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 밀가루담합 조사 과정 특혜 의혹 재부상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래전에 조사를 완료한 밀가루 담합 사건이 논란거리로 재등장했다.
공정위가 지난 2월말 8개 제분사의 밀가루 담합을 조사하면서 특정 업체를 봐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논란의 핵심이다.
검찰 조사 결과 공정위가 고발 대상에서 제외한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은 담합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포착됐다.
게다가 김병배 공정위 부위원장이 CJ와 삼양사가 고발되지 않았던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 직접 서울중앙지검을 찾았던 것으로 드러나 의혹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밀가루 값 담합은 대한제분, 동아제분, 한국제분, 영남제분, 대선제분, 삼화제분, CJ, 삼양사 등 8개 제분업체가 2004년 4월 이후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는데도 2000년 1월 이후 국내 판매가격을 담합을 통해 밀가루 가격을 내리지 않아 논란을 빚은 사건이다. 이들 8개업체는 이에 대해 공정위로부터 총 434억1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가격 담합으로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액은 4000억원에 달한다고 공정위는 추산했다.

서울지검 영남지분 류회장 공정위에 고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한승철 부장검사)는 지난 13일 밀가루 가격 담합에 가담한 혐의로 영남제분 류 회장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서울지검은 공정위가 당시 류 회장에 대해 판단한 내용과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는 밀가루 담합에 대해 검찰 고발한 5명 중 유독 영남제분만 대표이사가 아닌 부사장급을 고발한 것과 관련해 류 회장이 주가조작 등으로 구속 중이던 2002년 2월 열린 대표자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검찰 고발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2003년 1월 출소한 류 회장은 배모 부사장에게 넘겼던 밀가루 관련 사업을 그해 말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2004년엔 담합에 따라 마련된 밀가루 가격 인상 방안에 결재를 하기도 했고, 지난해 대표자 모임에 최소 1~2차례 참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지난해 대표자 모임이 담합과 관련됐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검찰 고발 대상에서 뺐다고 밝혔다. 또 류 회장의 밀가루 값 인상 결재를 담합과 관련된 증거로 보기엔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표자 모임에서 시장 상황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보이지만 생산 물량에 변동이 없었던 만큼 이 모임이 담합과 직접 관련됐다고 볼 증거가 없었다"며 "류 회장이 가격 인상 방안을 결재한 영남제분의 회사 서류에는 담합과 관련한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부사장이 류 회장을 수차례 방문해 담합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제분회사들과 밀가루 공급 물량 및 가격 등을 담합하는데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 변호사는 "류 회장이 2004년 이후 담합과 무관치 않다는 정황 증거가 있는데도 공정위가 공소시효가 끝나 검찰 고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해찬 전총리 3.1절 골프파문으로 로비 의혹을 샀던 영남제분 공장 전경

검찰과 공정위, 류 회장 공소시효도 엇갈린 판단

류 회장의 공소시효에 대해서도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공정위는 류 회장이 2000년 담합에 참여한 것은 적발했지만 이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고발할 수 없다고 했다. 2000년부터 시작된 7개사의 1차 담합 체제는 2002년 1개 업체가 신규 참여해 물량배분 비율이 바뀜에 따라, 일단 끝난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
담합의 공소시효는 담합행위가 끝난 때부터 시작해 3년간으로, 류 회장의 공소시효는 1차 카르텔이 끝난 2002년 초부터 3년 후인 2005년 초에 종료됐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공정위는 특히 "밀가루 담합은 2000년 시작돼 최근까지 지속됐지만 류 회장 개인에 대한 공소시효는 2005년 초 끝났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또 "고발 대상자는 2002년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담합에 가담한 사람을 회사별로 한 사람씩 선정했다"며 "영남제분 류 회장뿐 아니라 S제분 대표의 경우도 담합을 주도하지 않아 고발 대상에 넣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기준을 살펴보면 2000년부터 올해까지 담합을 모두 합친 것으로, 과징금 기준과 형사처벌 기준이 다른 것에 대해 논란이 남아있다.
검찰도 "류 회장의 담합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류 회장은 공정위가 밀가루 담합을 심의한 전원회의 직후 3.1절에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골프모임을 했다. 공정위가 총리실 산하조직인 만큼 당시 영남제분 골프장 로비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영남제분은 골프회동 다음날인 지난 3월2일 공정거래위로부터 가격담합 혐의로 3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류 회장은 다른 제분 업체 업주와 달리 검찰고발 대상자에서 제외됐었다.

공정위 부위원장 검찰 찾아 기업비호 시각 제기

김병배 공정위 부위원장이 최근 서울중앙지검을 직접 찾은 배경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김 부위원장이 이례적으로 검찰을 찾은 것은 밀가루 담합업체인 CJ와 삼양사를 검찰 고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해명 때문.
이를 두고 김 부위원장이 일부 기업을 비호한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는 밀가루 담합행위를 한 8개 제분업체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당시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대표자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삼화제분의 경우 담합에 개입했던 대표자급 임원(부사장)이 지난 2004년 사망했고, CJ와 삼양사는 검찰 고발 대상에서 빠졌다. 이 두개 업체는 위반행위를 자진 시정하고 조사에 협조했기 때문에 공정위의 `자진신고자 감면제(리니언시)`에 따라 고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이 "담합을 통해 가장 많은 불법수익을 올린 회사가 고발조차 되지 않는다면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자 김 부위원장이 직접 해명을 하러 검찰을 찾은 것이다. CJ와 삼양사는 각각 업계 점유율 1위와 4위 업체다.
한편 주요 제분업체의 밀가루 가격 담합에 관한 증거를 찾아내 434억원의 과징금을 물리는데 기여한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 정책팀 오행록 사무관(33)은 지난 3월에 `2월의 공정인`으로 선정됐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3월22일 "2004년 1차 조사때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는데 오 사무관이 지난해 6월 재조사때 담합증거를 찾아내 과징금 부과에 기여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강성일 기자 steel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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