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성폭력 사건 지나치게 선정적"
"언론 성폭력 사건 지나치게 선정적"
  • 승인 2006.10.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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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 6개 중앙일간지 성폭력 관련 기사 분석 보도 가이드 라인 정리

용산 성추행 살해 사건,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 마포 연쇄 성폭력 사건, 교도관에 의한 성추행 사건 등 2006년 상반기에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알려졌다. 특히 2월말에서 3월에는 몇 건의 사건이 연달아 이슈화 되면서 성폭력 사건이 연일 보도되는 전례가 드문 상황이 만들어졌다.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는 올 1월부터 7월까지 경향, 서울, 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등 6개 중앙일간지의 성폭력 관련 기사 386건을 분석해,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면서 흔히 저지르는 잘못을 바탕으로 보도 가이드라인을 정리했다.

민우회는 7개월 동안 6개 일간지에 게재된 386건의 성폭력 관련 보도 가운데 110건의 보도가 성폭력 사건을 희화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등 다양한 오류를 보였다고 밝혔다. 반면 `좋은 기사`로 분석된 것은 10건에 그쳤다.
그리고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상담통계를 보면,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던 이 시기의 성폭력 상담건수가 다른 달에 비해 1.5∼2배 가량 많다는 것(175건)을 확인할 수 있다.
민우회에 따르면 상담자들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자기에게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내왔는데, 사실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워했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한번쯤은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언론을 통해 생존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어떤 사회적 자원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접한 것이 상담을 결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우회는 "한편으로는 성폭력사건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언론보도 방식이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성폭력 피해경험을 두렵게 떠오르게 하고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호소도 많았다"며 "일찍 귀가하라든가, 혼자 사는 여성이 성폭력의 표적이 된다는 식의 성폭력 보도는 여성들을 공포로 밀어 넣기도 한다"고 얘기했다.
이와함께 민우회는 올 상반기에 발생한 사건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성폭력 근절이라는 공공성 추구보다는 선정성이 두드러졌다"고 주장했다.
신문 기사들에서 주로 지적된 내용은 ▲성폭력 사건을 희화화 하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태도 ▲가해자를 정신병자나 짐승으로 묘사하면서 성폭력을 일상과 분리된 범죄로 부각하는 태도 ▲성폭력 발생 원인을 피해자가 제공한 것으로 보도한 태도 ▲여성의 순결함이 훼손된 일로 바라보는 태도 ▲가해자의 변명을 부각시키는 보도로 인해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 할 수 있는 보도태도 ▲실효성 없는 대책을 부풀려 보도태도 ▲성폭력사건을 정치적 공방 소재로 이용하는 보도태도 등이었다.
민우회는 "성폭력 사건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언론보도 방식이 성폭력 생존자(피해자)들에게 성폭력 피해경험을 두렵게 떠오르게 하고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호소도 많았다"며 "생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전반적인 반성폭력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가해자가 아닌 생존자의 관점으로 언론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론의 성폭력 보도를 분석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든 이유를 밝혔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 혹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환기하거나, 치안에 대한 점검을 부각하며 사회적인 안전망을 이슈로 삼는 기사는 거의 없는 반면 독자의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기사는 넘쳐났다는 것이다.
언론이 가장 많이 저지른 잘못은 `발바리`, `다람쥐` 등 폭력성을 희석시키는 용어를 사용해 사건이나 가해자를 지칭한 것.
이에 대해 민우회는 "신문지상에서는 이제 `발바리`가 연쇄 성폭행범의 대명사가 됐다"며 "그러나 `발바리`가 가해자의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잘 드러내 줄지는 모르나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입한 가해자를 지칭하는 말로는 적절치 못하다. 희화화된 속칭을 사용해 가해자의 폭력성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욕 준 여성에 화나서 첫범행` 등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실은 기사는 은연 중에 피해자가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인상을 주는 잘못된 기사로 지적됐다.
`밤 늦게 귀가하는 여성을 노렸다`, `딸 가진 죄인` 등의 기사의 경우 여성을 통제하는 통념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민우회는 분석했다.
한편 민우회는 지난 31일 낮 12시 프레스센터 7층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룸에서 이번 분석 결과를 토대로 `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읽는다-성폭력 사건보도 모니터링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다음은 민우회가 제시한 `성폭력 기사 보도 가이드라인`이다. 강수지 기자 nabiya@yahoo.co.kr

▲폭력의 성애화
성폭력은 명백한 폭력이다. 성폭력을 가해자의 변명을 인용해 설명하거나 희화화,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세부항목
가. 피해자에게는 폭력인 사건을 연애, 성적인 관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나.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꺼리로 다뤄서는 안 된다. (예.「휴지통」,「색연필」 및 그와 비슷한 위상의 흥미위주 단신보도 꼭지에서 성폭력 사건을 다룸)
다. 불필요한 경우에도 피해의 내용을 자세히 묘사해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통념 재생산의 효과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할 수 있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세부항목
가. 성폭력을 일상과 분리된 범죄로만 부각해서는 안 된다. (예. 가해자를 쉽게 정신이상이나 인면수심, 짐승으로 취급하고 비일상적인 인물로 묘사함.)
나. 단순한 성욕의 문제로 성폭력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다. 성폭력 발생 동기를 피해자가 제공한 것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라. 성폭력을 `딸`들과 `딸 가진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범죄로 다뤄서는 안 된다.
마. 성폭력 사건 예방을 위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여성 개인의 예방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바. 성폭력을 여성의 순결함이 훼손된 일, 그러므로 수치스러운 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사. 자신의 가해를 변명하는 가해자의 말을 부각시키는 보도해서는 안 된다.
아. 폭력성을 희석시키는 용어를 사용해 사건이나 가해자를 지칭해서는 안 된다. (예. 발바리, 부적절한 행동)
▲실효성 없는 대책을 부풀려 보도하는 문제
언론은 성폭력 문제 대책 보도에 있어 실질적 공공성을 갖추어야 한다.
△세부사항
가. 현행 사법체계가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에 부족한 지점들이나 제도개선을 위한 쟁점들을 구체적, 실질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대책을 단순 나열해서는 안 된다.
나. 초벌 논의 과정 중에 있는 정책을 결정된 사안인 것처럼 표제로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
▲정치적 쟁점의 소재로 성폭력 사건 이용
언론은 성폭력을 피해자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하며, 피해자의 인권을 다른 정치적 쟁점의 소재로 비화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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