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어느 수능 고사장 앞 전날부터 밤새우는 아이들

수은주 영하 1도. 거기다 바람까지 쌩쌩 불던 지난 15일 밤 8시. 행인들은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에 옷깃을 여민 채 종종 걸음을 치며 귀가를 서두르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등학교 앞.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 웬 정체 모를 사람들이 열댓명 어둠속 교문 앞에 모여 있는 게 아닌가. 수능시험일은 분명 다음날인데…. 이 추운 날 노숙인들이 이곳에 있을 리도 만무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은 고등학생들이었다. 모두 세 팀이 있었는데, 한 팀은 7-8명의 학생들이었는데 그중엔 여학생들도 몇 있었다. 다른 두팀은 4-5명의 여학생들이었다. 대로변이어서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불어댔다. 그들은 바람을 막느라 미리 준비해 온 이불 등을 뒤집어 쓴 채 추위 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7-8명이 있는 한 팀은 인근에 있는 J고등학교 2학년생들이었다. 그것도 학생회 임원들이라고 했다. 왜 이 추운 날 이곳에서 떨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음날 3학년 선배들중 많은 수가 이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응원을 왔다는 것. 담장 옆엔 라면 박스 등이 쌓여 있었고 한쪽에선 미리 준비해온 휴대용 가스렌지에 라면을 끓이는 모습도 보였다. 몇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았다.


#살을 에일 듯 추운 날씨에 내몰린 아이들


#누가 이들을 이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내일 아침에 오면 되지 않느냐.
▲아침에 오면 늦을 수도 있고 해서 전날부터 와 있는 것이다.
-그럼 오늘 밤을 꼬박 새운다는 것인가.
▲그렇다. 내일 아침에 오려면 꼭두새벽같이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어려울 것 같아서 미리부터 와 있는 것이다. 내일 아침엔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기 때문에 자리 잡기도 힘들 거고….
-이곳에 몇 시에 왔나.
▲오후 6시에 왔다.
-학생회에서 결정한 것인가.
▲그렇다.
-선생님들 허락은 얻었는가.
▲물론이다. 부모님들 허락도 다 얻었다.
-이 추운날 걱정하지 않던가.
▲물론 걱정이야 하시지만, 다른 일도 아니고 선배님들 시험 잘 보게 응원하기 위한 것인데….
-작년에도 이렇게 했었나.
▲그렇다.
-춥지 않나.
▲춥긴 추운데 괜찮다.

추운데 몸 조심하라는 얘기만 남기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그 자리를 찾았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고, 바람도 여전히 세차게 불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가스렌지에선 라면이 끓고 있었고, 이들은 수능고사를 치르기 위해 입실하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차와 라면 등을 제공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온전히 밤을 새웠다고 했다. 춥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춥긴 추웠는데 나중에 이불 같은 걸 더 가져와서 뒤집어 쓰고 있으니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고 얘기했다. 물론 잠은 한숨도 못잔 상태. 그런데 한 여학생은 심하게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이들은 수능고사장 입실 완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수능 당일은 수업이 없기 때문.

한편으론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들이 자처해서 한 일이라고 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이들을 이렇듯 사지로 몰아내는 건 분명 어른들이 만든 수능제도 때문이리라. 이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 하에서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생활하는 것일 뿐이고…. 내년엔 이들의 후배들이 또 이곳에 나와서 찬바람을 맞으며 밤을 지새울 텐데…. 언제까지 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행위는 반복될 것인지.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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