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여성들의 수다방>

얼마전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각종 공공 표지판이 ‘성평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내용으로 바뀌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례로 아기를 안고 있거나 기저귀를 가는 지하철 및 화장실 안내판은 주인공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팡이를 짚은 경로석 안내 표지의 주인공도 할아버지에서 할머니로 바뀌었고. (혹시 민우회의 생생도시 캠페인에서 ‘삘’ 받은 거 아닌가 몰라)

뉴스에 따르면 시 당국은 ‘빈은 다르게 본다’는 캠페인과 함께 새 안내판을 붙였다고 한다. 시는 기존 안내판의 절반을 새로운 안내판으로 바꾸었단다. 긴 머리 여성이 치마를 입고 부츠를 신은 채 달려가는 비상구 안내판, 치마를 입고 땅을 파는 공사 안내판도 애초에 기획됐지만 실제로는 쓰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만일 길을 걷다 그런 표지판을 만난다면 성별 분리적이지 않은 표지판을 만난 기쁨 못지않게 발상의 유쾌함에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이런 표지판을 도입하는데 있어 저항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남성들의 항의도 많았고 찬반이 엇갈렸던 것 같다. 시 당국은 “말과 그림은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상징한다”며, “남녀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와 책임을 부여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캠페인의 취지를 밝혔다고 한다.

남성들의 항의가 많았다는 점이 그 기사에서 내 눈길을 가장 끌었던 부분이다. 항의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성별관계를 일상적인 수준에서 바꾸기 위한 작은 변화를 시도할 때 남성들의 저항이 있다는 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매우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겠지.

참 이상하게도 정책의 성주류화를 추진한다거나 정부 예산을 성인지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거나, 각종 정책에 대한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거나, 각 지자체마다 성별분리통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반발(backlash)이 적다. 그러나 외화를 번역하고 더빙할 때 평등한 언어를 사용하자고 말하거나, 공공 표지판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거나, 가족 관계에서 사용되는 호칭을 서로 기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보고자 시도하거나, 회식 자리에서 술 따르라고 권유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면 엄청난 저항이 일어난다. 뭐랄까, 이중적이다. 추상적인 수준에서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은 높지만, 일상적인 차원에서 성평등에 대한 인식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간극은 생각보다 넓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 그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성차별의 문제가 제기된 방식, 그에 따라 성평등 의식이 도입된 방식도 이유가 될 것이다. 당위에 동의하는 것과 그 당위를 위해서 내 삶을 바꾸어야 하는 일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도 이유가 될 것이다. 빈의 표지판과 같은 사례는 한 사회의 성차별이 얼마나 개개인에게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한 지표가 된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사람들의 성평등 의식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고 해보자. 결과는 질문 내용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다.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과 “외화 번역시 성별 불균형적인 언어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같은 물음을 던지고 있지만 답은 크게 다를 것이다. “정책의 성주류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과 “공공 표지판에서 성별 분리적인 색깔 사용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보일 것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성평등 의식을 측정한다면 한국은 과연 몇 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아마도 바닥을 면치 못할 것 같다. 근거가 뭐냐고? 지금 당장 호락호락 캠페인 사이트에 접속해 보라.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곰`(필명) <이 글은 한여성민우회(womenlink.or.kr) 홈페이지 칼럼란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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