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화엄사 가는 길에 만난 풍광

“돋보이네.”

시선을 잡는다. ‘아름답다’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신기하다’하기에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런 느낌을 묘하다고 하는가. 물론 이런 모습을 가을에 보았다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시기가 봄을 바라보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바라보게 되니,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것이다.


#아그배(?) 나무 그리고 새

전남 구례 화엄사 가는 길목의 음식점 앞에 서 있는 오래된 나무다. 겨울이니, 당연히 앙상한 가지만으로 남아 있어야 맞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수를 헤아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수의 열매가 그대로 달려 있다. 열매는 나무에 달려 있어도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 있었다. 쭈글쭈글해진 모습이 각인된다.

열매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신바람이 나 있는 새들은 즐거워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찬양하는 새들의 모습이 우뚝하다. 겨울은 새들에게 있어서 신바람이 날 계절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하여 넘어야 하는 보릿고개이다. 그런데 겨울에도 매달려 있는 열매 덕분에 그런 걱정이 없으니, 행복해하는 것이다.

열매가 그대로 열려 있는 이유는 주인의 넉넉한 마음 덕분이다. 가을에 열매를 수확하지 않았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새들이 겨울을 걱정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즐겁게 겨울을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겨울의 회색빛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풍광을 연출한 주인에게 물었다. 무슨 열매냐고...

“아그배입니다.”

할머니의 말로는 분재용으로 심은 나무를 옮겨 심었는데 큰 나무로 자랐다는 것이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열매 또한 아그배를 닮아 있지 않아 수긍할 수가 없었다. 두 번 세 번을 되물어도 같은 대답이니, 그것 또한 묘한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아그배가 아니라고 강조할 수가 없었다.

내 생각을 접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무 주인의 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당장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반발심으로 끓고 있던 마음이 접으니, 진정이 되었다. 살아오면서 내 생각만을 앞세우며 살아 왔었다. 강철처럼 꺾일 수는 있어도 휘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무심한 표정 앞에서 고집을 접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의견이 받아들이지 않거나 무시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참지 못하였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부글부글 솟구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였었다. 포기하지 못함으로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것들은 모두 병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란 말인가.



할머니의 얼굴의 주름살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똑같은 질문을 하여도 귀찮다는 표정 없이 대답해준다. 세상을 오래 산 어른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려가 깊고 배려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후덕함일 것이다. 그런 넉넉한 삶의 여유가 새들을 즐겁게 해줄 고 있는 것이리라.

할머니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이 새들은 신바람이 나서 노래를 부른다. 새들의 고운 노래가 맑고 청아하게 공명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노래 소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그배(?) 나무 아래에서 새들의 신나는 노래에 취하였다. 시간 가는 것을 잊은 채 그렇게 감동하고 있었다.

정기상 기자
keesan@hanmail.net <춘성(春城) 정기상님은 한국아동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월간 아동문학 신인상,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녹색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북 대덕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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