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음풍' 휩싸인 한나라당

잘 나가는 집안에도 꼭 고민은 있다. 특히, 두 번이나 큰 일을 당한 집은 더욱 그렇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당 지지율이 40%대에 이르고 있고 당내 빅2 후보들이 여론조사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어도 `혹시나` 하는 우려가 사라지기엔 반복학습 효과가 너무나 크다.
늘 조마조마하던 한나라당에 연초부터 대형 사고가 터졌다. 더구나 파문의 주인공이 당을 대표하는 강재섭 대표여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를 잘 아는 인사들은 그가 이런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한 때 대권에도 꿈을 뒀던 강 대표가 행한 실수치고는 너무나 컸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월 1일.
강재섭 대표와 대선 주자를 비롯,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남산에 올랐다. 그 곳에 있는 3백60여개의 계단을 밟고 오르며 길고 긴 대선 정국에서의 각오를 남다르게 다지기도 했다.

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운동도 그런 것처럼 선거 운동도 평소에 잘해야 한다"며 참석자들을 격려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아 이런 분위기에 초를 친 것은 강 대표 본인이었다. 당 윤리위와 지도부, 그리고 대변인실까지 적지 않게 당혹스러운 분위기였다.

"하필 이럴 때 대표가"

공교롭게도 강 대표에게 원초적인 미끼를 제공한 것은 청와대와 연결선상에 있었다.
당 출입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우연히 문화일보의 연재소설 `강안 남자`가 화제에 올랐다. 지난해 외설 문제로 청와대가 절독해 논란이 일황을 상기하며 황우여 사무총장이 "제가 `강안 남자`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며 "올해 대선을 맞아 언론의 협조를 바란다"고 한 게 불행의 씨앗이었다.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18년만에 13% 이상 나왔다는 소식에 기분이 고무됐기 때문일까.
강 대표의 문제성 발언이 이후 쏟아져나왔다.

"요즘 조철봉이 왜 그렇게 섹스를 안 해? 예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더니만 요즘은 한 번도 안 하던데."

여기자들도 있다는 제지가 없지 않았지만 강 대표의 발언은 점점 농도를 높여 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어 "오늘은 할까, 내일은 할까 봐도 절대 안 하더라"면서 "그대로 한 번은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너무 안 하면 흐물흐물 낙지 같아진다"고 말했다.

강 대표 발언이 알려지자 잔치집은 순식간에 엄청난 비난의 화살에 휩싸여야만 했다. 여당은 강 대표의 공식 사과와 함께 대표직과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고 민주노동당은 "이 참에 당명을 남근당이라고 바꾸라"고 일침을 가했다.

문제의 주인공이 대표이다 보니 이런 발언에 징계를 해야 할 당 윤리위도 우왕좌왕 할 수 밖에 없었다.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이와 관련 "강 대표의 발언은 농담이 아니라 음담패설이다"면서도 "이 문제는 당 대표가 했고 또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됐다. 당 대표가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적절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번 파문으로 박근혜 전 대표를 포함 여성 의원들의 입장도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더욱이 강 대표는 그 동안 친박 인사로 분류돼 왔던 터라 박 전 대표로선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끊이지 않는 성 관련 사건사고로 곤욕을 치러 온 한나라당으로선 이번 강 대표 음담 파문이 또 하나의 `악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발언 다음날 대변인을 통해 강 대표가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후유증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남근당으로 개명해야"

그 동안 수세에 몰려있던 열린우리당은 오래 전부터 한나라당을 `성나라당`이라 표현하며 이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점차 높여왔었다.

여당 대변인실이 배포한 관련 자료에는 ▲정두언 의원 여기자 성추행사건(03.10) ▲이경재 의원 "자기 좀 주물러 달라는 것이지 발언(03.12) ▲16대 총선 직전 정인봉 인권위원장 수백만원대 성접대 사건 등 비교적 역사가 오래 된(?) 것까지 20여 건에 가깝다.

당내 중진인 정형근 의원의 `묵주사건`(05.02), 박계동 의원의 술집 종업원 성추행 사건(06.03) 등의 기억도 비교적 생생한 것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가장 곤욕스러워 했던 것은 지난해 2월에 있었던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긴 했지만 당이 우려했던 만큼 당 지지율과 지방선거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지난해 말에는 정 모 전 당진 당원위원장의 성폭행 미수 사건도 당 관계자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강 대표의 발언 파장은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2007 대선 정국이 시작되는 새해 벽두인데다 당 대표가 발언의 주체라는 점에서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공세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강 대표의 `음담 파문`을 한나라당이 어떻게 수습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유상민 기자 uporter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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