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9월 청계천에서 만난 가을 풍경

이번엔 참았습니다. 물론 산에 오르지 않은 건 아닙니다. 북한산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특명`이 떨어졌습니다. 청계천의 가을 풍경을 취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산 기사는 다음호로 미뤘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맨날 북한산과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 등의 기사만 쓰다보니 독자님들도 지겨워하실만 합니다. 지난번 등산 기사 대신 벌초간 기사를 게재했을 때 독자님들의 반응만 봐도 알만 합니다. 오히려 등산 기사 때보다 격려의 말씀들을 더 많이 해주셨거든요. 이번에도 부탁드립니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길….
바람이 붑니다. 서늘합니다. 아침 저녁으론 한기가 들 정돕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을 없이 바로 겨울이 오나보다고 불평합니다. 그럴 만 합니다.
청계천의 나갔습니다. 청계천은 복원된지 1년이 지났습니다.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않으렵니다. 다만 1년이 지나 두 번째 가을을 맞은 그 풍광만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광교부근에서 시작, 중랑천과 맞닿는 청계천은 사실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광교에서 동대문 쪽 까지보다 그 이후 풍광이 더 멋있습니다. 광교에서 동대문까지가 인공적인 미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면 그 나머지는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청계 8-9가 황학교에서부터 중랑천까지 이어지는 부분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복원된 구간은 청계 9가가 끝입니다. 그 나머진 원래 개천된 상태였습니다.

다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볼품이 없었지요. 그런데 복원 공사를 하면서 새단장을 했습니다. 물론 인공이 가미된 자연이지만 그래도 광교 등 중심가보단 훨씬 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기자 역시 자주 청계천에 들르는 편입니다. 시내 취재시에는 청계천변 산책로를 걸어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대문 인근에서 광교까지는 항상 마실 나온 사람들로 산책로가 붐빕니다. 그런데 사실 가을을 스케치 하기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콘크리트 덩어리인 때문입니다.

이번에 청계 7가 부근에서 시작해 중랑천쪽으로 이어지는 천변을 취재 영역으로 잡은 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이곳은 다양한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습니다. 마치 한가로운 시골길을 걷는 느낌까지 들게 하지요. 온갖 가을이 이 곳에 다 담겨 있습니다.


#거대한 주상복합 건물

청계8가 인근 황학동에 거대한 크기로 들어서는 한 주상복합 아파트만 제외한다면 흠잡을 데 없습니다.
산책로엔 역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들 중엔 운동을 하는 이도, 산책을 하는 이도, 다리 아래 서늘한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도,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도 있습니다. 다양한 서울 시민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황학교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멋진 가을 풍광들이 펼쳐집니다. 천변의 이름모를 풀들은 지난 여름 장맛비에 쓸려 비스듬히 누운 채 일어날 생각을 고 있습니다. 색깔이 푸른 걸로 보아 죽은 건 아닌데요. 싸늘한 날씨에 벌써 겨울이 왔나보다, 이제 동면으로 들어갈 텐데 기 써서 일어나면 뭐하겠나 생각하고 포기한 모양입니다.


#물억새


#활짝 피어난 물억새

가장 눈에 많이 뜨이는 건 물억새입니다. 갈대인줄 알았는데 청계천시설관리공단 측에 문의를 해보니 물억새라고 알려주네요. 잎을 축 늘어뜨린 채 꽃술을 활짝 펼치고 있습니다. 부는 바람에 온 몸을 내맡긴 채 하늘거리는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가을 속으로 풍덩 빠져 들게 합니다.


#찔레

담장에도 가을이 있습니다. 녹색의 잎들 사이에 자주색 꽃이 소담스럽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능소화입니다. 담장 아래 부분엔 벌개미취와 원추리가 꽃을 활짝 피우고 한껏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원추리는 들국화와 흡사합니다. 한약재로 쓰기도 하지요.


#원추리


#능소화


#부처꽃, 핀트가 맞지 않았습니다.^^


#청둥오리

청계천에서 가장 흔한 조류인 청둥오리 한마리가 한가로이 물위를 헤엄치고 있습니다. 대부분 두 마리씩 짝을 지어다니는 데 오늘 만난 주인공은 혼자입니다. 근처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다른 한 마리가 짝을 찾아 열심히 헤엄을 쳐오고 있네요.


#수크령


#수크령 사이로 해오라기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조금 더 걷다보니 고산자교 부근에 멋진 광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강아지풀 모양인데, 그보다는 조금 더 큽니다. 시설공단에 물었더니 수크령이라고 하네요. 수크령은 순수한 우리나라 말이랍니다. 만져보니 굉장히 부드럽습니다. 부는 바람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한가한 농촌의 보리밭을 연상케 합니다.
고산자교 아래엔 온몸이 하얀 백로가 혼자 어슬렁거리며 먹잇감을 찾고 있습니다. 중대백로라고 합니다.


#중대백로

신답철교를 지나 제2마장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천변에 물억새 군락이 장관입니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저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물체가 감지됩니다. 줌으로 당겨보니 잿빛을 하고 있습니다. 백로와는 차이가 큽니다. 바로 해오라기입니다. 청계천에서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것인데 이맘 때쯤 한 마리씩 날아든다고 하는 군요.


#해오라기

제2마장교 가는 산책로는 마치 야트막한 논둑길을 걷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길 양쪽으로 우거져 있는 물억새 덕분입니다. 사람 키 정도 크기로 군락을 지어 우거져 있는 모습이 어릴 적 풀숲에 숨어 숨바꼭질하던 때를 떠오르게 하는 군요.


#오솔길을 연상케하는 물억새 사잇길

그 옆엔 높은 키의 해바라기가 꽃을 활짝 피운 채 파아란 하늘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제2마장교 조금 전에는 감나무길이 펼쳐집니다. 이른바 상주감나무길이라고 하네요. 상주에서 가져온 감나무를 심어 놓은 것입니다.



제2마장교를 지나면서는 은행나무길과 담양대나무길, 하동매실거리 등이 이어집니다. 용답교를 지나면 머루서식지와 버드나무길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올 가을, 멀리 떠나지 말고 가까운 청계천변에서 가을을 맞아보는 건 어떨까요.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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