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도두리 주민 사망, "주민들 외로운 섬에 가둔 정부도 책임"


#평택범대위 제공

평택 도두리 주민이 사망했다. 지난 11월 25일 저녁 실종된지 19일만에 집 근처 산책로 수풀더미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미군기지 이전으로 조용할 날이 없는 경기도 평택시 도두리에 살던 김치배(61)씨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인 고 김치배 씨는 고엽제 피해로 인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앓고 있었다. 또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경찰과 군인들을 무서워했다는 주민들의 전언이다.

김치배 씨는 실종될 당시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 외출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가족들은 보초를 서던 경찰들에게 수소문 했으나 찾지 못했고, 전경들이 수색하는 도중 실종 19일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시민단체들과 주민들은 "도두리 주민 김치배씨의 죽음의 책임은 무리하게 주민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 정부에 있다"며 "국방부는 불법검문과 요란한 구호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외로운 섬 안에 가둔 잘못을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평택범대위는 "지난 5월 경찰과 군인은 이 마을에 군홧발을 디디고 군사보호시설이라는 간판을 내걸기 위해 들녘에 삼중, 사중의 철조망을 두르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로를 팠다"며 "그때 우리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검문소, 철조망과 수로는 너무나 위험하다며 분명히 경고했다"고 밝혔다.

검문소는 김치배 씨 집 바로 앞에도 설치됐다. 가족들은 검문소를 집으로부터 좀 더 떨어진 곳으로 옮겨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약 40m가량 옮겨졌다가 사흘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도두2리 이장 이상열씨는 "(김 씨가 파킨슨병으로 인해) 발을 질질 끌고 상체는 구부린 상태에서도 집 앞 농로 200∼300m를 운동 삼아 왔다갔다 했는데 전경들이 초소를 세운 뒤부터는 무서워서 밖으로 못 나왔다"며 "평소 하던 운동도 못하고 방에서만 있으니 말 못할 고통이 얼마나 컸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또 "15일 검찰이 부검한 결과 사인은 `동사`였다"며 "그 멀쩡했던 사람이 풀밭에서 언제 죽었는지 조차 모르게 죽어갔을 생각을 하니 안타깝기 한이 없다"고 말했다.

범대위는 "경찰은 심지어 무단으로 김 씨네 집에 들어와 물을 끌어당겨 쓰기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만일 김치배 씨 집 앞에 검문소가 없었더라면, 발을 헛디뎌 일어설 수조차 없는 황무지가 없었더라면, 농사를 짓지 못해 우거진 수풀만 없었더라면 오늘 우리는 이렇게 허망하게 김치배 씨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가 김 씨의 죽음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미국에 미군기지라는 선물을 바치기 위해 제 나라 국민의 간절한 소망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부만 없었더라도 김치배 씨는 오늘도 저무는 노을 녘에 산책길을 따라 걷고 있었을 것"이라는 게 주민들과 범대위측의 생각이다. 

한편 미국이 용산기지 C4I(전술지휘통제체계) 이전비용으로 3000억∼4000억원이 소요된다는 내용의 주한미군기지 시설종합계획(마스터플랜. MP)을 우리 정부에 넘겨준 것으로 알려져 비용분담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주한미군을 평택기지로 옮기는 재배치 작업도 애초 2008년 말에서 2012년말∼2013년 중으로 4∼5년 늦춰지게 됐다.

이에 따라 협정의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협정의 종료시한인 2011년 이후 사업의 성격이 모호해진다는 게 이유다.

범대위와 주민들은 그동안 주한미군 추가 감축과 시설과잉, 성토 작업에 따른 추가 비용과 환경파괴, 반대 여론 등을 근거로 `협정의 전면 재협상`을 요구해 왔다.
정부는 `국가간의 약속`이라는 이유로 "재협상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국가간의 약속`인 평택미군기지이전 협정이 당사자들의 사정으로 문제가 생겼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재협상을 벌인다면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설득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게 범대위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국방부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단은 평택 미군기지 예정부지인 대추리, 도두리에서 아직 철거하지 않은 빈집 50여가구를 조만간 마저 철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순애 기자 leesae@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