야 하는 이 여름. 그 땀을 그대로 받으며 베적삼 흠뻑 적시는 콩밭 매는 아낙네이고 싶습니다. 김금란 농민기자 <김금란님은 전북 부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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