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통문=옛것을 찾아서> 사가마을 여상 송씨댁과 외능마을 남양홍씨댁

일반적으로 전통가옥의 재료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붕의 경우 볏짚, 억새, 기와, 나무기와(너와), 돌기와 등 다양한 지붕재료를 사용하였다. 물론 개인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선택의 폭은 다르겠지만 영구성으로 따져 천년을 간다는 돌기와가 고가(高價)의 재료였을 것이다.

전북 정읍의 경우 산간부와 평야부가 골고루 섞여있기에 지붕재료도 다양한 편이지만  돌기와 지붕이 있다는 얘기는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정읍에도 돌기와 지붕이 있다는 반가운 얘기를 지인(知人)으로부터 듣고 찾아갔다. 처음엔 반신반의(半信半疑)했지만 사실임을 눈으로 확인했다.

강원도 같은 깊은 오지(奧地)를 답사하면서 겨우 볼 수 있었던 흔치않은 풍경이었는데 우리고장 정읍에서 확인하게 되다니….  내가 몰랐던 새로운 풍물을 대하고 나니 평소 좁다고만 생각했던 정읍이 일순간 넓게 느껴졌다.

처음에 간 곳은 정읍시 산외면 화죽리 사가마을. 정읍시내에서 출발하면, 산외면 소재지를 지나 전주방면으로 가다가 만나는 마을이다. 마을 중심에 ‘네거리’가 있다해 한자로 사가(四街)라고 했는데, 이곳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폐교된 화죽초등학교가 나온다. 그리고 그 앞쪽 길 건너편에 홀로 있는 가옥 한 채가 돌기와집이다.
멀리서 봐도 지붕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정읍의 북동부 지역에 해당하며 북쪽방면에 상두산과 국사봉(김제, 완주, 정읍의 경계), 그리고 여기서 이어지는 독금산(獨金山) 등이 병풍처럼 감싸주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지형도를 찾아보니 독금산의 좌우측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이 집의 앞쪽에서 모아지고 이것이 도원천이 되어 동진강의 본류를 이루는 형국이다.

돌기와를 얹고 있는 이곳 한옥 집은 오래되고 낡았으며 주인의 편리대로 조잡하게 개조된 모습이어서 옛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지만, 지붕의 돌기와만큼은 석양빛에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너른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이 가옥은 약 60 여 년 전 송씨 할아버지가 건립했으며 지금은 그 아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건물 소유주와는 친척관계라고 밝히는 아주머니는 3년 전 귀농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당시에 천석꾼소리를 듣던 부자 집으로 가운데 칸에 대청마루를 설치했으며, 일반 기와대신 천년을 간다는 점판암을 구해다가 돌기와를 올렸던 것이다. 아마도 이 건물은 구조상 바깥주인이 기거하는 사랑채에 해당했을 것으로 생각하며, 측면과 뒤편에 또 다른 건물이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집은 대략 서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한눈에 봐도 배산임수형의 좋은 집터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인 일인가?  당시 돌기와 지붕으로 호사스러움을 맘껏 자랑했을 부자 집이 이제는 그저 초췌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천년의 영화’를 꿈꾸었던 돌기와집이 100년도 안되어 사라질 위기인 것이다. 부속건물은 사라지고, 원형을 거의 잃어버린 사랑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데 이것마저도 언제 헐릴지 모르는 상황이고 보면 뭔가 특단의 보존대책이 시급히 필요한 것 같다. 돌기와집의 희귀성과 문화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여기서 가까운 산외면 평사리 외능마을. 산외면소재지에서 목욕리 쪽으로 우회전해 가다가, 오른쪽 하천의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만나는 마을이다. 마을의 가운데쯤 가장 좋은 자리에 홍씨 성을 가진 가족이 살고 있는데, 그곳에도 역시 흔치않은 돌기와지붕이 있었다.

가족이 기거하는 안채는 현재 양옥주택이지만, 과거에는 초가지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채 등 부속건물에 돌기와를 올렸었고, 그것이 현재까지도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가옥의 지붕뿐만 아니라 돌담의 지붕에도 돌기와가 올려져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과연 이런 점판암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점판암을 운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테고, 그것을 기와형태로 다듬어 지붕에 올리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인데….

이번에 찾아본 돌기와집 외에도 정읍 곳곳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돌기와집이 더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앞으로 돌기와 지붕과 관련된 분들을 만나 돌기와집과 관련된 자세한 얘기를 더 듣고 싶다.

이제 돌기와집을 포함해 전통가옥들이 우리 주변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양옥주택이나 아파트가 차지한다. 이제 현대인들은 기능적으로 편리한 주택에서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다. 적어도 근대화 이전에 태어나 전통가옥에서 성장하고, 지금은 현대적인 주택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에게는 옛집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목마름처럼 남아 있다. 시골길을 지나면서 보게 되는 토담집이 우리 세대에게 그저 정겨움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앞에서 우리가 주목한 ‘돌기와’와 ‘돌기와집’에 대해 백과사전에서 더 자세히 알아본다.

돌기와는 점토질의 퇴적암이 변성되어 형성된 점판암을 판상으로 얇게 쪼개고 다시 적당한 크기로 잘라 지붕에 기와처럼 얹은 지붕재료이다.

돌기와집은 흔히 청석(靑石)집이라고도 하는데 기와나 너와 대신 납작하게 쪼개지는 점판암(粘板岩 : 점토질의 퇴적암이 변성된, slate)으로 지붕을 얹은 한국의 전통가옥이다. 석탄이 많이 나는 강원도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도 북부, 북한의 개성 일대, 충청북도 일부 지역에서 주로 지어졌는데,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납작한 점판암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 기와 대신 지붕에 얹는데, 잘 미끄러지는 성질 때문에 청석을 얹을 때는 물매(지붕이나 비탈길 등의 기울어진 정도)를 아주 완만하게 처리한다. 청석을 얹는 방식은 기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즉 아래쪽에 청석을 얹고, 그 위에 아주 비스듬하게 다른 청석을 포개 얹는 식으로 계속 쌓아 올라간다. `천 년 능에`로 부를 만큼 한번 얹으면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경제적이다. 점판암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재료 구입과 운반 등의 어려움으로 일부 계층에서만 청석으로 지붕을 올렸다.
지금은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 등에서만 볼 수 있다. 정읍통문=박래철 기자 ppuri1@eduhope.net 
 
 
▲ 산외면 화죽리 사가마을, 화죽초등학교 앞쪽에 있는 돌기와를 얹은 오래된 한옥집. 지금은 그저 초라하기만 하다. 


▲ 초라한 아래부분과는 다르게 지붕만큼은 돌기와의 특별함을 유지하고 있다.


▲ 돌담의 지붕에도 사용된 돌기와. 점판암을 다양한 크기로 잘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가족들이 사는 본채가 아니어서 헐리지 않고 남아 있었을 것이다.


▲ 지붕만 클로즈업시켰는데 다듬은 돌기와가 마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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