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심상치 않은 한나라당 위기설

당내에서 합리적 보수를 주장했던 손학규 전 지사가 탈당함에 따라 한나라당 내 세력 판도도 급변하고 있다. 중간지대가 없어진 만큼 친박 진영과 MB그룹의 기싸움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고 서로가 `한 방`의 기회만을 찾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여기에 양 진영의 선대위원장 후보로 손꼽히는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최고위원이 정면충돌 양상을 빚으며 상황은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 자칫하면 대리전이 본선 구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치권에서 한나라당의 `4월 위기설`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 기초한 바가 크다. 또 다시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검증정국`과 6월로 예정된 시도당위원장 선거도 양측의 대결 구도를 부채질 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는 한나라당에서 쫓겨난 것이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은 자신의 오랜 지기인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선 룰과 관련된 것으로만 비치지만 실질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이 높은 지지율에 자만한 나머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소장파 그룹에선 경선 룰 논의가 손 전 지사를 무시한 측면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고진화 의원은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최소한 1백만명이 참가하는 경선이 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양 진영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 봤어야 알지"

또 다른 당직자도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최소한의 배려는 보여야 했는데 양 진영이 모두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했다. 솔직히 손 전 지사측은 이 과정에서 왕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 전 지사의 탈당 후폭풍을 걱정하는 이들은 중간 지대가 없어짐에 따라 한나라당 내 경쟁이 점입가경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홍준표 의원 등은 오래 전 부터 손 전 지사가 부상해 삼각 구도로 가야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점졌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현재처럼 팽팽한 경쟁 구도를 이뤄왔던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면서 "이회창 전 총재도 사실상 독주 체제였고 그 이전도 비슷했다. 이런 상황에서 빅2 체제가 순조롭게 갈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손 전 지사 탈당 이후 양 진영의 관계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사소한 사안을 두고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상대방을 겨냥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국 주도도 자연스럽게 범여권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내에선 빅2의 경쟁 구도가 과연 경선까지 갈 수 있느냐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MB측은 나 혼자"

`검증정국`에서 한차례 불꽃을 튀겼던 빅2의 갈등은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최고위원이 정면으로 맞붙으면서 이미 노골화된 양상이다.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강 대표와 MB 진영의 이 위원은 이미 지난해 7.11 전대에서 `대리전`을 치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최근 당직자들의 경선 중립 문제를 놓고서도 격한 감정 싸움을 벌였다.
강 대표는 지난 달 말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직자들의 대선 후보 캠프 참여를 강력히 경고하며 "당에 여러 당직자가 많은데 이런 분들이 어떤 캠프의 일원으로 직책을 맡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각 캠프에서도 캠프 위상을 강조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해선 안 될 것"이라며 "본인들이 만약 그런 의사를 갖고 있다면 당직을 깨끗이 사퇴하고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경고하는데 당직을 맡으면서 그런데 간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는 게 강 대표의 엄호령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날 회의에는 MB 진영의 좌장인 이 위원이 불참해 정면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강 대표측은 "특정인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이 위원측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 위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대표에 오른 사람이 스스로 중립 의지를 천명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발목을 잡기 위해 중립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사실상 9명의 최고위원 가운데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나 한 사람 뿐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 위원은 또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당을 같이 하자는 것이냐"며 "이런 식으로 당을 깨려하지 말고 자신 없으면 대표직을 물러나라"고 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망스러운 일 진행 중"

한나라당 내에선 경선 이후 선대위원장 자리를 놓고 벌써부터 두 사람이 신경전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존재한다.
친박 진영과 MB그룹의 기싸움에 지도부까지 가세하면 그야말로 통제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당내 한 관계자는 "대리전이 본선까지 망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검증정국도 수면 밑에서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분위기다. 지난달 MB 진영의 정두언 의원은 "한나라당 내에서 민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명박은 결국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가설이 당 안에서 재생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얼마든지 검증에 임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측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왜 검증 문제를 얘기하느냐"며 유포설을 일축했다. 검증 정국은 대선후보 검증위원회 정식 출범을 계기로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높다.
오는 6월로 예정된 시도당 위원장 선거도 양 진영이 총력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8월 경선에 앞서 치러지는 대결의 장이자 지역 내부 조직을 임명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각 지역마다 친박 진영 인사와 MB측 인사들의 맞대결이 예상되며 벌써부터 뜨거워지고 있다.
당내 위원회에서도 빅2의 전쟁은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당헌·당규 개정특위와 공천심사위, 조직강화특위에서 팽팽한 대결을 펼쳤다. 대선후보 검증위원회와 대선후보 선거관리위원회에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사전 작업도 치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면서 "더욱이 당내 문제라 감정 싸움으로 번질 경우 해결책은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상민 기자 upoter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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