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65만 이라크인 희생이 밑거름...'이라크에 평화를' 외쳐야


한반도에 평화의 순풍이 불고 있다. 6자회담이라는 돛배가 예전과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항구를 향해 달리고 있다. 다만 한반도 평화 뿐 아니라 이참에 동북아 평화체제라는 항구까지 달려갈 참이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나고 절로 춤을 출 일이다.

그런데 문득 이 행운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북한과 함께 협상테이블에 앉기를 그토록 싫어하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변환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는 또 어떻게 자신의 지지 기반, 즉 부시 행정부 스스로의 정체성과 전면적으로 반대되기까지 하는 대북 정책을 취하게 되었을까.

백학순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시 행정부에게 북의 핵실험은 도저히 방관할 수 없는 외교적, 정책적 위기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북의 핵실험은 비확산, 반확산이라는 미 외교안보정책의 근간이 곧 흔들림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이라크전에서의 실패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라는 심판을 국민들로부터 받은  부시 대통령에겐 실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요인들로 부시 대통령은 압력과 제재 위주의 네오콘의 정책이 이라크 뿐만 아니라 대북 관련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서도 결코 실효성 있는 정책이 아님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비록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북미가 드디어 해결지향적인 자세로 서로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는 참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고민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미국의 이라크에서의 실패가 없었다면, 만약 이라크 국민들이 미국으로부터 겪은 처절한 고통이 아니었다면, 부시 행정부의 잘못된 인도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미군, 동맹군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북핵문제 타결을 위한 현재의 부시 행정부의 바쁜 발걸음은 과연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라크에 혼란과 기아, 끊임없는 증오의 행렬” 대신 부시가 그처럼 부르짖었던 “이라크에 자유를”이 정말 왔다면, 작년 12월을 기준으로 이라크 전쟁으로 사망한 65만명의 이라크인의 죽음이 없었다면, 과연 이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의 항구를 위한 순풍은 올 수 있었을까. 물론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고, 강력한 속도로 찾아오진 못했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라크에서의 실패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깨달음, 그로인한 평화의 순풍이 이라크 국민들이 아닌, 오히려 부시 행정부의 동맹군으로 수많은 병사들을 이라크에 보낸 우리에게 불어오다니 말이다. 그것도 미국 국민들도, 미 국회의원들도 어서 빨리 철군하라는 이라크에 또다시 파병연장을 고집하는 한국에 말이다.

한참을 먹먹한 마음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고개를 들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의 평화가 65만명, 아니 그 이상,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피, 그 피흘림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란 사실에 말이다. 그것도 그들의 땅을 사정없이 짓이기는 이들과 함께 그 땅을 밟은 우리들에게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막힌 행운에 춤을 추다, 이 기막힌 사연에 그만 춤을 멈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반도에 평화가 오고 있는 걸 되돌리라 할 순 없잖은가. 비록 이기적으로 보일지언정, 이렇게라도 와준 평화의 기운이 너무 고맙다고, 행여나 놓칠세라 잡고 싶은 게, 지금 우리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어떻게 해야하나. 답은 간단했다. 한반도에 평화가, 동북아에 평화가 옴을 원하는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열정으로 이라크와 중동에 평화가 옴을 기원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왼손에 ‘한반도에 평화를!’이란 피켓을 들 때면, 또 다른 오른손엔 ‘이라크에 평화를!’이란 피켓 또한 들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만약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았더라면, 부시의 정당치 못한 침략 전쟁에 동맹군으로, 친구로 그 땅을 밟지 않았더라면, - 여기서 우리가 총이 아닌 삽을 든 공병이었다, 재건군이었다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것이 삽이었든, 총이었든, 이라크인들에겐 그 삽은 침략군을 돕는 삽이었을 뿐이다. - 적어도 ‘이라크에 평화를!’이란 구호는 우리에겐 선택사항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그것은 우리에게 필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우리에게 불어온 이 평화의 순풍이 이라크인들의 처절한 눈물로 인함이란 것을 알기만 한다면 말이다.

한반도에 평화의 순풍이 불어옴을 감사하자. 그리고 이 바람이 멈추지 않고 계속 불어 우리로 무사히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란 항구에 무사히 정착토록 하자. 그를 위해 우리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붓자.

그리고...

이 순풍이 불의한 이라크 전쟁으로 고통 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인한 것임을 알자. 그래서 우리에게 평화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이라크에도 평화가 속히 찾아올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자.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자이툰 철군을 요구하는 일인시위도 좋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피스몹도 좋다. 군대 대신 인도적 지원, 개발지원을 하자고 정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도 좋다. 이라크 국민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자고 해도 좋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든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이라크에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다. 먼저는 지금 한국에 있는 이라크 친구들에게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국제반전행동에 함께 동참하자. 국제반전행동!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인터넷을 통해 잠깐만 찾아보자. 평화행동제안에 동참할 친구들이 의외로 많음에 놀랄 것이다. 자신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일상 속에서 작게 실천해가는 그들의 평화행동을 우리도 한번 해보자. 그렇게 한 걸음씩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내디뎌 보자.

그래서 우리에게 평화가 왔을 때, 이라크에도 평화가 오도록 하자. 너무 멀고, 커 보이지만 평화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우리 안에 평화를 향한 갈망과 그를 위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의 순풍이 결코 우리의 잘남으로 인함이 아님을 알기만 하면 된다. 생각보다 답은 늘 쉽다.  김경미 기자 <김경미님은 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NGO신문에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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