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농협 둘러싸고 벌어진 세 개의 심상치 않은 사건

서울 양재동 농협 땅을 현대차그룹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현대차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또 프로야구단 인수를 단독으로 결정하는 등 농협중앙회장의 비대한 권한이 도마에 올랐다.
이와 함께 농협 광주지역본부는 8억6000여 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중 5억8000여 만원을 전현직 본부장의 격려금, 전별, 축, 조의금 등으로 사용한 것은 물론 정력제까지 구입, 상납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번지고 있다.

하나-받긴 받았는데 공무윈이 아니어서 무죄?

서울 양재동 농협 땅을 현대차그룹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현대차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기소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에 대해 법원이 `특가법 적용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문용선 재판장)는 지난 5일 오전 열린 선고공판에서 "농협 임직원은 공무원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농협을 `정부관리기업체`로, 농협중앙회장을 `공무원`으로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처벌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특가법 제4조 제1항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업체(정부관리기업체)의 간부직원은 형법 제129조나 제132조의 적용에 있어 공무원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고, 시행령 제2조 제48호에는 정부관리기업체의 범위에 농협중앙회 및 그 회원조합이 포함돼 있다.
검찰은 특가법 시행령에 기초해 특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정 회장을 기소했다. 이에 반해 정 회장의 변호인 측은 "농협법 등을 볼 때 농협은 실질적으로 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정부관리기업체로 볼 수 없고, 따라서 농협중앙회장을 공무원으로 보고 특가법을 적용해 기소한 것은 검찰의 법리오해"라면서 "특가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1심 재판부도 "국가가 농협의 경영판단이나 운영 전반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정 회장 변호인 측의 손을 들어줬고, "특가법 시행령 제2조 제48호는 특가법 제4조 제1항의 정부관리기업체의 정의규정에서 정한 위임범위를 벗어나는 무효 규정인 만큼 특가법상 뇌물죄를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즉, 농협이 특가법 적용이 되는 `정부관리기업체`로 포함돼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무효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 앞서 검찰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 상의 수재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요청했으나 검찰이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가법이 `공무원`의 수뢰혐의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데 비해 특경가법은 `금융기관의 임직원`이 직무에 관해 금품을 수수한 경우의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특경가법의 적용 대상에는 금융기관을 비롯해 농협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검찰의 생각은 다르다. 현행 법률과 시행령에 명백하게 `농협`을 정부관리기업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특가법 적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검찰청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다시 특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채 기획관은 "농협중앙회 회장을 공직자에 준하도록 하는 것은 특가법, 공직자윤리법, 부패방지법 등 현행 법령에 명문으로 규정돼 있다"며 "모 단위농협 조합장의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죄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한 2001년 대법원 판례가 있고, 헌재도 2002년 합헌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2001~2002년 대법원과 헌재의 판결이 나온 시기는 농협이 사업과 예산을 농림부 장관과 재경부 장관으로부터 승인 받도록 하는 조항이 삭제된 1999년 이후로, 농협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대법원과 헌재가 농협 임직원에 대한 특가법 적용을 인정했다는 주장이다.
정 회장은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 부지 285평을 66억2000만원에 현대차에 파는 대가로 현대차 김동진 부회장으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받고 현대차에 판 혐의로 구속 기소됐었다.
정 회장은 지난해 8월 보석으로 석방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수차례 선고가 연기된 끝에 이날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이에 대해 농협노조와 농민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농협노조는 무죄 판결이 내려진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재판부의 판결과는 무관하게 `비리 주범 정대근 회장의 퇴진과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쟁취를 위해 투쟁을 계속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도 정 회장이 보석 후 일선 복귀를 시도한다는 소식에 "비리 주범 정대근은 당장 퇴진하고 농협개혁 추진하라"며 강하게 반발했었기 때문에 정 회장에 대한 항소심 결과 및 향후 행보에 따라 농협 주변의 갈등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둘-중앙회장 독자적으로 야구단 인수 결정도

이번 재판과 함께 지난달 농협의 현대유니콘스 프로야구단 인수와 관련 농협중앙회장의 비대한 권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농협 임원은 물론 주무부처인 농림부와도 단 한차례 공식적 사전 협의를 벌이지 않은 채 중앙회장이 독자적으로 한해에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야구단 결정할 만큼,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업계에선 "어떻게 중요 경영현안을 아무런 견제 없이 회장 독단적으로 결정 할 수 있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번 재판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해 KBO 신상우 총재와 뭔가 빅딜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될 정도다.
회장 권한 축소를 골자로 한 개정 농업협동조합법의 도입 취지가 무색하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정 회장은 신상우 총재로부터 프로야구단 인수를 제의 받고 바로 이를 곧바로 실무진들에게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내부 경영을 총괄하는 전무이사, 사업부분 대표 등 임원들은 물론 주무부처인 농림부와 단 한차례도 공식적으로 사전 협의를 벌이지 않았다.
농민 대표들의 의견수렴 작업도 생략됐다. 정 회장이 독단적으로 야구단 인수를 결정, 실무진에 지시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농협의 프로야구단 인수 작업은 순풍에 돛단 듯 착착 진행됐다.
농협 실무진은 당초 지난 1월11일부터 본격적인 검토 작업을 벌여 일주일 이내에 인수 가격 등의 모든 실무 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이었다.
실무진이 검토 작업에 착수한지 불과 2주도 안돼 야구단 인수 작업이 끝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정 회장이 임원들과 공식적으로 논의 과정을 거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며 "인수작업을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마무리할 방침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는 물론 직원들조차 야구단 인수와 같은 중요한 경영 현안을 어떻게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자칫 대규모 인수 가격 등으로 건전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야구단 인수가 회장의 말 한마디에 아무런 검증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 됐다는 것.
정 회장이 농민 권익증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안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다른 농협 관계자는 "정 회장이 일방적으로 농민 지원과 관련이 없는 야구단 인수를 추진 한 것에 우려감은 물론 의구심마저 든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대형 금융기관 한 관계자도 "농협의 이번 야구단 인수결정 과정은 다른 금융기관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셋-광주본부, 비자금으로 정력강화제까지 상납

한편 최근 농협 광주지역본부 비자금 조성 사건이 팀장급 2명을 기소유예하고 전직 본부장들에 대해서는 약식기소 하는 것으로 비자금 수사를 마무리 지은 것에 대해 경미한 수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농협 김모 씨 등 광주지역본부 전 현직 본부장 5명을 비자금조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바 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사무용품을 구입한 것처럼 위장해 농협 지급결의서를 허위 작성하는 한편 납품업자들로부터 차액을 돌려받는 식의 속칭 `카드깡` 등의 수법으로 8억6000여 만원의 부외자금(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조성자금 중 5억8000여 만원을 전현직 본부장의 격려금, 전별, 축, 조의금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횡령죄를 저지를 4명의 전현직 본부장과 채용서류를 위조해 부정입사한 최모 씨 등에 대해서는 불구속 입건한 반면 나머지 실무자들은 본부장의 지시에 따라 범죄에 가담한 점을 들어 입건하지 않았다.
그러나 범죄의 수범이나 비자금 조성 금액에 비춰 검찰의 처분이 너무 관대하지 않았느냐는 논란이다.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2005년 5월12일 허위 지출결의서를 통해 지출되지도 않는 컴퓨터 수선비로 594만1800원을 지출하는가 하면 같은 해 7월27일 하루에만 프린터 토너 교체비 등의 명목으로 800여 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출한 것처럼 꾸며 비자금을 조성했다.
특히 전현직 본부장의 격려금, 전별, 축조의금은 물론 심지어 농협 공금으로 30만원이 넘는 해외 명품 지갑을 구입하는가 하면, 정력제(시알리스) 4박스를 구입해 모 본부장에게 상납하기도 했다.
농협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관계자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조직적 상납구조를 밝히지 못하고 사건이 유야무야 처리된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비리 당사자는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성일 기자 steel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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