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직장 동료들과 떠나는 정기 산행기-청계산편 1회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들이 계속되더니만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며칠째 몸을 움츠리게 했다.  이번 산행은 서울 남쪽에 위치한 청계산으로 결정했다. 그동안 다닌 산들이 본의 아니게 강북지역에 위치한 관계로 서울 남쪽에 사는 직원들이 먼 이동거리에 가졌던 불만을 잠재우고자 하는 포석도 상당히 작용했다.

기상예보에 비가 내린다고 해서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역시 기상청예보는 빗나갔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새로 산 성능 좋은 보온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혹시나 해서 우산까지 챙기고서는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전철역으로 가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왠지 불길하다. 정경진 계장인데 어젯밤 무리한 탓에 도저히 함께 하기 힘들겠다고 한다. 조금 후 또다시 휴대폰이 몸을 떤다. 문자메시지다. 이번엔 강진규 주임이다. 갑작스레 일이 생겨 참가 못한다는 연락이다. 전철역이다. 또한번 휴대폰이 요란스레 몸을 떤다. 그 떨림 만큼이나 내 가슴도 떨린다. 설마…이번에는 이원형 주임과 김영비 주임까지 어렵다는 얘기를 전한다. 어찌 이런 일이….

그동안 등산모임을 주선하면서 한번도 없던 일이 급기야 터지고 말았다.
일곱분이 참가신청을 했었는데 네분이 갑작스레 불참하게 되면서 가장 적은 인원으로 산행을 하게 되었다. 황당하고 씁쓸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지만 필자를 기다리고 있을 나머지 두 분과의 즐거운 산행을 위해서 다시한번 마음을 추슬러 본다.

약속장소인 양재역 5번출구로 나와 오랜만에 함께 한 문영길 주사님과 문인범씨를 조우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타고갈 버스가 오지 않는다. 다른 버스 기사분에게 물었더니 버스노선이 바뀌어서 7번출구 쪽으로 나가야 탈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분명 5번출구였는데 노선이 바뀐 이후로 수정하지 않았나보다.

오늘 시작부터 많이 꼬인다. 7번출구로 나갔더니 역시…청계산행 버스를 기다리는 등산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버스에 몸을 싣고서는 원터골입구에서 내렸다.

여기서 잠깐 청계산에 대해 인터넷 검색한 결과를 개략적으로 소개하자면, 청계산은 서울 서초구와 성남, 과천, 의왕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시내에서의 접근로가 가깝고 편리하여 휴일이면 10만명이나 찾는 `서울 남부의 허파`라고 한다. 청계산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명확히 단정 지어진 게 없고, 몇가지 설만 있다고 한다. 청계산 산행을 시작하는 시발점은 큰 산세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옛골과 우리가 내린 원터골이다. 세 명 모두 초행길이기에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찾는 곳을 쫓아서 내리게 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다리 밑에는 동네 아낙네들로 보이는 분들이 난전을 폈다. 산나물이며 직접 담근 된장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한 가지 아주 반가운 것을 발견했다. 배추뿌리다. 필자의 고향은 전북 고창이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시절까지 거기서 보낸 소위 말하는 촌놈이다. 유년시절 김장 배추를 다듬고 계시는 어머니 곁에 쪼그려 앉아있으면 먹어보라며 배추뿌리를 깎아서 건네주시곤 했다. 고구마처럼 생긴 배추뿌리를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하고 알싸한 맛이 같이 배어 나와 입안을 즐겁게 해주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몸이 먼저 그 맛을 기억하고 있는지 자연스레 입안에 침이 고인다.

다리 밑을 지나 가게를 찾아보는데 온통 음식점들뿐이다. 어쩔 수 없이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내려와 컵라면과 막걸리를 준비해서는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고자 서둘러 출발했다.

산행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큰아름드리 보호수와 함께 원터골의 유래를 표시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통의 요충지에 마패를 소지한 공무 여행자에게 마패에 새겨진 숫자만큼의 말을 제공해주는 역(驛)과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인 원(院)이 설치되었는데 이곳에도 큰 원(院)이 있었다고 한다.


#원지동 원터 비석


#원터마을 입구에 위치한 아름드리 보호수

조금 오르니 `쉭쉭` 바람 뿜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을 위해 흙과 먼지를 털어낼 수 있도록 바람을 뿜어내는 기계에서 나는 소리였다. 바닥에는 질퍽이지 않도록 톱밥까지 깔아놓았다. 등산객들을 위한 세심함이 엿보인다.

원터골쉼터까지 가는 길은 큰 오르막도 없고 대체적으로 평이하다.
살짝 땀방울이 배일 정도가 되니까 원터골 쉼터에 도착했다. 약수터에서 간단히 목을 축이며 한숨을 돌리는 데 괴상하게 생긴 나무 한그루를 발견했다.

뱀이 낡은 허물을 벗고 커지듯이 나무 또한 성장을 하려는 것인지, 아님 겨울의 묵은 때를 벗어내고 새봄을 맞이하려는지 온 몸의 껍질을 벗겨내고 있는 모습에 지나는 등산객들의 눈길을 끈다.


#원터마을 쉼터




#껍질을 벗고 새봄을 준비하는 나무

쉼터를 지나 조금 오르니 드디어 청계산행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계단에 하나하나 번호를 붙여놨다. 조금 뒤에는 번호뿐만이 아니고 간단한 문구와 함께 사람이나 단체의 이름도 같이 표기가 되어있다. 아마도 기증자의 이름이리라. 회사나 어느 단체의 홍보용 문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가족이나 연인들의 사랑 등 일반인들의 사연은 수많은 계단을 오르며 힘들고 무거운 발걸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준다.

그러나 역시 계단은 너무 많다. 다른 대부분의 등산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계단으로 되어 있는 산은 힘듦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그나마 이곳은 계단 곳곳에 나무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가쁜 숨을 돌릴 수 있어 조금 나은 편이다.

벤치에서 잠깐 숨을 돌리는데 차가운 날씨에 등산객이 던져준 참외를 앞에 두고 서있는 새의 모습이 애처로워 한 컷 담는다. 다음호 계속


#끝도없이 이어진 계단


#추위에 떨고 있는 새


정기룡 기자 <정기룡님은 서울 성동구청 지적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1-2회  동료직원들과의 산행 후기를 독자님들에게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청계산행 기사는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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