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정명은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산에 간다. 기분이 좋다. 발걸음이 가볍다. 날씨도 좋다. 봄볕이 따스하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토요일. 일단은 회사에 간다. 오전 근무는 해야 한다. 점심을 먹고 산으로 간다. 지인들과 약속도 돼 있다. 기분 좋은 만남이다. 기분 좋은 산행이다.

산행 출발지는 정릉 청수장이다. 오랜만이다. 산행에 동참할 일행들 중 몇몇은 사무실에서 조우했다. 버스를 타고 정릉으로 간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한가롭기만 하다. 모두 이 산뜻한 봄을 한껏 즐기고 있는 듯하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꽃이 분위기를 돋운다.

정릉에서 내린다. 슈퍼마켓에서 물을 산다. 등산 가방에 담아온 <위클리서울> 신문을 북한산 입구 관리 직원에게 건넨다. 등산 기사가 실려있다.




초입부터 등산객들이 많다. 내려오는 이들, 올라가는 이들…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들도 눈에 띈다. 아이들 얼굴이 진분홍색으로 물들어있다. 진달래꽃 때문일 게다.


정릉 계곡엔 물이 흐른다. 물 위엔 노오란 색 개나리꽃이 부유한다. 손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들어온다. 산 위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이다. 약속장소는 보국문이다. 약속시간은 늦은 3시다. 입구에서 한 시간을 잡았다. 시계는 2시10분을 가리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뗀다. 이렇게 가도 한시간이면 족하다. 게다가 일행 중 한명은 산행 초짜다. 엄밀히 얘기하면 초짜는 아니지만 발걸음이 느리다. 체력이 달린다. 매일 마셔대는 술도 문제다. 운동은 하지 않으려 하고 주생활만 즐긴다. 저러다 큰 일 나지 싶어 산에 반강제적으로 끌고 왔다.

그런데 곧잘 올라간다. 지난해 산행 때와는 또다른 모습이다. 속도를 줄인 탓일 게다. 개나리꽃이 자주 눈에 뜨인다. 진달래꽃도 그렇다. 사진을 찍는다. 노란색 야생화도 꿈틀거리며 피어나고 있다. 낙엽 위에 앙증맞게 올라있는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산수유

깔딱고개가 나온다. 속도를 더 늦춘다. 일행중 나머지 한 명은 벌써 앞장 서 올라가 버렸다. 산행에 처음 동참한 친구인데 산 꽤나 타본 것 같다. 깔딱고개 정상에 쉼터가 있다. 의자가 놓여있다. 몇몇 등산객들이 보인다. 전부 즐거운 표정이다. 잠깐 휴식을 취한다.

 
아까시나무 몸뚱아리 중간에 자라난 풀이 신기하다. 생명의 신비다. 마치 할아버지 수염을 닮았다.


#봄소풍 나온 다람쥐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 얼마 안가 시야를 어지럽히는 한 생명체를 발견한다. 가만히 보니 다람쥐다. 봄나들이를 나온 모양이다. 낙엽 위를 나비처럼 사뿐사뿐 뛰어다닌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데 거리가 멀다. 접근한다. 피하지 않는다. 낙엽 속에서 먹을거리를 찾았는지 바로 옆 바위에 올라가 포즈까지 취해준다. 고맙다.

다리를 건넌다. 좌회전한다. 직진하면 칼바위능선이다. 손잡고 다정하게 걷고 있는 한 젊은 커플의 모습이 보기 좋다.

약수터가 나온다. 약수가 약수 같지 않다. 물량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깔딱고개가 시작된다. 경사가 극심하다. 아예 포기하고 걷는 게 좋다. 일행의 숨이 자꾸 가빠진다. 사진을 찍는 척하면서 속도를 늦춰준다. 기자의 속 깊은 배려다.

약수터에서 약 20여분 오르니 드디어 보국문이다. 시계는 3시10분을 가리킨다. 정확히 한시간 걸렸다. 만나기로 한 일행이 없다. 손전화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니 3시30분까지 대동문으로 오란다. 먼저 간 것이다.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는 건 산에선 손전화가 잘 터지지 않기 때문이다. 산에 기지국이 없거나 부족한 탓일 게다.


#칼바위능선

도심 쪽은 황사인지, 안개인지 잔뜩 뿌옇다. 사진 찍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동문 쪽으로 향한다. 중간 칼바위 능선 입구와 만난다. 칼바위 능선은 언제봐도 웅장하다. 칼날 같이 솟아오른 정상의 바위 위에 사람들이 서 있다. 아슬아슬해 보인다.
 
대동문 앞 광장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다. 옆에는 화장실도 있다. 만나기로 한 일행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2주일만의 만남이다. 그때는 도봉산 다락능선에 올랐었다. 약 4년여 전부터 기자와 산행모임을 함께 한다.

오늘 하산할 코스는 이전에 몇차례 소개해드린 인수재 방향이다. 인수재는 4.19묘지 위쪽 산 중턱에 있다. 두부집이다. 막걸리도 판다. 전부 직접 만든 것들이다.


#진달래능선서 본 북한산 주봉들. 맨 오른쪽이 인수봉이다.

인수재를 가려면 진달래능선을 거쳐야 한다. 능선은 그 이름처럼 온통 진달래꽃 세상이다.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꽃들은 더 지천으로 피어있다. 별천지에 온 느낌이다. 등산객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연발한다. 그럴만 하다.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진달래꽃 사이로 보이는 주봉 일대의 모습이 장관이다.


#진달래능선. 아래로 내려갈수록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내려간다. 초보 산행에 나선 일행의 입에서 막걸리 타령이 이어진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진달래능선 맨 끝에서 우회전한다. 내려간다.

대동문에서 한 시간여, 드디어 인수재다. 진달래꽃에 파묻혀 있는 허름한 집의 모양새가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집 같다. 주인은 여든을 넘기신 할머니다. 지금은 쉰 중반의 아들이 일을 돕고 있다. 그 아들을 기자는 형님이라고 부른다.


#진달래에 파묻힌 인수재

마당에 놓인 탁자에 몇몇 등산객들이 앉아 산행 뒷풀이를 하고 있다. 정겨운 모습이다. 누룩 냄새가 진동을 한다.

형님이 아는 채를 한다. 꾸벅 인사를 한다. 왜 자주 오지 않았느냐고 구박한다. 구박받을 만하다. 두부에 막걸리를 시킨다. 그런데 이게 왠일, 두부가 동이 났단다.

아이고 이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장볶음을 시킨다. 막걸리를 마신다. 그윽하다. 처음 와 본 일행도 넋이 나갈 정도다.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극찬한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옆자리에 젊은 아낙 세 명이 와 앉는다. 옷차림을 보니 등산객들은 아니다. 속세에서 이곳 막걸리 맛을 느끼러 올라온 이들이다. 갈매기살을 시킨다.

참숯에 구워지는 냄새가 진하다. 돼지고기에 막걸리라…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이 분명하다. 형님이 근처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 일행이라고 얘기해준다. 말이라도 건네 볼까 하다 포기한다. 대신 가방에 넣어둔 신문을 한 부 드린다. 고맙다고 한다.

막걸리 잔이 몇순배 돌자 얼굴이 불콰해진다. 기분 좋다. 목소리가 커진다. 시간은 어느듯 5시30분을 넘어선다. 6시에 이승엽 야구를 봐야 한다. 2차는 맥주집이다. 커다란 TV가 있는 곳에서…. 세상 뭐 다 이런 거 아니겠는가.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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